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실 진료 및 수술 과실로 태아를 사망케 했다는 이유로 산모 측으로부터 수억여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렸던 의사가 대법원 상고심 및 고등법원 파기 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법부는 태아 사망 사고가 발생한 병원 소속 간호사들의 일부 진료 과실을 인정했지만 그 과실이 태아의 죽음과 직결된다고 볼 수 없는 사실과 환자(산모)에 대한 최선 진료를 다한 의사의 치료 행위를 근거로 죄가 없음을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 이대경 부장판사는 최근 산모 측이 의사를 상대로 낸 의료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 의사 패소 부분을 모두 취소하고 소송비용도 전액 산모측이 부담하라"는 내용의 확종 판결을 내렸다.
태아 사망 결과와 의료진의 진료 과실 간 개연성 정도가 승패를 갈랐으며,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판정받은 의사는 정상 진료 및 최선 의무를 인정받아 고등법원 환송심에서 최종 무죄를 이끌어 냈다.
사건은 지난 2010년 7월경 산모 B씨가 급격한 진통을 호소하며 의사 E씨의 산부인과를 찾아온 것이 발단이다.
당시 새벽 3시경 산모 B씨는 심한 진통을 호소하며 산부인과를 찾았으나 당시 병원에는 담당의사가 없었고 간호사만 근무 중이었다.
간호사는 산모 자궁 상태와 자궁경부의 열리는 정도 등을 관찰하며 자연분만을 준비했고 주치의는 산모 분만 직전인 새벽 5시 병원에 도착, 분만을 돕기 위해 회음부 마취 후 절개를 실시했다.
태아는 10여분 뒤 4.8Kg의 거대아로 태어났고 출산 당시 자발호흡을 하지 못하면서 사지가 늘어지고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는 이상 상태였다.
타 병원으로 옮겨진 태아는 신생아 경련 및 뇌병변 1급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2달 뒤인 9월 심폐 정지로 사망했다.
신생아를 잃게 된 산모와 남편은 의료진의 무리한 자연분만 고집과 간호사의 불성실 진료 등을 주장하며 의사 E씨에 3억5000여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을 맡은 서울서부지방법원은 병원 간호사(의료진)의 진료 과실을 인정해 2200여만원의 손해배상액을 산모측에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의료진은 산모 자궁경부가 열린 뒤 15분마다 태아의 심박수를 확인했어야 하는데도 이를 게을리했다"며 "태아의 변이 자궁 내 발견되는 등 이상 증세가 보였는데도 세심한 태아 심박 관찰을 하지 않아 즉각적인 의학 조치를 취할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해 의사 패소를 결정했다.
2심 고등법원 역시 1심 재판부와 동일한 취지로 의사 패소를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1, 2심 재판부의 판결을 완전히 뒤집었다. 의사가 늦게 병원에 도착한데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고 간호사들이 태아 심박 체크를 소홀히 한 것이 태아의 사망과 직결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원 재판부는 "의사가 환자 치료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면 업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봐야하지만 의무 위반과 환자에게 발생한 악결과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환자는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선판례를 그대로 인용했다.
즉 의사의 진료행위가 일반상식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현저하게 불성실하지 않은 이상 태아 사망이라는 악결과와 연관져 수억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사건 병원 간호사가 태아의 심박수를 1회밖에 체크하지 않은 과실이 인정되나 이것이 태아의 죽음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다"며 "의사 E씨는 산모 분만 직전이 돼서야 병원에 도착했으나 오던 중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일으켜 이를 수습해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있었다"고 적시해 의사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 환송심을 재심리하게 된 고법 재판부도 "설령 병원 의료진에게 망아의 심박동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과실이 인정된다고 해도 그 위반 정도가 비상식적인 불성실 진료라고 볼 수 없다"며 "의사의 도착 지연, 간호사 의무 위반 등이 산모 분만을 지연시켰다거나 분만과정에 문제를 일으켰다고 볼 만한 어떤 기록도 찾을 수 없다"고 판시해 의사 무죄를 최종 판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