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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지정제 폐지 새 정부 판도라 상자?
[ 2008년 04월 07일 03시 20분 ]
지난 참여정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져 각 시민단체 및 사회보험노조 등이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로 인한 의료양극화 현상이 초래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던 당연지정제 폐지 논란. 더욱이 이 논란은 ‘능동적 복지’, 즉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집중 논의되고 있어 현재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임에 분명하다. 시민단체를 필두로 한 관련 단체는 현 시점에서 당연지정제 폐지를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하면서 만약 이 제도가 실시되면 강력한 후폭풍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당연지정제 폐지는 현 시점에서 우리사회 적용 가능한 사안일까?[편집자주]

2000년 전후 헌법소원 제기되면서 불붙어

당연지정제 폐지 논란은 지난 2000년도를 전후해 요양기관 대표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부터 도화선에 불이 붙기 시작했으며 참여정부 시절에 폐지론이 본격 쟁점화 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다소 그 수위가 낮아져 완화론 쪽으로 기울고 있다.

왜냐하면 공공의료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국내 현실상 현 시점에서 당연지정제를 전면 폐지하게 된다면 그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가 실로 크다는 각계각층의 판단 때문이다. 정치권 역시 국회의원 개인의 입장 표명은 있지만 공식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 입장에서 국민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은 당연지정제 완화론은 그야말로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참여정부에 이어 새 정부에서 당연지정제를 전면 재검토하는 이유에 대해 정부 한 관계자는 "현 정부의 기조인 산업화 정책은 모든 분야에 적용되며 의료서비스분야의 산업화도 같은 맥락이다"며 "의료서비스가 산업화되면 한 차원 높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의료계 한 관계자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건보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정부가 당연지정제 완화를 적극 고려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며 "정부 입장에서는 산업화정책도 살리고 건보재정 적자도 해소할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좋은 방법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 정부 역시 당연지정제 완화라는 정책방향을 표명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마련 중이고 사회 각층의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현 상황은 정부 및 공단 일부 관계자와 의료계가 각자의 입장에서 유리한 방향으로 요양기관 계약제를 활용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 및 국민건강보험공단 일부 관계자들은 요양기관 계약제를 통해 건보재정 안정화와 지속 가능성을 개선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이들은 요양기관 계약제 실시의 전제로 총액예산제와 DRG 확대 실시 등 진료비 지불제도의 개편이 필수적인 요소라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요양기관 계약제를 통해 의료서비스 질 관리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보험자 역할이 보다 확대될 것을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의협의 경우 당초 요양기관 계약제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표하고 있다. 그 근거는 지난 수가협상 당시 대한의사협회 전철수 부회장이 공급자와 보험자가 동일한 입장에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당연지정제 폐지와 자유계약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에서부터 비롯됐다.

이에 대해 공단 한 관계자는 "의협이 수가협상의 압박용 카드로 당연지정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 된다"며 "의협의 경우 의료산업화 및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에 대해 100% 찬성하기 때문에 요양기관 계약제를 주장한다고는 볼 수는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1년 갤럽에서 실시한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요양기관 계약제가 실시될 경우 "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 남겠다"는 응답은 43%로 "탈퇴하겠다" 40%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계 내부적으로도 입장 정리 안돼

공단 관계자는 “당연지정제가 완화되면 의협 입장에서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며 “당연지정제 완화를 주장하면서 또 다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노림수가 있을 것이다”고 관측했다. 반면 의협은 “노림수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수가협상시 압박용 카드로 활용한다는 것은 근거 없는 살붙이기에 불과하다”며 “만약 당연지정제가 완화된다면 공단을 비롯한 각 단체와의 합의과정을 통해 보다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반박했다.

현재 정부를 비롯해 공단, 공급자 단체는 아직 당연지정제 완화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지 않고 상호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공단 한 관계자는 "새 정부가 출범한지 아직 얼마되지 않은터라 뚜렷한 정책방향이 정해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며 "이는 복지부 및 의협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향후 다양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정치권을 비롯한 정부 및 공단 그리고 공급자 단체가 내부적으로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의협 역시 마찬가지로 앞으로 추이를 지켜본 후 구체적인 논의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 보험자 위주의 일방적인 내용이 정책에 반영되는 것은 철저히 반대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일단 현재 정부에서 당연지정제 완화와 관련해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으므로 의협이 현 시점에서 입장을 밝히기에는 곤란하다"며 "앞으로 여러 차례의 공청회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며 이 과정에서 의료계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됐으면 하는 바람이고 이러한 전제가 바탕이 된다면 당연지정제 완화에 대해 심도 있는 검토를 해 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요양기관 계약제가 시행되면 공단은 자격기준을 갖추지 못한 의료기관을 당연지정에서 퇴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이와 관련, 의협은 "보험자 위주의 일방적인 퇴출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이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맞섰다.

지난 2월 28일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김성이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당연지정제 완화 정책에 대해 의원들이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이에 김 후보자는 "당연지정제 완화는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말하자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은 "당연지정제가 완화되면 수익을 원하는 병원의 건강보험 환자 기피로, 국민들의 의료서비스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인수위에 확인해본 결과, 당연지정제 완화는 오보라는 명확한 답변을 얻었으며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이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산업화정책에 대해 한나라당 의원이 출범 초기부터 반기를 들고 일어선 매우 이색적인 모양새라고 할 수 있겠다.

작금의 상황에 대해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치권이 4월 총선을 겨냥해 국민들의 눈치를 꽤 많이 보고 있는 것 같다"며 "당연지정제 폐지와 관련해 이미 사회적으로 쟁점화 돼 국민들의 반대 여론이 들끓는 상황인지라 정치인들이 여론 반영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재희 의원의 발언이 한나라당 전체의 입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사태를 관망하고 향후 적절한 행동을 모색할 의원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정치권 다른 관계자는 "4월 총선까지 정부는 최대한 이슈화가 되지 않았으면 바람일 것이다"며 "총선이 끝나고 난 후 여론의 빗발치는 반대가 없는 한 단계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위 내용은 오프라인 데일리메디 5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김영남기자 maha@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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