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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세탁·환자와 24시간 통화하는 원장님
[ 2008년 12월 17일 07시 30분 ]
의사가 '지뢰밭으로 걸어가라'는 독특한 이름의 책을 냈다. 부제(副題)는 '미쳐야 세상을 바꾼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작은 뒷골목에 위치한 다소 낡아 보이는 건물 4층 관악이비인후과. 약속을 1시간이나 넘겨 책을 낸 최종욱(61) 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에 들어가려는 순간, 그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휴대전화를 받았다. 통화를 끝낸 최 원장은 또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죄송합니다. 오늘따라 환자 전화가 많네요"라고 했다.
그는 환자들로부터 하루 평균 40여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는 수술이나 진료를 받은 환자들에게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명함을 건네준다. 환자들의 전화는 밤낮, 평일과 주말, 집이나 병원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예민한 분들은 수술 후 이물감이나 통증을 응급상황으로 생각해 밤중에도 전화합니다. 이를 들어주고 정성껏 설명해줘야 안심합니다. 환자의 통증에 당황한 보호자가 전화기에 대고 욕을 한 적이 있었는데 휴대전화 배터리를 바꿔가며 한 시간 이상 들어주었습니다." 그는 '내가 이 환자의 어머니다'라고 마음 먹으면 24시간 전화 받는 게 귀찮지 않다고 했다.
최 원장은 "저는 미친 사람입니다. 의사라면 환자에게 미쳐야 병을 고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최 원장은 퇴근할 때 커다란 가방을 들고 간다. 가방 속에는 환자들이 사용한 이불과 슬리퍼 등이 들어있다. 수술포나 패드 등 병원의 공용 물품은 별도로 세탁하지만 환자 개인이 쓰는 물품은 그의 부인이 세탁해 다림질까지 해서 다시 갖다 준다.
"저와 제 아내가 환자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아내도 원해서 하는 일입니다. 세탁물에 묻은 머리카락을 일일이 떼내는 아내가 고맙지요."
그는 의원을 처음 찾은 환자들에게 간호사를 시키지 않고 직접 정맥주사를 놓는다.
"환자는 의사의 말보다는 체온을 느끼고 싶어합니다. 주치의가 직접 팔에 주사를 놔주면 의아해하다가 감동합니다. 그러면 환자와 의사 사이에 격(隔)이 없어집니다. 병 치료의 기본 바탕이 마련된 것입니다."
그의 병원은 수수하다. "왜 서울 강남과 같은 번화한 곳에 개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좀 가난한 것이 제게 더 잘 맞기 때문입니다. 가난은 제 마음을 본질에서 멀어지지 않게 붙잡아줍니다."
그는 대학병원 근무시절 돈을 못 낸 환자의 입원비와 장례비를 대신 내주느라 월급통장을 털기도 했다. "힘들게 번 돈이 통째로 나갈 때는 가슴이 텅 비는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엔 비애감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빈 가슴이 사랑으로 채워지는 신비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의 독특한 환자관(患者觀)은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어린 시절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백납'이라는 피부병에 걸렸는데, 악귀가 씌었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들었어요. 잘 낫지 않아 고등학교 때 아버님이 제 머리에 양잿물을 바르셨는'데 불에 덴 것처럼 펄쩍펄쩍 뛰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때문인지 병은 없어졌지만 징그러운 흉터가 남았죠. 그것이 열등감으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최 원장은 인생의 고난을 '지뢰'라고 표현한다.
"암 환자와 함께 죽음과 씨름하다 보면 많은 지뢰를 밟습니다. 상가에 문상을 갔다가 '저놈이 수술을 잘못해서 돌아가셨다'고 달려드는 상주들에게 수모와 봉변을 당한 때도 있었고 '후두 잃고 돈도 잃었으니, 원래대로 해달라'며 칼을 들고 달려드는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교수가 꿈인 학생의 설암(舌癌)을 수술하면서 혀를 절반 이상 도려낸 적도 있습니다. 다 인생의 지뢰들입니다."
그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이비인후과 교수를 거쳐 고려대 안산병원장을 지낸 두경부암의 권위자. 7년 전에 터진 '지뢰'는 삶의 방향을 통째로 바꾸어버렸다. 고려대 안산병원장 시절 수술 중 실수한 전공의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야단을 쳤는데, 그 전공의가 목숨을 끊어버렸다. 당시 최 교수가 잘못을 사죄하고 물러나야 한다는 내용의 포스터가 전국 병원 곳곳에 내걸리기도 했다.
"저를 믿고 따르던 제자들과 학회의 중책을 버리고 대학병원을 떠났습니다. 모든 게 제 불찰이요 부덕의 소치입니다."
최 원장은 "지뢰밭을 옥토로 일구며 행복해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한 가지 정도는 대한민국 최고라는 1인1기(一人一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최 원장의 1기(一技)는 두경부 수술이다. 주요 신경이 지나가는 목 부위 수술은 호흡장애나 연하장애(음식물이 잘 넘어가지 않는 증상)등 수술 후 합병증 위험이 높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대학병원들도 부담스러워 하는 후두암 등 두경부암과 갑상선 수술 등을 거의 매일 해낸다.
두경부암 전문가인 그에게 암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지나친 음주와 흡연이 가장 문제지요. 더불어 급한 성격이나 삶의 목적 의식 결여도 두경부암 발생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경부암 환자의 상당수는 성격이 급했고 삶의 허무감 때문에 술에 집착했거나 불규칙한 생활 습관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차분하게 삶을 돌아보고 여유를 찾는 것이 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쉰 목소리가 2주 이상 지속되면 갑상선암, 후두암, 식도암 등의 전조 증상일 수 있으므로 정밀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성대를 조절하는 후두 신경은 뇌, 갑상선, 후두, 폐, 심장 등으로 이어지는데 그 경로에 암 등 질환이 생기면 목소리가 쉴 수 있거든요."
심재훈 헬스조선 기자 jhsh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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