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양자역학의 문제점은 전자의 속도가 양자화(불연속적)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옳았다.
만일 양자역학이 옳다면 전자의 속도(v)는 양자화되어야 하죠. 다시 말해서 전자의 속도가 불연속적인 값을 가진다는 것이죠. 그러나 전자의 속도는 연속적인 값을 가질 수 있죠.
물질파(드 브로이파)의 파장(람다 λ)은 λ=h/(mv) 여기서 mv는 운동량p임 mv=p
만일 양자역학이 옳다면 물질파의 파장(λ)은 양자화되어야 하죠.
그러나 전자의 파장은 연속적인 값과 불연속적인 값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죠. 연속적인 값이 불연속적인 값을 포함하죠.
연속적인 값 ⊃ 불연속적인 값
결론적으로 입자의 운동량(p)과 위치(x)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완전하게 창조하셨는데 양자역학(불확정성 원리)처럼 불완전하게 창조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논문 확정성 원리의 기초에 관하여(2000년 5월 중순에 발견), 논문 비양자역학의 기초에 관하여(2001년 7월 중순에 발견,A4용지 13페이지분량)
비양자역학(확정성 원리)이 아인슈타인등등이 기대했던 이론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불확정성 원리)이 불완전하다면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죠. 비국소 숨은 변수 이론(non-local hidden variable theory)이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와 플랑크,봄,와인버그등등이 기대했던 이론입니다. h=mλc에서 빛의 속도(c)가 변하므로 플랑크상수(h)는 플랑크변수(숨겨진 변수)가 됩니다. 드디어 제가 숨겨진 변수를 발견해서 양자역학(불확정성 원리)을 대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아마추어 물리학자(크리스천)입니다.
출처: http://snuphyalibrary.tistory.com/guestbook?time=1504686411 [] 서울대 물리학부 물리도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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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정성의 원리가 틀리다면 어떻게 광전효과랑 흑체복사가 설명과 자외선파국은 어떻게 설명 하실건가요?
제목) '한국은 언제 노벨과학상을 받을 것인가?'라고 강연한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스카와 도시히데
시립도서관과 대학도서관등등에서 현대물리학을 10년이상 독학해서 이론물리학 논문 10 여편과 수학논문 1편(논문 제목: 데카르트 좌표계를 적용한 60도의 3등분 작도에 관하여)을 완성했고 일본의 교토대학교 유카와 이론물리연구소에 1998년쯤에 물리학 논문 2편(일본어로 번역)을 국제우편으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회신은 없었으나 반송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 긍정적인 반응을 했다고 추측합니다. 일본 교토대학에 보낸 논문들 제목은 논문 새로운 파이π 중간자(소립자)의 발견에 관하여, 논문 특수상대성이론은 틀렸는가? 부제) 광속도 가변(가감)의 법칙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마스카와 도시히데가 1998년에 유카와 이론물리 연구소의 소장이었습니다. 마스카와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이후에 한국에 왔는데 '한국은 언제 노벨과학상을 받을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과학강연을 했죠.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만 78세)=일본 교토산업대 교수로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다. 그는 나고야대 물리학과 4년 후배인 고바야시 마코토(小林誠·만 74세) 일본 고에너지 가속기연구소(KEK) 명예교수와 함께 1973년 ‘고바야시-마스카와 이론’을 내놓았다.
한 달 만에 A4용지 6쪽 분량으로 정리한 이 이론은 일본(Belle,벨)과 미국의 가속기 실험(BaBar,바바)을 통해 2002년 증명됐다. 나고야대학에서 박사까지 마쳤고 도쿄대학 원자핵연구소 조교수, 교토대학 기초물리학 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현대의 물질관과 아인슈타인의 꿈』『지금 또 하나의 소립자론 입문』 등이 있다.(이책들이 번역되어서 출판되었으면 하네요.)
고바야시-마스카와 이론은 일본의 영어학술지인 이론물리학의 진보(Progress of Theoretical Physics)에 1972년 9월에 투고되어서 1973년에 발표되었죠. 고바야시-마스카와 이론은 쿼크는 6원(元)만 존재한다는 이론이고 우주에서 CP 대칭성의 파괴를 설명한 이론이죠. C(Charge)는 전하이고 P(Parity)는 거울 상(이미지)을 말하죠. 이론물리학의 진보는 1949년에 일본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가 창간한 영어학술지입니다. 참고로 저는 아마추어 물리학자(크리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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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정성의 원리가 틀리다면 어떻게 광전효과랑 흑체복사가 설명과 자외선파국은 어떻게 설명 하실건가요?
제목) 이휘소에 대해서 잘못 알려졌던 사실이 옳은 점이 있었다.(강주상이 옳은 점이 있음,책 이휘소평전) 박정희 대통령은 핵무기를 완성하고 사퇴하려고 했다.(이휘소 박사님이 만일 살아 계셨다면 1999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을 가능성이 높았음)
책 로스트 이휘소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핵무기가 완성되고 나면 1980년이후에 핵무기를 공개하고 나서 사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잘한 것은 빼고 국민에게 잘못했던 내용의 사퇴성명서를 쓰라고 당시 선우련 국회의원에게 1979년 1월에 말했는데 증인이 2명이 더 있었다고 선우련 국회의원이 나중에 알았다고 합니다.
김재규는 박 대통령이 사퇴할 것이라는 것을 몰랐죠.
소립자 물리학계 천재 과학자 이휘소(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서(편지)를 이휘소에게 보냈고 1977년에 일본에서 어머니에게 친서를 주면서 잘 보관하라고 말했으나 분실했고 복사본은 이휘소가 갖고 있다고 어머니에게 말했음)
소립자 물리학계 천재학자 이휘소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휘소는 경기고 2학년 때 대입검정을 거쳐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수석입학. 재학중 미국으로 건너가 1956년 마이애미대학 물리학과를 수석졸업, 1958년 피츠버그대학 석사,
1960년 펜실베이니아대학 이학박사를 받고, 28세로 이 대학 정교수가 된다. 이후 뉴욕주립대학 교수를 거쳐 시카고대학 이론물리학교수 겸 페르미연구소 이론물리연구부장 등을 맡는다. 그는 특히 1960년대 SU(6) 군이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1970년대 쿼크와 참이론(charm,참 쿼크의 질량을 이론적으로 정확하게 계산)으로 명성을 높였으며, 게이지장이론을 다루면서 이 분야에 독보적인 기여를 한다. 1972년 발표된 게이지장이론은 그의 가장 훌륭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살람은 이를 거의 완벽한 이론이라고 극찬한다.
1974년 9월 이휘소는 미 국무부 요청으로 서울대에 AID교육차관 타당성조사차 20년 만에 귀국한다. 이때 박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로 초청, 국가안보위협을 상기시키며 그의 귀국을 요청한다. 핵무기개발에 참여하고 싶지 않던 그는 대통령의 제의를 사양하지만, 강대국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조국의 신세에 고민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기개발 집념
1977년 3월 이휘소는 다시 박 대통령으로부터 그의 귀국을 간청하는 편지를 받는다. 주한미군 1만7천여명이 철수를 시작했다는 급박한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이휘소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일기에 담는다.
“조국이 공산화되거나 전쟁소용돌이 속에 처할 위험에 놓여 있다고 가정할 때, 내가 조국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핵개발원리를 제공한다면, 나를 낳고 나를 길러준 조국현실을 내가 배반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것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죽는다! 내가 죽어 조국을 살릴 수 있다.…하늘이여! 무엇이 참다운 삶이고 내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소서.”
마침내 이휘소는 친분있는 외과의사를 찾아가 미사일·핵무기 제조원리를 따로 정리·축소해 만든 기밀문서를 내민다. 그의 다리 살 속에 소독된 종이가 넣어졌다. 5월 20일 이휘소는 세미나 참석차 도쿄를 방문, 그날밤 비밀리에 청와대에 도착해 대통령에게 이 문서를 전달한다.
1977년 6월 16일, 이휘소는 세미나 참석차 가족과 함께 자가용으로 집을 나섰다. 시내를 벗어나자 트럭 몇 대가 그의 차에 따라붙었다. 일리노이주에 가까운 케와네시 근처(고속도로)에 이르렀을 때, 맞은편에서 오던 대형 유조차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이휘소와 가족이 탄 차를 정면으로 들이받는다. 차 앞머리가 처참히 부서지고 가족 모두 정신을 잃는다. 가족들은 가벼운 부상을 입었으나 이휘소는 사망하고 만다.
이휘소가 한국에게 미사일 및 핵 제조원리를 넘겨주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전후, 미국의 원자력정책은 급전환한다. 카터 미국 대통령은 한국정부에 ‘인권탄압중지, 긴급조치 즉각해제, 독자적 핵개발추진 즉시중지’ 등을 압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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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휘소에 대해서 잘못 알려졌던 사실이 옳은 점이 있었다.(강주상이 옳은 점이 있음,책 이휘소평전) 박정희 대통령은 핵무기를 완성하고 사퇴하려고 했다.(이휘소 박사님이 만일 살아 계셨다면 1999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을 가능성이 높았음)
책 로스트 이휘소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핵무기가 완성되고 나면 1980년이후에 핵무기를 공개하고 나서 사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잘한 것은 빼고 국민에게 잘못했던 내용의 사퇴성명서를 쓰라고 당시 선우련 국회의원에게 1979년 1월에 말했는데 증인이 2명이 더 있었다고 선우련 국회의원이 나중에 알았다고 합니다.
김재규는 박 대통령이 사퇴할 것이라는 것을 몰랐죠.
소립자 물리학계 천재 과학자 이휘소(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서(편지)를 이휘소에게 보냈고 1977년에 일본에서 어머니에게 친서를 주면서 잘 보관하라고 말했으나 분실했고 복사본은 이휘소가 갖고 있다고 어머니에게 말했음)
소립자 물리학계 천재학자 이휘소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휘소는 경기고 2학년 때 대입검정을 거쳐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수석입학. 재학중 미국으로 건너가 1956년 마이애미대학 물리학과를 수석졸업, 1958년 피츠버그대학 석사,
1960년 펜실베이니아대학 이학박사를 받고, 28세로 이 대학 정교수가 된다. 이후 뉴욕주립대학 교수를 거쳐 시카고대학 이론물리학교수 겸 페르미연구소 이론물리연구부장 등을 맡는다. 그는 특히 1960년대 SU(6) 군이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1970년대 쿼크와 참이론(charm,참 쿼크의 질량을 이론적으로 정확하게 계산)으로 명성을 높였으며, 게이지장이론을 다루면서 이 분야에 독보적인 기여를 한다. 1972년 발표된 게이지장이론은 그의 가장 훌륭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살람은 이를 거의 완벽한 이론이라고 극찬한다.
1974년 9월 이휘소는 미 국무부 요청으로 서울대에 AID교육차관 타당성조사차 20년 만에 귀국한다. 이때 박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로 초청, 국가안보위협을 상기시키며 그의 귀국을 요청한다. 핵무기개발에 참여하고 싶지 않던 그는 대통령의 제의를 사양하지만, 강대국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조국의 신세에 고민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기개발 집념
1977년 3월 이휘소는 다시 박 대통령으로부터 그의 귀국을 간청하는 편지를 받는다. 주한미군 1만7천여명이 철수를 시작했다는 급박한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이휘소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일기에 담는다.
“조국이 공산화되거나 전쟁소용돌이 속에 처할 위험에 놓여 있다고 가정할 때, 내가 조국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핵개발원리를 제공한다면, 나를 낳고 나를 길러준 조국현실을 내가 배반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것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죽는다! 내가 죽어 조국을 살릴 수 있다.…하늘이여! 무엇이 참다운 삶이고 내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소서.”
마침내 이휘소는 친분있는 외과의사를 찾아가 미사일·핵무기 제조원리를 따로 정리·축소해 만든 기밀문서를 내민다. 그의 다리 살 속에 소독된 종이가 넣어졌다. 5월 20일 이휘소는 세미나 참석차 도쿄를 방문, 그날밤 비밀리에 청와대에 도착해 대통령에게 이 문서를 전달한다.
1977년 6월 16일, 이휘소는 세미나 참석차 가족과 함께 자가용으로 집을 나섰다. 시내를 벗어나자 트럭 몇 대가 그의 차에 따라붙었다. 일리노이주에 가까운 케와네시 근처(고속도로)에 이르렀을 때, 맞은편에서 오던 대형 유조차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이휘소와 가족이 탄 차를 정면으로 들이받는다. 차 앞머리가 처참히 부서지고 가족 모두 정신을 잃는다. 가족들은 가벼운 부상을 입었으나 이휘소는 사망하고 만다.
이휘소가 한국에게 미사일 및 핵 제조원리를 넘겨주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전후, 미국의 원자력정책은 급전환한다. 카터 미국 대통령은 한국정부에 ‘인권탄압중지, 긴급조치 즉각해제, 독자적 핵개발추진 즉시중지’ 등을 압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