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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은혜 모르는 사막과 녹십자 속앓이
[ 2006년 01월 30일 21시 58분 ]
초여름 비는 며칠마다 한 번씩 꾸준히 내렸다. 논밭에 비가 내리자 씨앗들은 싹을 틔워 들에는 푸른 주단이 펼쳐졌다.

과수원에도 비가 내리자 가지마다 새 움이 터 울긋불긋 꽃들이 피어났다. 연못에 비가 내리자 개구리가 밤낮으로 풍요로운 대지를 노래했다.

그러나 사막에도 비가 내렸지만 사막은 빗물을 빨아들이기만 하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비의 신이 곤혹스러워 사막에게 물었다.

"비가 내리면 이 드넓은 대지는 끝없이 번창하는데 당신은 대관절 뭘 하고 있는 거요?" 사막은 눈만 깜박거렸다.[중략]

파라독스 중국 우화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작금의 녹십자의 상황과 대변되는 것 같다.

국내 혈액제제의 상당량을 생산해 온 녹십자는 지난 1991년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혈우병 환자들을 위한 한국혈우재단을 설립했다.

한국혈우재단은 당시 의료혜택의 변방에 놓여있던 혈우병 환자들에게 '희망'으로 받아들여지며 많은 기대와 함께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재단 설립 후 얼마되지 않아 환자들과 갈등을 빚으며 녹십자는 재단 운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에 이른다. 물론 사회환원의 정신을 살려 매년 30억원에 가까운 후원금 지급은 유지한 상태로. 하지만 녹십자는 이후로도 여러차례 환자들과의 마찰로 적잖은 고충을 겪었다.

오염 혈액 파문이 발생할 때마다 녹십자는 환자들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급기야는 환자들로부터 고소를 당해 법정까지 서기도 했다.

최근에는 재단이 운영하는 의원 원장과의 커넥션 설(說)로 또 한번 홍역을 치르고 있다. 환자를 위해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도 욕을 먹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녹십자는 혈우재단에 대한 후원금 지급 중단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녹십자는 '질병 없는 사회 만들기'라는 회사의 이념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녹십자는 지난 10여 년간 300억원이 넘는 후원금을 혈우병 환자들을 위해 제공했다. 한 기업의 사회환원 치고는 결고 적지 않은 액수다.

그러나 사회적 관심이 필요했던 혈우병 환자들에게 그동안 단비를 내렸지만 보람을 찾을 수 없게 됐다. 의료 사각지대에 내 몰려 있던 환자들에게 온정을 베풀고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이 정초부터 녹십자의 맘을 무겁게 하고 있다.
박대진기자 djpark@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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