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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병원 이길녀 이사장 포스트는?
[ 2007년 12월 27일 02시 05분 ]
조그마한 산부인과를 시작으로 6개 대형 병원과 4개 의학연구소, 경원대학교, 경인일보, 가천문화재단으로 이어진 '왕국'을 건설한 이길녀 이사장. 그를 대한민국 의료계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꼽기에 주저하는 사람은 없다. 작금의 성공은 '여장부', '철의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말해 주듯 그만의 뚝심과 집념이 있기에 가능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인생의 반쪽을 찾는 일마저 포기해 버린 열정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때문에 이길녀 이사장의 삶은 '도전'과 '성공'이라는 두 단어로 대변된다. 난관에 봉착하면 정면돌파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성공가도를 달릴 때도 새로운 도전에 자신의 희생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는 넘치는 에너지로 거함 길재단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의 나이 때문일까. 최근 그의 후계 문제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여전히 건강하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길녀 이후'를 생각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편집자주]
[上] '철(鐵)의 여인' 이길녀, 그녀를 말하다
[下] 포스트 이길녀, 주인공은 누구?
이길녀 이사장은 전북 옥구군 대야면 죽산리에 자리잡은 조그마한 정미소 집에서 태어났다. 이 이사장은 유년시절부터 학업에 비상한 재주를 보였지만 여자에 대한 교육열이 높지 않았던 시대적 상황으로 적잖은 맘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집안과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이 회장의 교육에 정성을 기울였고 덕분에 그는 이리여고를 거쳐 서울의대에 진학, 의사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서울의대 졸업 이듬해인 1958년 이길녀 이사장은 친구와 함께 미국 유학 경비 마련을 위해 동인천에 산부인과를 개원했다. 산부인과가 귀하던 시절인데다 여의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시작부터 문전성시를 이뤘다. 몇 달 후 친구가 결혼을 하면서 대구로 가버리자 이 회장은 혼자서 병원을 운영해야 했다. 그는 몰려드는 환자 탓에 5년간 가운을 입은 채 토막잠을 자고 밥 먹는 시간을 줄여가며 밤낮없이 진료에 매달렸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바쁜 가운데서도 시간을 쪼개 공부한 결과, 어렵다는 미국 의사시험에 합격해 열 군데 병원으로부터 수련의 제의를 받았다.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7년 만인 1964년. 그는 32살의 나이로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뉴욕에 있는 메리 이매큘럿 병원과 퀸즈 종합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4년여 밟았다. 미국 대학에서도 그의 재능을 인정, 대학에 잔류해 줄 것을 요청했고 미국 영주권 취득도 눈 앞에 있었지만 그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미국의 선진화 된 의료환경을 접하면서 열악하기 그지없는 한국의 의료가 맘에 걸쳐 도저히 미국에 남을 수 없었다고 그는 술회했다.
1968년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전에 있던 병원 자리에 지하 1층 지상 9층 건물을 지었다. 병상이 36개였던 그 건물에다 인천에서 가장 먼저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이 병원 역시 '대박'이었다. 미국 유학 출신 여의사라는 소문이 돌면서 환자들이 몰려들었고 병원 출입문 바깥까지 줄을 서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병원이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던 1975년 이길녀 이사장은 돌연 일본 유학을 결정했다. 환자들에게 더 나은 의술을 베풀기 위해 선진의료를 배우는 데 게을러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라고. 병원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놓고 일본에 가서는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가 공부했다. 일본대학교에서 병리학 박사학위를 따고 귀국한 그녀는 1978년 8월에 이길녀산부인과를 의료법인 동인천길병원으로 전환했다.
동인천길병원의 성공은 이미 예정돼 있던 것. 이길녀 이사장은 그 성공을 현재의 길병원 본원 설립에 쏟아 부었다. 길병원의 탄생 역시 이 이사장의 결단력으로 가능했다. 지금의 길병원 자리가 예전엔 허허벌판이고 주변이 공단이었다. 모두들 여기에 병원을 세우면 망한다며 만류했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공단 지역이니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이 많을테고 병원이 안되더라도 이들에게 의술을 베풀 수 있으면 만족한다는 생각으로 개원을 강행했다. 이후 6개월 만에 500병상이, 1년 만에 1000병상이 꽉 찼다.
이길녀 이사장의 병원 확장은 이익을 쫒아 이뤄지지 않았다. 양평길병원은 다들 인수를 꺼리는 가운데 적자를 감수하며 인수했다. 무의촌이었던 철원지역 주민들의 요청에 의해 1988년에 철원길병원을 개원했다. 1995년에는 만성적자에 시달리다 폐쇄 직전까지 갔던 백령도의 적십자병원을 인수해 백령길병원을 설립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4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박대진기자 djpark@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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