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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다시 공부해서 의대 가야죠"
[ 2006년 01월 17일 21시 50분 ]
몇 달 전 한 의대입시 설명회에서 만난 A씨는 올해로 벌써 다섯 번째 대학 입시를 치룬 장수생이다. 그의 목표는 의대다.

“지난해에는 절에 들어가서 수능 공부를 했는데 이번에도 잘 안 될 것 같네요” 조심스럽게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떻게 할지 물었다. 의외로 A씨는 확고한 대답을 들려줬다.

“군대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으니깐 군대부터 다녀와서 다시 공부해야죠. 의대 가야죠”왜 의대만을 고집하냐고는 차마 물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왜 의사가 돼야 하는지 매우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대를 졸업하고 취직하면 초봉이 2400~2700만원 정도지만 의사가 되면 초봉이 못해도 6000~8000만원 정도는 되지 않느냐”며 “개업을 하면 남 눈치 보지 않고 돈 벌면서 번듯한 직업이라고 목에 힘주고 살 수 있는 직업이 의사 아니냐”는 것이 바로 그의 생각이다.

‘의사 현실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좋은 직업은 여전히 의사’라는 A씨. 17일 의사협회에서 주최한 ‘의사의 직업성 및 미래’ 강연회를 취재하면서 내내 A씨의 말이 떠올랐다.

“아무나 의대 오지 말라는 말은 의사 욕 먹게 만들 사람은 의사 되지 말고 환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진료할 수 있는, 의사의 사회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의대에 진학해야 한다는 의미다” 17일 강연의 핵심이다.

A씨는 이 말에 어떤 대답을 할까. ‘의사의 현실이 어렵다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의사만큼 매력적인 직업이 또 있느냐’고 반문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꿈이 잘못됐다면 비난 받고 말겠다’는 볼멘 소리를 할 수도 있겠다.

강연에서 제기된 주장은 분명 옳은 말이지만 ‘의사’가 꿈인 수험생들에게는 쉽게 공감을 얻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의사’는 단지 장래 희망 수준이 아니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의식 깊숙하게 자리잡은 ‘성공한 인생’의 전형이 바로 의사다. ‘포기할 수도 없는, 흔들리지 않는’ 의지인 것이다.

최근 각 의대에서 의학전문대학원 전환을 발표하면서 의대 진학을 앞둔 수험생들 사이에 생겨난 유행어가 있다. ‘저주받은 88년생’이란 말이다. 의학전문대학원 전환을 앞두고 의대 정원이 점차 줄어들면서 특히 88년생은 의대 가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17일 강연을 찾은 한 고교생도 자신을 ‘저주받은 88년생’이라 불렀다. “제 때 의대를 가지 못하면 재수를 해야 하는데, 의학전문대학원을 고려하면 다른 과를 다니면서 대학 내내 의대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니 생각만해도 끔찍하다”고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의사를 꿈꾸는 수험생들의 머리 속에는 ‘의사의 현실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진심어린 충고는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의사 현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보다 더 적나라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확인한 것 같아 씁쓸함이 남았다.
이근주기자 gjlee@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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