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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두드리는 '의사 드러머'
[ 2008년 09월 30일 21시 48분 ]
서울의 한 주택가 지하. 먼지가 잔뜩 쌓인 스피커와 명(命)을 다한 듯 보이는 악기들이 널부러져 있는 계단을 비집고 찾아간 곳은 ‘의사 드러머’ 김준길 원장(49. 양산부인과)의 합주실이었다.
완벽한 방음시설로 문 밖 세상과 대조를 이루는 이 곳에서 김 원장은 '큰 형님'으로 통한다. 김 원장이 소속돼 있는 ‘LEAKS’라는 밴드가 20~30대 직장인으로 결성된 팀인 만큼 지천명(知天命)을 목전에 둔 그에게 어찌보면 당연한 ‘예우성 별명(?)’일지 모른다.
하지만 김준길 원장의 음악세계는 이들과 공감을 나누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Limpbizkit(림프비즈킷)이나 Silpknot(슬립낫), linkin park(린킨파크) 등의 곡들도 훤히 꿰차고 있는 그다.
▣ 무료한 인생 속 드럼을 만나다
사실 김 원장이 처음부터 이들과 음악적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은 아니다.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 시절 기타리스트로 밴드 생활을 했던 그이지만 음악세계는 주로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같은 70년대 보컬 음악이었다.
빡빡한 의대 생활 탓에 음악에 대한 열정을 피우지도 못한채 의사국시를 준비했고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개원이라는 숨가쁜 세월을 보냈다.
“도저히 의대생활과 음악을 병행하기 어려웠어요.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움도 있었구요. 일단 의사가 되자는 생각이 들어 기타를 놨습니다”
하지만 병원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가면서 가슴 한 켠에 묻어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다시금 동하기 시작했다. 무지했던 주식에 투자해 재미도 봤고 주변의 권유로 승마에 도전했지만 그를 짓누르는 삶의 무료함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와 함께 양수리 카페촌을 그의 귀가 번쩍 뜨였다. 김 원장이 찾은 카페에는 마침 밴드의 라이브 공연이 열리고 있었고 한 악기의 리듬과 소리가 그의 뇌리와 심장을 파고 들었다. '드럼'이란 악기의 존재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는 그길로 거금을 들여 드럼을 샀다. 무모한 충동으로 드럼을 들여놨지만 도무지 다루는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과외를 택했다.
진료 후 매일 2시간씩 4년이란 시간을 드럼에 매달린 끝에 아마추어 밴드의 드러머 수준까지 오를 수 있었다.
▣ 도전 뒤 맛본 짜릿한 쾌감
세상사 모든 일이 '조화'라는 단어로 귀결되는 탓일까. 드럼 역시 혼자 만의 연주로는 제 색깔을 십분 발휘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도 7080 음악에 대한 동경으로 아마추어 밴드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밴드의 음악 변천사는 이미 너무도 앞서 있었다. '생소한 음악을 추구하는 밴드에서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들었지만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아마추어 밴드 생활. 물론 시작은 순탄치 않았지만 동료들의 격려와 도움 덕에 서서히 락의 세계에 동화돼 갔다.
“락이라는 음악이 어려우면서도 매력적이더라구요. 특히 드러머로서는 최고의 음악이죠. 그때 발길을 돌렸다면 지금까지 어쩌다 마주친 그대나 연주하고 있을거에요”
김준길 원장의 첫 밴드 공연은 지난달 홍대 한 클럽에서 이뤄졌다. 100여 명의 관객 앞에 처녀 출전한 김 원장의 가슴은 드럼의 메탈 리듬처럼 '쿵쾅'거렸다.
현란한 조명과 관객들의 환호 속에 공연이 시작됐고 프로 드러머가 아니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소소한 실수를 빼면 완벽한 공연이었다.
희소성 짙은 또 한 명의 '의사 드러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것까지 즐기고 싶었어요. 40대가 20대와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같이 호흡하고 교감을 가질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거죠”
▣ 낮엔 초음파 소리… 밤엔 드럼 리듬
연습 후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김준길 원장. 수시로 입원 산모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함이란다.
"바이탈은? 불편한 점은 없다던가? 계속 체크하고 특이사항 있으면 연락하세요."
15병상 규모의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는 김 원장은 결코 만만찮은 당직의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밴드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
"물론 내가 직접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겠지만 드럼을 치는 시간과 돈을 저울질 하고 싶지 않네요." 병원에 드럼 연주를 위한 별도 공간까지 마련한 그다. 돈을 좆았더라면 얼마든 기회는 있었지만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는 김 원장.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내 생활을 즐기며 살 수 있는 지금에 만족합니다.” 김 원장의 초연함 때문일까. 최근 산부인과를 옥죈다는 경영난은 욕심을 벗어던진 그에게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드럼에 대한 욕심은 숨기지 않았다. 드럼스틱을 잡을 수 있는 순간까지 연주를 하겠다는 각오다. “내 슬픔·아픔·짜증, 드럼은 이 모든 걸 받아냅니다” 김 원장이 밝힌 드럼 예찬론이다.
낮엔 초음파 소리와 밤엔 드럼 리듬과 함께하는 김준길 원장은 두 번째 공연을 위해 다시금 드럼을 힘껏 두드리기 시작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7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박대진기자 djpark@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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