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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글-퍼옴 11.01 06:53
저는 10년 전부터 심장판막 협착증으로 서울A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습니다. 10년 전인 2000년도 여름에 갑자기 온몸이 붓고 몸살처럼 앓아서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서울A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봤더니 심장판막 협착증으로 급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때 시술을 받고 여러분들도 아시는 것과 같이 10년 동안 약을 먹으며 언젠가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송명근 교수님께 수술을 받기 전 저는 10년 동안 끌어왔던 판막 수술을 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음을 느꼈습니다. 점점 피로가 잘 풀리지 않고 조금만 활동을 하면 숨이 차곤했습니다. 서울 A병원에서는 기계판막으로 판막을 교체하는 수술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고민하던 시기에 인터넷과 TV방송에서 송명근 교수님의 수술법을 알게 되었고, 저는 기계판막치환으로 하는 수술법을 선택 하느냐 아니면 CARVAR / COMVAR 방법으로 수술을 하느냐가 그 당시에는 선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송명근 교수님의 수술법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안전성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수술을 받고난 지금은 송명근 교수님의 수술법이 안전하다고 믿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건국대병원보다 대형병원인 서울A병원에 다니다 건국대병원에 수술하려고 가니 병원규모면이나 시설적인 측면에서 미미해서 참 막막하고 걱정이 많이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기계판막 교환하는 수술으로 결정을 하였더라면 매일 같이지금까지 와파린 복용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수술이후에도 혈전에 대한 부담감과 출혈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피가 나면 지혈이 잘 되지 않는데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송명근교수님께 수술을 받은 지금 위의 내용에 대한 부담 없이 정상인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지금의 저와같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봅니다.본인은 현재 수술한지 7개월째 생활 하는데 아무런 불편을 모르고 생활하고 있으며 2010년 2월18일 외래 진료 시 교수님은 현재 건강인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상태고 이제부터는 많은 운동과 달리기를 하여도 된다고 했습니다. 딸과 함께 수술한 부위의 CT촬영사진을 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제 판막을 통해 피가 잘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수술하기 전에는 겨울만 되면 손과 발에 피가 공급이 잘 되지 않아서 시리고 차서 양말도 잘 신지 못했는데 지금은 손과 발 모두 붉고 양말도 잘 신고 다니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10년 동안 복용하던 와파린을 끊고 살아가고 있고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해 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수술하기 전에는 많은 고뇌가 있었지만 현재는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합니다. 또한 제 주변에도 심장이 안좋으신 분 들이 몇분 계십니다. 우선 저를 비롯해서 동네에 아는 지인분도 심장이 안좋으셔서 송명근 교수님께 수술을 받고 현재 회복중에 있으며 제 조카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약간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12년동안 부천 s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하였는데 얼마전 풍선시술을 받아야 한다고 권유를 받았다더군요. 그래서 저와 함께 송명근 교수님께 갔더니 검사를 해보고 수술을 해야 할 지 결정하자고 하셨습니다. 교수님은 왜 조카를 여태까지 방치했냐고 하셨습니다. 현재 몇 달 전만해도 제가 하고 있던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과 가족분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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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환자-퍼움(2) 11.01 05:01
귀한 생명 죽여 놓고 사과 한마디 없다니…” 송명근 수술에 아들 잃은 부부의 눈물겨운 설날 입력일 2009.01.28 10:52 ㅣ 수정일 2009.01.29 15:14 강원 철원군 김화읍에서 농사를 짓는 황희로(64) 김경희(54) 씨 부부는 이번 설 연휴에도 이 세상에 없는 두 아들 생각을 떨치려 이를 악물고, 도리머리를 흔들며 지냈다. 두 아들은 1년 사이로 그들 곁을 떠났다. 첫째 아들은 직업군인으로 근무하다 병사의 실수로 전차에 치여 숨졌고, 둘째는 ‘심장수술의 명의’라는 송명근 교수에게 수술을 받고 거짓말처럼 눈을 감았다. 특히 병원 중환자실에서 “배가 고파요”라는 한 서린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둘째 봉현 씨의 죽음은 믿기지가 않는다. 황씨 부부는 봉현이의 모습이 눈에 밟힐 때마다 눈물을 감추며 기억을 씻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아들의 살가웠던 모습들이 비수(匕首)처럼 가슴을 찔러 오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황 씨는 이번 설날 큰집에서 차례를 지냈지만 아내 김 씨는 전날까지 차례 상 준비만 하고 제사 당일에는 집을 지켰다. 황 씨는 친척들 앞에서 애써 슬픔을 감추려 밝은 얘기를 많이 했고, 친척들은 이에 맞장구를 쳤지만 모두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봉현 씨의 친구들이 황 씨 집에 세배를 오자 어머니의 눈시울은 또다시 붉어졌다. 봉현 씨는 초등4학년 때 판막질환으로 진단받고 쭉 건강관리를 해오다 재작년 숨이 가빠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인터넷에서 송명근이라는 이름 석 자를 찾아냈고, 2007년 7월에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했다. 봉현 씨가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 10월에 수술받기로 예정돼 있다”고 말하자, 당시 아산병원 흉부외과에서 근무했던 송 교수는 상태가 급하다며 하루라도 빨리 수술 받을 것을 권했다. 평생 항응고제를 먹지 않아도 된다는 최신 수술법, 요즘 논란에 휩싸인 그 CARVAR(종합적 대동맥 근부 및 판막치환) 수술법이었다. 송 교수는 이 수술법이 완벽한 수술법이라는 점만 강조했다. 봉현 씨는 수술 뒤 2년 동안 사귀어왔던 여자 친구와 여행을 갈 계획이었다.수술 절차는 보름 만에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송 교수의 수술 뒤 일성은 “수술이 잘 됐다”였다. 그러나 웬일인지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덜덜덜 떨렸다. 봉현 씨는 의료진에게 뭐가 잘못 됐나 따지자고 했지만 김씨는 “의사를 믿고 기다려보자”며 말렸다. 아들은 며칠 뒤 귀가 안 들린다고 호소하며 정신을 잃었다. 수술 부위에 세균이 침투해서 염증이 생긴 것이었다. 심장 수술 뒤 2~3개월 이내에 발생한 심내막염은 수술과 관련된 부작용이라는 것이 학계의 견해지만, 봉현 씨는 수술 직후 문제가 생긴 경우였다. 봉현 씨는 CARVAR 링을 기계판막으로 교체하는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이때부터 송 교수 보기가 힘들어졌다. 송 교수는 재수술 뒤 휴가를 떠나 버렸다. 봉현 씨는 주치의가 없어 항생제만 복용하며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송 교수는 9월 초 다시 나타나서 재수술을 하고는 또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가족들은 봉현 씨가 추석 연휴에 제대로 처치도 받지 못했다고 여기고 있다. 환자는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송 교수는 수술 뒤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한 달 뒤 건국대병원으로 떠난다는 얘기가 나왔다. 건국대병원 흉부외과로 옮긴 송 교수의 뒤를 후배 이재원 교수가 맡았다. 그러나 이미 봉현 씨에게 심내막염의 합병증으로 혈관이 부어올랐다 터지는 ‘가성 대동맥류’가 발생한 상태였다. 직전에 송 교수의 환자 중 30대 여성 1명이 똑같은 수술을 받고 비슷한 상황이 생겨 숨졌기 때문에 병원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봉현 씨의 수술 부위는 이미 지독한 세균 감염으로 덮여있었다. 그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아버지 황 씨는 송 교수의 무성의한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다. “송 교수가 훌륭하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환자를 무성의하게 보는 의사가 어찌 명의이겠습니까? 수 백 억 원 기부한다는 것도 자신의 인기를 위해 그러는 것으로 비쳤질 따름이었습니다.”“송 교수가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 했지만 자식을 잃게 했다’고 진심을 보였다면 이렇게까지 원망하지 않았을 겁니다. 송 교수는 책임을 아산병원 교수들에게 떠넘기는 모양인데, 우리 같은 범부도 알 것은 압니다. 뒷수습한 아산병원 교수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송명근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CARVAR의 안전성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례가 한 건도 없다고 강조해왔다. 김 씨는 둘째 봉현이의 마지막 목소리가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아 가슴이 아프다. 아들은 “중환자실에서 주무시지 마시고 편한 데서 주무세요”라고 말했다. 김 씨가 들은 아들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봉현 씨는 다음날 새벽 간호사에게 “배고파요, 밥 좀 주세요”라고 말하고, 입원 105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26년의 짧은 삶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배고픈 상태에서 숨을 멈춘 것이 못내 가슴 아프다. 황 씨는 자신보다 아내가 걱정이다. 아내는 큰아들이 졸지에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유일하게 남은 아들 봉현의 다정하고 살가움에 기대 살았기에 충격이 더 컸다. 아내는 봉현 씨가 입원 중이던 105일 중 이틀 외에는 병원에서 살 정도로 둘째에게 매달렸다. 황 씨는 아들의 시신을 선산에 묻지 않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수목장을 하고 아내에게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다. 아내가 매일 아들의 혼을 찾아가서 눈물로 지새우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아내는 아들이 죽은 뒤 작은 일에도 쓰러진다. 황 씨는 농사를 하다가도 수시로 집에 전화해 아내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버릇이 됐다.황 씨 부부는 이번 설날에도 TV를 틀지 않았다. 오순도순한 가족들의 모습, 병원, 군대의 모습이 나오면 어쩐지 눈물이 핑 돌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의 방에 걸린 아이들의 어릴 때 사진은 아직도 떼어낼 수가 없다. 가끔씩 사진 속의 아들과 눈이 마주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지만, 그 사진이라도 없으면 갑자기 세상이 텅 비었다고 느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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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디기사-근데 이건좀 11.01 06:17
참으로 가슴아픈일입니다.하지만 수술후 심내막염을 제대로 치료못한 게 문제인데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돼죠.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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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글 퍼옴 11.01 10:22
“수술 명의는 수술 불필요한 환자도 수술하나요?” 송명근 교수에 “수술 남발” 비판 목소리 2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유언장으로 유명한 건국대병원의 송명근 교수가 꼭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환자들에게 수술을 강하게 권한 사례들이 드러나 “수술을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안전성 논란을 빚고 있는 대동맥 판막 수술법(CARVAR)과 관련해서도 ‘수술 남발’에 대한 의혹이 흉부외과학회의 논의 과정에서 구체적 사례와 함께 제기됐다.건국대병원 내에서는 송 교수가 환자의 치료법을 선택하면서 심장내과를 비롯한 동료 의사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어, 만약 송 교수가 ‘수술 만능주의’에 빠진다면 이를 제어할 수 없어 환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마라톤까지 한 청년, 수술 뒤 사망심장의 좌심방과 좌심실 사이에 있는 승모판막의 기능이 떨어져 있던 20대 여성 A씨는 지난 11월 송 교수를 찾아 갔다가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심장내과에서는 1년 정도 지켜보다 수술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던 A씨는 다른 대학병원 흉부외과를 찾았다. 그 교수는 “아직 젊어 2~3년 약물 치료를 하면서 상황을 지켜봐도 충분한데 왜 당장 수술해야 하느냐”며 말렸다.50대 남성 B씨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10여 년 전 심장판막 수술을 받고 한 대학병원에서 관리를 받아오다 ‘명의’ 라는 송 교수를 찾아갔고, “지금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전에 다니던 대학병원의 교수를 다시 찾았더니 “10년이 넘게 관찰을 해 왔는데, 며칠 사이에 갑자기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말렸다.30대 여성 C씨는 6개월 전 심장초음파와 며칠 전 찍은 심장초음파가 큰 차이가 없어 6개월 후에 다시 심장초음파를 찍기로 했다. 주변에서 “그러지 말고 송명근 교수에게 한 번 가보라”고 계속 권유해 이달 초순 찾아갔다가 “수술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다.30대 남성 D씨도 승모판막이 다소 좁아져 있었지만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었다. 한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아온 그 역시 송 교수를 찾아갔다가 “수술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송 교수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가 숨진 사례도 있다.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20대 남성 E씨는 10여 년 전 판막 교체 수술을 받았다. 그 뒤 건강관리에 만전을 기해 출퇴근도 자전거로 할 정도였다. 꾸준하게 다니던 병원이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8월 중순 송명근 교수를 찾았고 MRI를 찍었다.8월 31일에는 무더위 속에서 10km 단축 마라톤을 완주까지 하고 다음 날 MRI 결과를 상담하러 송 교수를 찾았다가 “역류가 심해 수술이 필요하다”는 얘길 들었다. 송 교수는 “새 수술법이 나와 한번만 더 수술 받으면 더 이상 수술이 필요 없고, 기존에 있던 것을 빼고 새로운 것으로 바꾼다”고 설명했다고 E씨의 가족들은 전했다.간단할 것이라던 수술은 15시간이나 걸렸으며, 송 교수는 가족에게 “수술은 잘 됐지만 전에 한 수술이 엉터리여서 회복에 시간이 좀 걸리겠다”고 말했다. 이후 그의 상태는 점점 악화됐고 20일 정도 혼수 상태에 빠졌다가 수술 40일만인 10월14일 숨을 거뒀다.수술을 받지 않은 A, B, C, D씨와 숨진 E씨의 차이는 ‘다른 의견(second opinion)’을 들었는지 여부에서 발생했다. A, B, C, D씨는 다른 의사를 찾아가 한번 더 상담했지만 E씨는 송 교수가 “수술을 안 받으면 심각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번에 하면) 다시는 수술을 안 받아도 된다”고 강력하게 수술을 종용하자 그 말을 전적으로 믿고 수술대에 올랐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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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11.02 01:35
아래글 쓰신분 참 악의적입니다. 의사가 밤을 새며 온갖 정성을 다해도 환자를 잃는 일이 일어납니다. 수술잘되도 폐렴이 올 수도 있고 항생제 내성으로 아무 항생제도 안듣는 경우, 약제부작용등등 뜻하지않은 일이 일어납니다. 이럴때 가족의 슬픔에 비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집도의사는 견디기 어렵고 외과의사라는 직업에 회의가 생기죠. 심장수술이 어떤건데 송교수님 같은 분이 불필요한데 수술할리도 없고아래글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듣기로 카바는 1000여명 수술했다는데 그중 몇명의 부작용을 골라 이런식으로 쓴다면 대한민국 외과의사로서 자유로운 분 나와보시라고 하세요. 더구나 송교수님처럼 중증 경증 가리지않고 수술하시는 대단한 분에게 이런 익명의 글을 올려서 음해하시는 분 정말 나쁩니다. 이런 고약한 분위기에서 외과의사라는 게 두렵고 요즘 3D로 치부되어 지원자도 없는 외과를 의업의 꿈을 가지고 택한게 바보같은 짓이었다는 생각이 절실히 듭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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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01.26 09:35
정말 악의적인 사람은 송명근입니다. 별로 중하지도 않은 환자를 수술 시켜서 그 중 반 이상에서 부작용이 발생하였지요.완전히 돈독 오른 사람입니다.그런 사람을 두둔하는 아래 사람... 건대홍보팀도 정말 악질입니다.환자야 죽든 말든 이지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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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향적 연구 12.10 23:30
모든 것은 전향적 연구로 밝혀지겠네요.송교수가 전향적 연구로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낭중지추라고 뛰어난 수술법이니 진가가 금방 드러날 것입니다.전향적 연구 받으실거지요, 송교수님?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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