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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황소도 살려내는 갯벌의 산삼 '낙지'
[ 2008년 09월 08일 03시 00분 ]
1. 영화 007시리즈의 옥토퍼시는 문어인가, 낙지인가?

나온 지 좀 오래되었지만 007시리즈 제13탄은 로저 무어가 주연으로 나온《옥토퍼시(Octopussy:1984)》라는 영화다. 이 영화에는 옥토퍼시라는 별명을 가진 신비한 여인이 이끄는 서커스단이 나온다. 서커스단원들의 곡예술이 문어 혹은 낙지처럼 유연하다는데서 얻은 별명인 듯하다. 옥토퍼시는 낙지 혹은 문어로 번역할 수 있다.

실제로 서양 사람들은 낙지와 문어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우리와 달리 식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게다가 서양 신화에서 낙지는 거미나 용을 상징한다. 저승으로 통하는 문을 지키는 수문장을 상징하기도 한다. 용도 동양에서는 황제를 상징하는 상서러운 동물인데, 서양에서는 그리 좋은 인상을 가진 동물이 아니다. 서양인들이 낙지를 먹지 않는 배경일 것이다.

2. “봄 조개, 가을 낙지”는 옛 말

“봄 조개 가을 낙지”라는 말이 있다. 겨우내 움츠려들었던 입맛을 돋우는 데는 조개가, 여름철 더위에 지친 몸을 회복시켜주는 데는 낙지가 제격이라는 뜻이다. 특히 꽃낙지라고 해서 가을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 때 갯벌로 올라오는 새끼낙지를 최고로 친다. 그렇다고 다른 철의 낙지를 먹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봄에 산란을 해서 발이 젓가락처럼 가늘어진 세발낙지를 회로 먹는 맛도 일품이다. 알다시피 세발낙지의 세는 가늘 세(細)자다.

솔직히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국산, 수입산 따지는 것도 어찌 보면 웃기는 발상이다. 바다는 자연 그대로 바다일 뿐이다.

다만 각 나라에서 지도상에 편의상 인위적인 가상의 선을 긋고 영해(領海)를 표시한 것일 뿐이다. 국제법상의 문제와 자연은 다르다는 말이다.한국 연해에서 잡힌 낙지나 태평양에서 잡힌 낙지나 다 같은 바닷물을 먹고 자란 것이다. 낙지는 조기와 달리 같은 서해상에서 잡았어도 어디서 말렸느냐에 따라 영광 굴비도 되고 완도 조기도 되는 그런 류의 차이도 없다.

낙지는 머리와 발로만 구성되어있는 두족류(頭足類) 팔완목과(八腕目科)에 속하는 연체동물이다. 장어(章魚) 소팔초어(小八梢魚) 석거(石距) 낙제(絡蹄) 등으로 불린다. 문어가 대팔초어(大八梢魚) 물낙지로 불리는 것과 대조된다. 독이 없고 평이한 성질을 띠며 단 맛과 짠 맛이 같이 있다.

당나라 때《영표녹이(嶺表錄異)》에서는“낙지를 말려서 구워 먹으면 맛이 있다” 했다. 송나라 때의《정화본초(政和本草)》에는“오징어와 비슷하나 좀 더 큰 편”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명나라 이시진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생강 식초와 같이 먹으면 해파리와 비슷한 맛이 난다. 소금을 살짝 발라 구워 먹으면 아주 맛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송시대 이래로 낙지는 건강식과 약용으로 널리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심해 고려청자도 끌어올리는 강력한 스태미너

《천주본초泉州本草》에 의하면“낙지는 익기양혈(益氣養血)한다”했다. 기를 더해주고 혈을 함양해준다. 기와 혈을 동시에 보해준다(氣血雙補)는 좋은 음식이다. 사지가 녹작지근한 게 온 몸에 힘이 없고 숨이 찰 때 잘 듣는다. 환자들에게 낙지 죽이 인기가 있는 이유다. 노인들의 기력이 쇠할 때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의 스태미너 식으로도 좋다. 간의 생성작용을 돕고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하며(塡腎精) 허리와 사지의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健腰脚)한다. 양기를 보해주고 약성이 화평하여 오래 먹어도 좋다.

19세기 초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약탈한 고려청자를 가득 싣고 가던 일본 배가 침몰했다. 일본인들은 배의 침몰지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지역이 풍랑이 심하고 바다가 너무 깊어 감히 인양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어부의 아이디어로 낙지를 이용해 보물들을 낚아 올렸다. 낙지다리의 강력한 힘과 빨판의 엄청난 흡입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에겐 유감스런 경우지만, 아마도 선현들은 이런 사례를 반복적으로 관찰한 끝에 낙지에 기를 보하는 성질이 있을 것이라 직관했을 것이다.

4. 쓰러진 황소도 기사회생 시키는 갯벌의 산삼 '낙지'

정약전이 지은《자산어보(玆山魚譜)》에 보면 비쩍 마른 소에게 낙지 서너 마리를 주면 곧 강한 힘을 갖게 된다고 했다. 실제로 남도에서는 지금도 소가 새끼를 낳고 난 후에 혹은 더위를 먹고 쓰러지면 큰 낙지 한 마리를 호박잎에 싸서 던져준다. 이를 받아먹은 소가 기사회생(起死回生)하듯 벌떡 일어난다고 한다. 바다의 산삼이 해삼(海蔘)이라면 낙지는“갯벌에서 나는 산삼”이다.

낙지는 혈액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 산모가 산후에 몸조리할 때 낙지를 넣고 끓인 미역국을 먹으면 좋다. 여성의 생리가 불순하거나 자궁에 출혈이 있을 때도 좋다. 지혈작용도 있고 새 살을 빨리 돋게(收斂生肌)한다. 그래서 피부병이 있을 경우는 물론이고 일반인 특히 여성들의 피부미용에도 좋다. 단 맛이 보하는 성질이 있다면 짠 맛은 굳은살이나 피부병 등으로 튼 살을 부드럽게(軟堅)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5. 낙지 주성분은 피로회복 자양강장에 좋은 타우린

현대 약리학 영양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낙지의 주요 성분은 타우린과 히시티딘 등의 아미노산이다. 이들은 칼슘의 분해흡수를 돕는다. 나쁜 콜레스테롤을 분해하는 좋은 콜레스테롤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단백질 분해효소도 풍부하다. 베타인 성분은 낙지 특유의 맛을 내게 한다. 앞서 말한 타우린은 어느 제약회사에서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주신(酒神)인 박카스(그리스명: 디오니소스)의 이름을 따서 만든 유명한 피로회복용 드링크제의 주성분이기도 하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낙지가 맛이 달콤하여 회, 국, 포 등을 만들기 좋다며 요리방식도 제시한다. 낙지는 성질이 차다. 속이 찬 사람들은 회로 생식하기보다 연포탕(軟泡湯)으로 하여 끓여 먹는 게 좋다. 맵고 따뜻한 성질의 고추장으로 중화하여 만든 낙지볶음도 괜찮다.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 고추장과 함께 요리를 했으니 몸도 보하면서 다이어트도 할 수 있다. 일석이조(一石二鳥)다. 조리를 할 때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표고버섯과 함께 하는 게 음식궁합이 맞다. 너무 가열하면 질겨지므로 샤브샤브 요리를 먹듯이 살짝 익혀 먹어야 한다.

6. 낙지는 술안주로도, 술 깨는 해장국으로도 좋다?

연포탕은 원래 한고조 유방(劉邦)의 손자로 뒷날 회남왕(淮南王)에 봉해진 유안(劉安)의 명으로 만들어진 요리라 한다. 가늘게 썬 두부로 꼬치를 만들어 기름에 부친 뒤에 닭고기 국에 끓이는 일종의 두부전골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연포탕하면 낙지 연포탕을 가리키는 것으로 굳어지는 추세다. 낙지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면 술이 잘 취하지 않는다. 숙취해소 효과도 있다. 낙지 연포탕은 안주로도, 술 마신 뒷날 해장국으로 먹어도 개운한 보기 드문 음식의 하나다.

낙지는 목숨을 버리는 눈물어린 모성애로도 유명하다. 동굴 속 자신들의 거처에 산란하고 부화가 되기까지 4주에서 6주에 이르는 기간 동안 낙지의 암컷은 한숨도 자지 않는다. 먹지도 않고 새끼를 지킨다. 동굴 속으로 새 산소가 많이 유입되도록 자신의 몸으로 부지런히 부채질까지 한다. 그리고 새끼들이 부화하면 말 그대로 불철주야(不撤晝夜) 식음전폐(食飮全廢) 끝에 지쳐 쓰러져 그대로 절명(絶命)한다.

7. “인삼 먹인 닭”이냐 “새우 먹은 낙지”냐?

우리나라 사람들이 산낙지 특히 세발낙지를 기름소금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모습은 자연스런 음식점 풍경이다. 허나 일반적으로 낙지를 먹지 않는 서구인들이 보면 그야말로 엽기적(獵奇的)인 아시아인의 모습으로 비춰질 것이다.《놀라운 아시아》의 촬영대상감이다.

낙지는 낮에는 해저(海底)나 바위 틈새나 동굴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나타나서 새우나 게, 굴, 조개를 포식한다. 요즘 인삼 먹인 닭, 마늘 먹여 키운 오리가 유행하는데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굴과 새우를 먹인 낙지다.

서양인들도 이런 사실을 알면 낙지를 보는 눈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그들도 웰빙 음식을 좋아하고 달팽이 요리 같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혐오음식도 마다않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니 하는 말이다.
헬스조선 webmaster@healt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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