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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수없는 산부인과 '혀만 끌끌'
[ 2006년 12월 03일 22시 06분 ]
"잔인하고, 냉혹하고, 비겁하다." 이번엔 비판보다 무서운 냉소다.
2007년도 전공의 최종 모집 결과가 발표되면서 전국 수련병원의 산부인과는 한동안 또 깊은 시름에 잠길 듯하다. 올해에도 전국 상당수 수련 병원에서 미달 사태가 속출한 가운데 세브란스병원은 8명 정원에 5명, 가톨릭의료원은 17명 정원에 단 1명만이 지원했다. 이대로라면 희망의 싹은 물론 그 줄기조차 말라버릴지 모른다.
"온 나라에 성형·라식수술은 넘쳐나는데 정작 응급수술을 제때 받지 못하게 될 이 재앙을 두 손놓고 바라만 보고 있을 셈인지…"라고 말끝을 흐리는 산부인과 의사들과 전공의들은 뾰족한 묘수가 없는 현실에 혀를 끌끌 찬다.
최근 산부인과 등의 의사 인력이 크게 부족해지자 병원들이 암묵적으로 무면허 의료시술자(일명 오다리)까지 수술에 가담시키는 등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실상이 알려져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져야 할 의료계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돈에 눈이 멀어서일까.가톨릭의료원 산부인과 김진홍 교수는 "정답은 바로 1977년 도입이래 저보험료, 저수가, 저급여 형태로 추진돼온 건강보험정책에 있다. 건강보험정책이 의료 체계의 왜곡현상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라고 근본 문제를 짚었다.
그의 주장이 맞다면 이러한 시나리오를 한번 그려보자.
만약 "쌀은 온 국민의 주식이므로 전국의 모든 수퍼마켓은 원가 15만원인 쌀 한 가마를 10만원에 판매하고 반찬거리인 고등어통조림을 팔아서 경영수지를 맞춰라"고 법으로 정해 놓는다면 수퍼 주인들은 과연 가만히 있을까.
총칼을 들이대고 하라면 당장은 하겠지만 언젠가는 슬금슬금 눈치를 봐가며 판매 행태를 바꿀 것이 분명하다. 가능한 한 '쌀은 없다'고 하면서 안 팔려고 할 것이다.
반면 고등어통조림은 전세계 브랜드를 다 갖다 놓고 어떤 제품이 몸에 좋은 '오메가 3'가 가장 많이 들어 있다는 등 마케팅 문구도 커다랗게 써놓을 것이다.
만일 지금과 같은 의료시스템이 앞으로도 존속된다면 우리나라 미래의 의료는 이 가상시나리오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의료보험이 도입된 이래 보건의료정책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의 문제가 적정급여와 적정수가로 귀결된다.
그럼에도 한국의 보건의료정책은 이 핵심사항을 외면한 채 미봉적인 방법으로 근근이 위기를 모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전공의 양극화 현상이 바로미터다. 같은 맥락으로 1977년 의료보험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될 당시 인기가 높았던 산부외과는 그 뒤 산부인과 건강보험수가가 낮게 책정되면서 이미 10여년 이상 전공의 정원미달 상태로 지내왔다.
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 최영렬 회장은 "산부인과는 국가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의 탄생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냉대를 받고 있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건강보험수가는 매우 강력한 의료정책 수단이다. 의사들은 해당 의료행위가 적정수가 이하의 경우면 외면하려 할 것이고 해당 의료행위가 적정수가 이상이면 빈도를 늘리려고 할 것이다. 수퍼의 쌀과 고등어 통조림의 이야기처럼….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왜곡된 현상을 바로잡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빨리 보험수가의 적정한 재책정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정숙경기자 jsk6931@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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