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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 '외과의사 봉달희'의 삶과 애환
[ 2009년 02월 01일 22시 00분 ]
지난 2007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SBS 메디컬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는 심장병을 앓는 외과 1년차 여성 레지던트의 성장기다.
여리고 섬세하지만 진정한 외과의사로 거듭나려는 한 여성의 노력이 시청자의 공감을 샀다. 최근 종방한 'MBC 종합병원2'에서도 변호사 출신 여성 외과의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관심을 끌었다.
남성 위주의 의사 사회에서 그것도 외과의사에 도전하는 여성은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래서일까? 외과의사와 여성은 다소 이질적이면서 절묘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실력을 의심하거나 여성에만 주목하는 주의 시선은 전국의 봉달희들이 넘어야 할 산이다. 진짜 의사로 인정받는 길이 험난한 이유도 그래서다.
최근 건국대학교 인근 삼겹살집에서 만난 건국대병원 정은주 교수(전임강사)
[사진 : 왼쪽에서 세 번째]
는 작은 체구에 안경을 쓴 평범한 30대 여성이었다.
정 교수는 얼마 전까지 원자력병원 외과에서 촉망받는 서전(Surgeon)으로 일하다 최근 건국대병원에 새 둥지를 틀었다. 수술실에서 호흡을 함께했던 외과 황대용 교수팀에 합류해 제2의 외과의사 인생을 열어가고 있다.
외과의사 봉달희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정 교수는 대장암을 전공한 천상 칼잽이다. 기자의 질문에 수줍게 웃으며 답하던 그도 수술실에서는 냉철한 외과의사로 변신한다고 한다. 촌각을 다투는 수술실에서 그는 온전한 외과의사일 뿐이다.
정 교수는 술이 약한 기자를 배려해 소주잔을 강권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가 들려주는 외과의사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었다.
편견의 벽에 맞선 외과의사
"제가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 외과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수련을 마친 여성 의사가 10명을 조금 넘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저도 외롭게 수련생활을 했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외과의사는 평범한 분야는 아닌 것 같아요."
외과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여성에게 여전히 높은 문턱임은 부인할 수 없다.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소수자로서 고충이 크기 때문이다.
의사의 칼끝에 환자의 생명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여성 외과의사는 더 많은 실력을 요구받는다. 환자와 보호자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도 극복해야 했던 편견의 벽이었다.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 수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100% 신뢰받는다고 느끼지 못했어요. 내색하지 않았지만 섭섭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태한 생각을 바로잡는 채찍질이 되었던 것 같아요."
졸음과의 싸움은 외과의사라면 한 번쯤 경험하는 통과의례다.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외과 세계는 여성이라고 특별히 봐주는 일이 없다.
"1주일 동안 10시간을 잤습니다. 극한의 피로가 몰려오는 데 신기하게 환자를 생각하면 졸음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서서 자거나 환자, 보호자와 상담하면서 졸은 적도 많아요. 너무 피곤해 치과 신경치료 중에 졸았더니 치과의사 선생님이 놀라더라고요. 체력은 외과의사에게 중요한 덕목이죠."
여성이라는 장애물은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경험해야 했던 씁쓸한 기억이다. 스페인 학회에 참석해 경험한 일이다. 멋있게 수염을 기른 한 외국인 의사가 그에게 물었다. "간호사인가요? 외과의사 맞나요?" 성 평등이 잘 정착된 서구에서도 앳된 얼굴에 동양인 여성은 외과의사로서 생소했다. 지금은 좋은 안줏거리지만 당시 난처했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결혼 적령기를 맞은 여성에게 외과의사 타이틀은 또 다른 시험대다. 현재 미혼인 정 교수는 "제 직업을 외과의사라고 하니까 남성들이 피하더"라며 웃었다.
외과의사로서 보람을 느낀 적이 언제냐는 질문에 레지던트 1년차 때 경험을 들려줬다. 그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레지던트 1년차 때로 기억합니다. 병동을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환자가 맨발로 뛰쳐나와 한 선생님의 손을 덜컥 잡는 겁니다. "살려줘서 고맙다"라고 눈물을 글썽이시더라고요. 온몸에 전율이 흐르면서 외과 선택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죠. 사람 살리는 외과의사의 보람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요. 힘이 들면 그 기억을 되살리곤 해요."
문득 학창시절 그의 성적표가 궁금했다. 정 교수는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전교 10등 이내였던 것 같고, 고3 진학하면서 전교 2등을 해봤다"고 말했다. 의과대학에 진학해보니 다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어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의과대학 시절에도 중상위권을 겨우 유지했어요. 그런데 정작 의사로서 중요한 건 성적보다 마음가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짜 공부는 레지던트 수련때 부터였죠. 환자를 살리려면 내가 공부를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 의과대학에서는 여학생이 더 공부를 잘한다고 하잖아요. 공부도 중요하지만 환자를 위한 마음을 후배들이 생각해줬으면 해요."
여성 외과의사가 아니라 보통 의사로 인정받고 싶은 것은 정 교수만의 바람은 아닐 듯싶다. 최근 의과대학 신입생 절반 이상이 여성이고 수석을 놓치지 않는 점도 앞으로 의료계의 여성파워를 예고한다. 제2, 제3의 봉달희들이 활약을 앞두고 있다.
삼겹살집에서의 2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술병이 서너 개 쌓여서야 이야기가 끝났다. 삼겹살집을 나온 그는 좋은 사진이 있는지 고민스럽다며 서둘러 택시를 잡았다.
음상준기자 esj1147@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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