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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아라파트 사망과 안락사
[ 2004년 11월 12일 10시 58분 ]
팔레스타인 해방투쟁과 노벨평화상 수상, 가택연금 등등. 중동의 풍운아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일생을 함축하는 말들이다.

그런 그가 11일 사망했다. 정치, 사회적 여파로 전세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계에도 이날 하루 설왕설래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사망 후에도 곧장 밝혀지지 않은 아니 영원히 묻혀버릴 수도 있을 사인(死因)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혈소판수 저하증을 제기해왔다. 그래서 독극물 중독의 가능성도 연계됐다. 하지만 의료계는 사망 전날 일부 외신에서 흘러나온 '안락사' 추측에 주목한다.

한 교수는 "첨단 의학 시대에 열흘씩이나 병명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사실 거짓일 것"이라며 "정치적 논란을 배제하고 병명을 숨기는 이유가 안락사 때문이라면 이에 대한 프랑스 의학계의 논란도 치열해 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안락사는 정통 구교국인 프랑스에서 불법이다. 또 이슬람 정서에도 반(反)한다. 아라파트의 죽음이 미궁으로 빠지는 것은 정치적 문제를 차치할 때 이러한 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만약 프랑스가 네덜란드처럼 안락사를 합법화 했었다면, 적어도 일본처럼 존엄사에 대한 공감의 폭이 넓기만 했더라도 그의 사인 중 하나로 안락사가 지목될 가능성은 희박했을 듯도 싶다. 물론 그 배후엔 예측 불허의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의료계의 전망처럼 이번 아라파트 죽음에 거론된 안락사 문제가 입법 논의중인 프랑스의 안락사 허용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측면서 우리나라는 어떤가.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촉발된 안락사 논란은 아직도 논란에 그친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돼 있기에 빨리 입장이 정리돼야 한다는 점에는 다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이 공감대에 불을 붙일 '프랑스의 아라파트' 같은 극적 단초가 우리에게도 있어야만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언제 제2의, 제3의 보라매사건이 발생할지 모르는, 지금 이 순간도 생사의 기로에서 갈등하고 있을 환자 가족과 의사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아라파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들이 예사롭게 지나쳐지지 않은 까닭이다.
김현정기자 hjkim@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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