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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친구에게 술 권하면 '간접살인'
[ 2008년 11월 02일 11시 47분 ]
최근 안재환, 최진실, 장채원 등 유명인들이 잇따라 자살해 ‘자살 주의보’가 내려졌다.
이들의 교집합에는 술이 있다. 연예인 뿐 아니다. 2003년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도 술을 마시고 극단의 길을 택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증 환자가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불난 집의 기름' 역할을 하기 십상이기 때문에 우울증 환자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간접살인’이나 마찬가지라고 경고한다.
우울증에 빠지면 뇌 이마엽(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는데 알코올은 뇌기능억제제여서 이마엽의 정상적인 사고를 더 방해한다. 또 우울증 약과 알코올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충동적 행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2일 알코올과 자살과의 상관관계를 입증하는 연구결과가 국내에서 발표됐다.
보건복지가족부 지정 다사랑병원(원장 이종섭)은 이날 알코올 의존증으로 입원한 여성 환자 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환자의 30%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들 대부분은 평소 우울 증세를 겪고 있어 습관적으로 술을 마셨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국에서는 자살한 사람의 20~30%가 자살 전에 술을 마셨거나 알코올남용에 빠져있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는데 국내도 실정이 마찬가지임이 입증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울증 상태에서 술을 마시면 뇌 기능이 떨어져 자제력이 약해지고 슬퍼지거나 흥분돼 자살을 시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경고했다.
특히 여성은 남성에 비해 더 취약하다. 기본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체내 수분이 적고 알코올을 잘 흡수하는 지방이 많아 같은 양을 마셔도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게 나타난다. 알코올을 처리하는 분해효소도 남성의 4분의1에 불과해 쉽게 취하고 해독은 더디다.
여기에 우울증 환자에게 처방되는 약이 알코올과 반응할 때 상승작용을 일으키므로 주의해야 한다는 것. 우울증 환자가 복용하는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등은 복용 후 1시간 이내에 긴장이나 불안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알코올과 결합하면 감정을 흥분시켜 충동적인 행동을 일으킬 수 있다.
알코올 판매량 높으면 자살률도 높다
미국의 그루엔 월드 박사는 1970~80년 알코올 판매량이 높으면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을 발견했고, 알코올 판매량이 10% 증가하면 자살률이 1.4%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다사랑광주병원 황인복 원장은 “술은 슬프거나 우울한 감정을 증폭시켜 자살이라는 행위를 저지르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며 “상담을 하다보면 술을 마신 후 차도로 뛰어 들어봤다는 사람, 손목을 그어 자해했다는 사람, 죽으러 물속에 들어 가봤다는 사람 등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강웅구 교수는 “술은 자살 뿐 아니라, 폭력, 다른 중범죄 등을 키우는 증폭제 역할을 한다”며 “술은 인간의 사고력을 담당하는 주요 부위를 자극하고 통제해 자제력을 잃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자살에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술과 자살’이 정확한 인과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술이 자살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황 원장은 “알코올은 그때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해서 전략적인 사고와 이성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뇌 전두엽의 기능을 통제하고, 충동성을 억제하는 가장자리계(변연계)에도 영향을 미쳐 순간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중앙대병원 정신과 백형태 교수는 “우울증 환자는 언제 튀어 나올지 모른 자살 충동을 의식적으로 억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술은 폭탄이나 마찬가지”라며 “자살을 계획한 사람은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술기운을 빌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미국 콜롬비아 대학교 신경정신과 엘 쉬어 박사가 2006년 ‘국제의과학 저널 (International Journal of Medicine)’ 11월호에 발표한 ‘술과 자살과의 관계’ 논문에 따르면 평소 우울증을 호소했던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 세로토닌의 분비가 적어져 감정이 더 가라앉게 돼 충동적인 자살로 이어진다.
이밖에 술과 자살과의 관계를 규명한 여러 연구는 술이 충동적인 자살의 요소라고 밝히고 있다. 유서, 메모 등 자살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이전에 자살 시도를 해본 적이 없거나, 오랜 기간 자살과 관련된 어떠한 신체적 정신적 징후를 보이지 않을 때 알코올과 연관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황 원장은 “자살을 한번이라도 심각하게 고민해본 사람은 우울한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술을 마셔서 이겨 내려하는 것 보다는 다른 활동적인 일을 찾아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죽음에 대해 애기를 많이 한다거나 이유 없이 슬피 울거나 갑자기 침착해지는 등의 자살 징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면 주위사람들의 관심과 주의가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은지 코메디닷컴 기자 jej@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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