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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싸는 의사들 늘어도 "나는 참자! 참어!"
[ 2008년 10월 01일 03시 15분 ]
"올해 들어서만도 벌써 이 녀석이 3번째다. 칼바람이 채 가시기 전인 지난 2월, 2년차 한 놈이 부랴부랴 짐을 싸더니 어제 저녁 무렵, 1년차 레지던트 한 명도 쭈뼛쭈뼛 다가와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교수님, 저 아무래도…" 요즘 들어 부쩍 표정이 어두워 보여 예감이 불길하다 했더니 역시 나의 직감은 빗겨나가는 법이 없다."
나는 경상북도 소재 800병상 규모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과장이다. 그래도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주위 동료들이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지만 씁쓸한 기분은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다. 내가 지나온 발자국이 지금의 그들에게 길이 되고 방향타가 됐을 거라 생각하면 어깨는 더욱 무거워 진다.
이 병원에는 24개 진료과 중 우리 과를 비롯해 신경과·흉부외과·안과·방사선종양학과·진단검사의학과·병리과 등 6개과에 레지던트(전공의)가 단 한 명도 없다. 낮에는 교수들이 있지만 이들이 퇴근한 뒤에 진료를 맡을 레지던트가 없는 과들은 밤에는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 느끼는 동료들도 더러는 있다만 응급의학과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요즘 젊은 의사들에게 "니네는 힘겨운 과정을 거쳐 뭔가를 쟁취하려는 도전 의식이 없어"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기에는 너무도 많은 문제들이 난마처럼 얽혀 있음을 나도 알고 있다. 보람을 찾겠다는 의사들이라 해도 뚜렷한 비전과 재투자가 없는 상황이 이어지니 돈보다 사명이 중요하다는 그 어떠한 위로도 시원찮다.
당연히, 나는 당직을 서는 교수다. 10여년을 훌쩍 뛰어넘어 명색이 '교수'라는 명찰을 달고 있지만 이미 권위의 가면을 벗어 던진 지 오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몇 놈 안 되는 레지던트들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이렇게 발버둥을 칠 수밖에 없다.
사표 쓴 전공의 땜방에 녹초된 몸과 마음
요즘 3년차 진석이를 보면 미안한 마음은 더욱 감출 수가 없다. 현기증 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라고 윗년차 놈이 귀띔해주더라. 함께 교대 근무를 해온 2년차 레지던트가 과로를 이유로 사표를 던진 이후로 밤마다 쏟아지는 호출에 응하느라 피로가 겹칠만도 했다.
서울의 일부 대학병원을 제외하면 아마도 전국의 대부분 대학병원(수련병원)의 사정도 이와 비슷하다고 한다. 앞으로 5~10년 뒤에는 인력 수급 불균형이 레지던트뿐 아니라 전문의에게까지 파급될 것이라고 일부에서는 예견하기도 한다.
전문의는 레지던트들이 3~4년 과정을 마친 뒤에 될 수 있으므로, 현재 레지던트 부족은 미래의 전문의 부족을 뜻하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얘기다. 실제로 여기 이곳 일부 과에서는 벌써 전문의가 부족해 월급을 두 배로 올려줘도 못 구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수술실에서는 대개 레지던트 1~2명이 소독 등 수술준비를 한 뒤 집도의인 교수가 칼을 잡는다. 간단한 수술은 레지던트 3~4년차가 직접 하기도 한다. 그런데 레지던트가 없으면 '수술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환자들에게 "웬만하면 서울 큰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권할 때도 있다. 물론 양심에 찔린다.
사실 레지던트의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기 시작한 지도 10여년이 흘렀나보다. 이미 대학병원의 진료 현장의 파행 현상은 의료계에서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빅4'로 불리는 서울대·신촌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병원은 입원실을 못 구해 응급실에서 며칠씩 대기하는 환자들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우리 같은 지방 소재 대학병원이나 상당수 지방 병원들은 입원실이 텅 비어 있다.
야간 당직 서는 지방대학병원 교수들
그러다 보니 다른 대학병원 또래 교수들은 전공의를 대신해 야간당직을 서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10년째 야간당직을 서고 있는 친구도 있다. 실제로 환자의 입원에서부터 수술, 수술 후 관리, 퇴원에 이르는 모든 과정과 응급실 흉부외과 환자 진료 등도 교수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했지만 상황은 너무 심각하다. 교수의 본분인 연구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공의가 없이는 수술이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에 점차 심장 수술 자체도 진행할 수 없는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설사 한 두 명의 전공의를 믿고 수술을 한다 해도 1주일에 24시간 당직을 서는 전공의에게 의료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전반적으로 흉부외과는 의사 기근현상에 시달리고 있으며 특히 대동맥술 등 난이도 높은 수술은 능력있는 의료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7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정숙경기자 jsk6931@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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