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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의사의 '잔다르크' 찾아서
[ 2007년 05월 04일 03시 10분 ]
턱없이 부족한 전공의와 열악한 환경,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인 수가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술의 꽃’으로 불리는 외과가 붕괴위기에 놓여있다. 우수한 학생들이 일명 잘(?) 나간다는 피부과와 성형외과 등으로 몰리면서 앞으로 외과의사를 수입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명 ‘3D' 업종으로 평가받는 외과. 남자 의사도 피해가고 싶은 이런 외과를 ’천직(天職)‘으로 여기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여의사가 있어 데일리메디가 밀착취재를 통해 그녀의 하루를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지난 14일 새벽 6시 30분. 경희의료원 서관 6층 외과 공부방. 일명 오더방(처방을 내리는 곳)으로 불리는 이곳에 회진 20분을 남겨두고 1년부터 4년차까지 5명의 전공의가 환자 CT 사진을 보고 있다. 민선영
[사진]
씨 역시 진료기록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유방 및 갑상선 분야의 석학인 고석환 과장이 도착하자 공부방은 ‘폭풍전야(暴風前夜)’처럼 정적이 감돌았다. 아침 회진은 밤사이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는 중요한 시간임과 동시에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교수와 대면하기 때문에 더욱 긴장되는 순간. 더욱이 교수가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답할 수 있도록 진료 기록을 꿰고 있어야 하므로 전공의로선 피하고 싶은 시간이다.
수술실 데드라인, 빠듯한 일정
8시 4분.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컨퍼런스를 마친 뒤 민선영씨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당장 8시 30분부터 1개월 소아의 탈장 수술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주어진 수술 준비 시간은 단 20분. 민선영씨 등 수술에 참여하는 10여명이 숨 가쁘게 움직인다.
환자 진료기록을 체크하고 수술에 대한 전반적인 진행을 담당하는 것은 수술실 치프인 민선영씨 몫이다. 보통 전공의 4년차는 수술실 치프를 맡는다. 1년차가 차트업무를 담당하고 2년차가 수술방 어시스트와 병실담당, 3년차가 병실 치프로 구분된다.
마취의의 마취 후 소아외과 오수명 교수의 등장으로 수술이 시작됐다. 벤틸레이터(인공호흡기)의 일정한 신호음만이 수술방을 가득 채운 채 Metzembaum, Needle Holders 등 의료용 수술기구를 부르는 소리만 간간히 들린다.
하루 평균 4번의 릴레이수술
첫 번째 수술을 마친 9시 10분. 마취회복실에서 환자 상태를 기록하며 1년차 전공의 조정남씨에게 수술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마친 뒤 숨 돌릴 틈도 없이 두 번째 수술이 시작된다. 이번엔 12개월 된 소아의 탈장 수술.
“짧은 수술이라 금방 끝날 거예요.” 그 짧다는 수술은 10시가 넘어 끝나고 이어 세 번째 유방암 환자의 수술을 기다린다. 환자가 고령이고 유방암이 많이 전이된 상태인데다 당뇨도 있어 암세포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이다.
전 날 당직을 섰던 터라 민선영 씨는 환자를 내리는(환자를 입원실에서 수술실로 옮기는 작업) 동안 수술방 의자에 앉아 단 몇 분간 새우잠을 청한다. 전공의가 많지 않아 3일에 한번씩 돌아오는 당직은 새벽 1시까지 병동을 지키고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는 강행군. 4년차 ‘칼잡이’ 민선영씨가 나름대로 터득한 ‘피로회복’ 노하우다.
고석환 과장이 내려오고 수술실이 다시 분주해진다. 환자의 유방을 절개하면서 시작된 수술. “한꺼번에 잡아. 그래야 한번에 끝내지. 아니 그쪽 말고 이렇게….” 고석환 과장의 질책에 민선영씨의 손놀림이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국소마취 된 환자의 신음소리가 간간이 터져 나온다. 모두들 신경이 곤두선 가운데 수술은 11시 52분에야 끝났다.
수술 결과를 정리하며 아침 컨퍼런스에서 나온 김밥 한 줄로 간신히 달랬던 허기를 버섯국과 총각김치, 돼지고기 장조림 등 점심으로 나온 병원 식당밥으로 달랜다. 물론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단 10여분 만에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이어 진행된 네 번째 수술. 양성종양으로 판단되는 환자의 유방암 절제수술이 1시간 넘게 진행됐다. 계속된 수술에도 의사는 항상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된다. 수술방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도 환자에게서 눈을 떼선 안된다. 자신과의 싸움이다.
큰 수술날 시어머니 생신 "나는 불효자"
수술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고 업무가 끝난 것이 아니다. 휴식도 잠시. 저녁 회진을 위해 다시 병실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확인하고 다음 날 수술환자의 상태를 체크한다. “4년차이지만 오프에도 집에 못가는 경우가 많아요” 라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동료들과 컴퓨터를 보며 CT 사진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나눈다. 그 와중에도 틈틈이 목요일 발표에 필요한 자료도 챙긴다. “목요일은 전원 리서치가 있어서 각 팀별로 수요일에 준비를 해야 돼요.”
타과 컨설트를 담당하는 것도 전공의 몫이다. 달콤한 휴식 중간에 신경외과 컨설트가 들어오면 공부방 전공의들은 고개를 숙인다. “당직이 담당하는데 보통 아는 사람을 찾아와 묻거든요.” 타과 전공의가 찾는 이름에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 공부방의 진풍경이다.
팀원이 공부방에 모여 환자에 대한 대략적인 논의를 거친 후 전공의들끼리 각 병실로 회진을 돈다. 환자나 보호자에게 다음 수술일정을 설명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절차다.
저녁 7시. 하루 업무를 마치고 민선영씨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는다. “내일이 시어머니 생신이신데 큰 수술이 있어 오늘 챙겨 드리려 해요. 지금 친정 엄마가 저 대신 생신 준비를 하고 계세요.” '3D'업종에 종사하는 딸의 ‘불효’가 미안했는지 민선영씨의 얼굴이 붉어진다.
소아과 의사인 아버지도 외과는 ‘반대’
모든 과가 그렇겠지만 특히 외과는 수술 전부터 수술이 끝날 때까지 ‘이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수술실 치프로서 책임감도 있겠지만 평생 환자를 수술했다는 책임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외과를 선택할 수 없을 거예요.” 민선영씨는 힘 있게 강조했다.
민선영씨는 외과가 좋아 외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외과 전공의를 선택하기에 쉽지 않았다. 가장 크게 반대한 사람은 소아과 의사인 아버지였다. “부모님도 반대가 심하셨죠. 배우는 과정도 힘들고 개원해서 이익이 없다는 거였어요.”
딸 셋 중 장녀로 전공을 선택할 때 부모님과 의견 차이가 심해 집안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우선 비싼 등록금을 내고 힘들게 배워도 개원이 여의치 않고 대학에 남는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전공의 지원자가 없다지만 아직 인력풀이 있다는 것이 민선영씨의 설명이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선택한 외과여서 인지 그녀는 계속 대학에 남아 수술을 하게 됐으면 좋다고 한다. “외과는 의술이 참 빨리 발전해요. 그만큼 가능성이 무한하고 진화하는 과라는 거지요.” 민선영씨는 다부지게 말했다.
"의사는 고수익" 편견에 슬퍼
2006년 9월 초등학교 동창과 결혼한 민선영씨는 종암동에 24평 아파트를 마련하고 신접살림을 차렸다. 전세를 얻으려고 했지만 무리를 해서 ‘내집마련의 꿈‘을 이뤘다. “아마 신랑과 저 둘이 합치면 빚이 2억이 넘을 거예요.”
한달에 250만원이 안되는 월급에 관광 분야를 공부 중인 남편과 빠듯하게 생활하고 있는데 의사 부인을 뒀다고 한 턱을 강요하는 남편 친구들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의사들의 상황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돈을 보고 의사하면 외과 의사를 못해요. 좋아서 해야죠.” 의사인 아버지도 결혼할 때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지만 돈이 없어 고민이 많았다. “사람들은 의사라면 무조건 돈을 많이 버는 줄 알아요.”
하지만 남편의 외조로 힘을 얻는다. ‘여자의사는 남자의사 만나야 된다’는 병원의 속설을 깨고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남편 덕에 더 많이 이해받고 있다. “같은 분야에 일하면 다른 사람은 다하는데 너는 왜 그러느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자나요.”
돈도 돈이지만 힘든 여건 때문에 2세 계획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다. 연이은 수술에 공부할 것이 많아 스트레스가 여간 많은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아 임신도 미루고 있다. “결혼 할 때도 아기를 가지지 않는다고 말했을 정도에요”라며 그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빠듯한 생활비·소홀한 가정, 그래도 나는 '외과醫'
새벽부터 시작한 취재는 저녁 7시가 넘어서야 끝낼 수 있었다. 외과가 얼마나 힘들겠냐면서 겁도 없이 덤벼든 밀착취재는 기자의 처절한 패배로 막을 내렸다. 연이은 수술에 온 병원을 휘젓고 다니는 민선영씨를 쫓아다니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12시간이 넘는 취재로 기자는 외과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아직은 환자를 위해 힘든 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전공의가 막다른 길로 내몰린 외과를 떠받들고 있다는 것을. 카르포의 '지구를 떠받드는 4대륙'처럼 어느 굳건히 버팀목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기사는 오프라인 계간지 데일리메디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박진섭기자 p@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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