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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기도 전에 접은 35살 한약사 늦깍이 '꿈'
[ 2004년 07월 19일 09시 53분 ]
"한약사 되면 장가부터 가려고 했는데..."
최근 정부과천 청사 앞에서 단식투쟁을 벌이는 이진성(35, 우석대 한약학과)씨의 넋두리다.
지방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이씨는 졸업 후 확실한 장래를 보장 받고자 29살의 나이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당시 수학능력시험 성적 결과 2% 안에 들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이씨는 진학할 대학교를 물색하던 중 '한약학과'라는 다소 생소한 학과를 접하게 된다.
막연하게 한의사, 약사 등과 동일 수준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이씨는 자신있게 우석대 한약학과를 지원, 만학도의 포부를 키우려 했지만 현실은 그의 이상과 상당한 괴리를 두고 있었다.
대학생활 3년 동안 한약사의 불투명한 미래를 보게된 이씨는 동료 학우들과 함께 정부측에 억울한 상황을 주장해 봤지만 "방법이 없다"는 공허한 메아리만 들어야 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판단한 이씨는 무작정 상경, 정부청사 앞에 자리를 깔고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한약사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약사법은 한약사를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 한약을 조제 또는 판매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즉, 한약사는 한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한약을 판매할 수 있다는 뜻. 하지만 2000년 7월1일 의약분업이 전면 실시된 양방과 달리 한방은 아직 의약분업이 도입되지 않았다.
한의사가 처방, 조제, 판매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한약사에게 처방전을 발행할 한의사는 단 한 명도 없다.
결국 국가고시를 통해 사회적 지위의 수직상승을 꿈꾸던 한약사들은 개업을 포기하고 업종을 바꾸거나 실업자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약사 면허증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의료행위는 보건복지부가 정한 100가지 처방(이하 100방) 안에서 한약을 조제 또는 판매하는 것이다.
하지만 100방은 십전대보탕과 같이 일반인들도 약재를 사서 섞어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기초적 처방일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배출된 한약학과 출신 한약사는 300여명 정도지만 현재 한약국을 개업한 한약사는 100명도 채 되지 않는 실정.
개업한 한약국들도 속속 망해가고 있으며 전문의료인인 한약사가 서울 경동시장의 한약업사(판매상)에게 고용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개인적인 희생은 그렇다 치고도 국가적으로도 전문인력이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그럼, 한약학과는 왜 생겼나?
이에 대한 해답은 1993년 한의사와 약사 간에 벌어진 한약분쟁 과정에서 이뤄진 '야합'에 숨어있다.
한약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던 한의사와 약사들은 다음해인 94년 '한방의약분업을 3년 안에 실시한다'는 경실련의 중재안에 합의했고 정부는 이를 실행하기 위해 한약사 제도를 신설키로 했다.
처방전을 발행할 한의사는 있는데 이를 받아 한약을 조제할 한약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심으론 서로 자신들만 한약에 대한 배타적 조제권을 인정받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자 양측 모두가 조제권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이 합의안을 토대로 정부는 96년 경희대와 원광대에, 98년에는 우석대에 각각 40명 정원의 한약학과를 만들었고 이 한약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은 2000년부터 한약사 국가고시를 통해서 한약사 면허를 획득했다.
하지만 '3년 후 한방의약분업을 실시한다'는 합의안은 약사법 개정에서 슬쩍 빠져버렸고 그 후 한방의약분업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대신 약사법에 한약사의 조제범위를 100방에 한정한다는 조항만이 신설됐다.
배수진을 칠 수 밖에 없는 상황
세월이 지나도 한방의약분업이 이뤄지지 않고 100방 제한이 풀리지 않자 당장 다급해진 것은 한약학과 학생들이었다.
한약사는 주로 약재로 병을 다스리는 한의학의 특성상 한방분업만 되면 한의사나 별반 지위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초창기 한약학과에는 수능성적 5% 이내 학생들이 모여들 만큼 인기가 높았다.
때문에 생업을 그만두고 입학한 '아저씨 대학생'들이 많아 학과 평균연령이 30세를 웃돌기도 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한약학과에 들어온 학생들은 2000년 1회 졸업생이자 1기 한약사들이 사회로 진출했다가 개업조차 하지 못한 채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항의집회, 수업거부, 시험거부로 이어지던 대정부 투쟁은 2001년 11월 '폐과 신청'이라는 극단적 행동으로 나타났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 학부모까지 가세한 폐과 신청은 무늬뿐인 한약학과 자체를 없애버리자는 '폭탄 제안'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 때도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3년여 동안 잠잠했던 '시한폭탄'에 불을 당긴 것은 ‘약대 6년제’였다. 약계는 약사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약대 6년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약학과를 배제시켰고 복지부 역시 이를 묵인했다.
더욱이 한의계에서도 한약학과 6년제에 대해 '시기상조론'을 제기하며 한약학과 학생들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참다 못한 학생들은 지난달 과천정부 청사로 몰려와 단식투쟁에 돌입했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투쟁에 임하고 있다.
한약학과 학생들로서는 마지막 배수진을 친 셈이다.
기자가 추가 취재를 위해 만학도 이진성씨를 다시 찾았을 때는 이미 장기간 단식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후였다.
탁상행정의 사생아인 '한약사제도'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제2, 제3의 이진성씨는 '불을 보듯 뻔한' 자명한 일이 될 것이다.
박대진기자 djpark@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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