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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와 친해지기
[ 2009년 02월 07일 03시 06분 ]
20년 가까이 미국에서 살다 몇 년 전 돌아와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소개시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사업상 만난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는데, 정신적 충격이 커서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활개치는 한국사회에 대한 미움과 증오까지 내 마음 속에서 움트는 것을 느끼고 놀라서 치료 받기로 결심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한달 쯤 전엔 10년이 넘는 미국 유학생활을 끝내고 귀국해 교수가 된 한 후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꼼꼼하게 일을 챙기는 성격 때문에 너무 피곤하다"며 의사 소개를 부탁했습니다. '미국 물' 오래 먹은 사람은 별별 일로 다 정신과를 찾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주말 집에서 '리턴'이란 한국 영화를 봤습니다. 어린 시절, '수술 중 각성'을 경험한 사람이 커서 당시 자신을 수술한 의사들과 의사 가족들을 살해한다는 스토리입니다. 수술 중 각성이란 마취가 잘 안돼 수술 중 환자의 의식과 감각이 깨어 있는 상태. 마취 때 함께 사용하는 근(筋) 이완제 때문에 손가락 하나 까딱거릴 수 없지만 영화 속 주인공은 의사가 메스로 가슴을 열고, 전기 톱으로 갈비뼈를 자르고, 심장을 수술하는 고통을 생생하게 느낍니다.

맨 살이 찢기는 그 극심한 고통이 '정신적 외상(外傷)'으로 남아 연쇄살인으로 이어진다는 영화입니다. 요즘 연쇄살인범 강호순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그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살인마가 된 것도 틀림없이 성장과정에서의 정신적 충격이나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신적 외상은 영화에서와 같은 극단적인 경험만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불화, 친구로부터의 왕따, 자존심의 훼손 등도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공동체 문화가 붕괴된 현대사회에선 이런 정신적 문제가 더 흔하게 발생합니다.

중학교 교사인 제 아내는 "요즘 중학생 중 상당수가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으며, 한 반에 두 세 명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 그런데도 부모에게 '정신과 의사나 전문 상담사를 찾아보라'고 권유하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제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정신적 문제가 있는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치료되지 않은 채 자라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요? 참다 못해 아내는 3년째 전문 상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데도 정신과를 찾지 않는 것은 정신과 환자를 미친 사람과 동일시하는 사회적 편견 때문입니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취직은 고사하고 보험 가입까지 제한당하니 누가 정신과를 찾겠습니까? 그러나 문제가 있으면 들춰내서 해결해야 합니다. 부끄럽다고 자꾸 은폐하면 문제 상황이 더 증폭돼 결국 '강호순 사건' 같은 '폭발'로 이어지게 됩니다.

자신의 문제를 솔직히 인정하고 정신과 의사에게서 해법을 찾으려는 친구와 후배의 '미국적 인식'이 부러웠습니다. 치료되지 않고 방치되는 정신과적 문제들은 암이나 심장병보다 우리사회에 더 큰 손상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과 의사들과 좀 더 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임호준 헬스조선 대표 hil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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