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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채권, 병원에 단비 or 된서리
[ 2009년 02월 10일 21시 59분 ]
의료채권 발행이 자금난에 허덕이는 의료기관에 단비를 내려줄지 주목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6일 비영리법인 의료기관과 의료법인이 회사채 성격의 의료채권을 순자산액의 4배까지 발행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겠다고 밝혔다. 금융기관 등에 한정된 자금줄을 민간으로 확대해 병원 경영난을 해소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민간자본 유입을 통한 의료산업 활성화, 고용 촉진에도 기대감을 나타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의료채권 발행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예고 했었다. 채권 발행으로 조달된 자금은 의료기관 개설이나 의료장비 확충, 직원임금, 조사연구 등 의료업에만 사용할 수 있다. 병원계는 일단 기재부의 규제완화 방침에 환영 의사를 밝힌 상태다. 그러나 부정적인 의견도 많다. 의료채권이 시장에 성공적으로 편입해 의료기관의 새로운 자금줄이 될 수 있을까.
◆의료기관 수익성과 시장 외면?
= 정부가 의료채권 도입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정부와 학계 차원의 연구는 미진했다. 실체가 없다 보니 정책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미국, 일본 등 일부 선진국은 이미 의료채권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일본의 경우 수익성 확보 차원에서 채권자가 간접적인 방식(마케팅 참여)으로 의료기관 경영에 참여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채권 특성상 수익성을 담보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브랜드병원이 선호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의료서비스 품질은 보건부가, 운영에 대한 권한은 상무부가 갖고 있다. 국내에서도 제도 도입 시 의료채권 관리를 어느 부서가 맞느냐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채권 도입에 따른 문제점으로는 안정적인 시장 편입 여부와 브랜드병원으로의 자금 쏠림현상, 중소병원의 과잉 시설투자 등이 거론된다. 의료기관의 평균 수익성이 채권 발행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여전하다.
저조한 수익성→의료채권 외면→브랜드병원 선호 현상과 병원 간 부익부 빈익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예고했다.
파급효과가 예상보다 작아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에서 일반 중소병원의 채권을 구입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의약품 도매업체 등이 채권을 대량으로 구입, 의료기관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했다. 의료계 큰 틀에서 볼 때 개원가의 부정적인 인식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제주대학교 의료관리학교실 박형근 교수는 “의료채권이 안정성은 있으나, 마진이 높지 않아 시장의 환영을 받을지는 미지수”라며 “현 제도 속에서 의료기관이 큰 수익성을 낼 여력이 부족하고, 역기능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병원 다양한 자금조달 필요해”
= 병원계의 입장은 크게 다르다. 그동안 금융기관을 통해서만 자금조달이 가능해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 의료채권 발행에 가장 목말라 하는 곳은 중소병원이다.
대한중소병원협의회 권영욱 회장은 “의료채권은 자금난에 허덕이는 중소병원이 다양한 구조로 자금을 조달할 절호의 기회”라며 “투자만 확실하면 병원 대부분이 채권 만기 전까지 수익성을 확보할 것이다. 병원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너무 앞선 걱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채권으로 통해 조달한 자본을 의료장비와 시설, 의료진에 투자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높은 은행 문을 실감했던 터라 다양한 자금조달 창구가 절실했던 것이 사실이다.
의료업으로 규정된 채권 활용 범위를 의료법이 규정하는 모든 부대사업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인식도 강하다. 장래식장과 주차장 등에 자금을 활용해야 안정적인 수익성을 확보하고 의료채권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다.
더 나아가 자산담보채권(ABS)으로까지 조달창구를 열어줄 것을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다. ABS는 증권화를 통해 자산을 유동화하는 방법의 하나로 일반적으로 채권의 원리금 상환이 주로 기초 자산의 현금흐름에 의해 담보되는 채권을 말한다.
인제대학교 보건대학원 이기효 교수는 “사실상 의료채권이 시장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우려”라며 “그러나 일부 병원이라도 자금을 조달받아 향상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순기능이 있는 것”이라며 긍정적인 뜻을 내비쳤다.
경희대학교 의료경영학과 김양균 교수도 “미국, 일본 등이 의료채권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수익성이 관건이지만, 시장에 정착할 수도 있다”라며 “이미 국민의 의료서비스 논 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에 각 병원의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제도 도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의료장비 과잉 등 역기능이 우려된다면 미국의 ‘Certificate of Need(CON)' 프로그램 도입을 검토해볼만 하다고 제안했다. 지난 1970년 미국 연방정부에 의해 시행된 이 제도는 입원실 증실과 고가 의료장비를 통제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비영리법인 의료기관의 영리법인 전환 등을 심사하기도 한다. 의료 과잉을 막고자 도입된 제도다.
◆의료채권법 '산넘어 산'
= 의료기관이 실질적으로 채권을 발행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법안 마련이 필수적이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의료채권법이 수개월째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에 계류 중이지만, 통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기재부도 이 점을 고려해 추가 입법예고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교육과 의료 등의 분야에 민간자본 유입이 제한적이어서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측면도 많다"라고 말했다. 의료산업의 영세성을 벗어나려면 제도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그러나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여야 의원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지 않다. 예측 가능한 부작용이 순기능보다 많을 것이란 인식이 짙다. 의료장비 과잉투자와 채권구입 쏠림 현상 등이 지적사항이다.
해외환자 유치 의료법이 경제 활성화 당위성과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어렵게 국회를 통과한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
복지위 한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가 의료채권 도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았고 논리도 빈약해 보인다”라며 “예측 가능한 부작용이 많은데 이 점을 잘 설득시킬지 의문”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음상준기자 esj1147@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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