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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소신 치료 가능해졌다"
[ 2009년 02월 20일 03시 45분 ]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후 “김 추기경은 전형적인 존엄사 사례”라고 밝혀 최근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는 신현호 변호사(법무법인 해울)
[사진]
를 19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신현호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존엄사를 사실상 인정하는 국내 첫 판결을 이끌었다. 이어 지난 10일 항소심에서도 존엄사 인정 판결을 얻었다. 세브란스병원이 대법원 상고를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존엄사 소송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신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 존엄사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 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이 터지자마자 언론보다 먼저 알게 됐다.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를 그 아내의 의사에 따라 퇴원시킨 의사가 살인방조죄로 구속됐는데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당시엔 가족의 의사를 묻고 환자를 퇴원시키는 게 관행이었다. 그러나 보라매병원 판결 이후 개별사건이 일반화되면서 안타까운 현상이 발생했다. 의사들이 환자의 인공호흡기 제거와 퇴원을 극도로 꺼리면서 중환자실의 병목현상이 일어났다. 심지어 이를 악용해 환자장사를 하고 국민의료비를 높이는 사례도 있었다. 그동안 의료기관과 의사의 고민은 계속됐다. 환자를 내보내면 살인죄로 몰리고, 그대로 두면 환자 가족이 치료비를 안 내겠다고 우기는 통에 곤란을 겪어왔다. 이걸 막아야겠다, 존엄사를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처음 어떻게 이번 소송을 맡게 되었나
▲ 존엄사 소송을 위해 원고단을 직접 모아봤었다. 2004년 호스피스완화제도와 안락사 등에 관해 논문을 썼을 만큼 원래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적당한 환자 사례를 찾기도, 그 가족들의 동의를 얻기도 어려웠다. 그러다 우연히 이번에 기회가 되어서 진행된 거다.
- 김 할머니가 정말 존엄사 사례가 맞는가
▲ 김 할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자살을 죄악시하는 종교적 신념이 아주 강하다. 이는 3녀 1남 또한 마찬가지다. 더구나 이들은 모두 소득이 2억 이상 되고, 대학원 이상을 공부했다. 돈 부담이 없는 집이라 존엄사가 돈 때문에 부모를 고려장하려는 게 아니라 진짜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란 재판을 이끄는데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형제간의 우애도 굉장해 재산 다툼 없이 한 지역에 함께 모여 살 정도다.
- 존엄사에 대한 김 할머니의 의사는 어떻게 알 수 있나
▲ 김 할머니의 남편인 할아버지가 심장질환으로 돌아가실 때의 일이다. 당시 외아들이 미국 출장을 가 있는데, DNR(심폐소생거부)을 요청했다. 자녀들은 모두 하나 뿐인 아들이 오면 보내드리자고 했으나 할머니가 “하나님 나라로 빨리 소천 하는 게 옳다”고 말씀해 그렇게 했다고 들었다. 평소 딸들과 텔레비전을 볼 때도 인공호흡기 낀 분들의 모습이 비치면 “나는 나중에 저렇게 안 살거다”는 말씀을 하곤 했다 한다. 또한 교통사고로 팔목까지 긴 상처가 생긴 할머니는 이후 이를 남에게 보이기 싫어 늘 긴팔을 입으셨을 만큼 단아하고 정갈한 삶은 사신 분이라 했다. 이렇듯 모든 뜻이 맞아 이뤄진 재판이었다.
- 김 할머니의 최근 상태는 어떠한가
▲ 체온이 35도 밑이라고 하더라. 그게 체온계가 잴 수 있는 최하라고 들었다. 피부도 까맣게 썩어가고 있고 혈압도 낮다. 전형적인 뇌사다. 나는 세브란스가 할머니를 이렇게 오랫동안 살려둘 수 있다는 데에 굉장히 놀랐다. 대단한 의료기술이다. 그러나 이 상태의 어른을 두고 5%냐, 10% 생존가능성을 따지는 건 부도덕하다.
- 김 할머니의 병원비는 대략 얼마쯤 되는가
▲ 1달에 병원비로 1500만원씩 들어가는 걸로 안다. 10개월에 1억 4500만원이 청구됐다. 1년에 우리나라에서 24만 명이 사망한다. 만약 김 할머니 같은 분이 1만 명만 있다고 쳐도 건강보험 예산의 얼마냐. 이 비용으로 소아암이나 성인암 조기검진 등에 쓰면 국민 전체 삶의 질이 높아지지 않겠는가.
- 이번 판결 이후 앞으로 우리나라의 존엄사는 어떻게 가야하는가.
▲ 우리나라엔 유언장 문화가 없다. 현실적으로 생전유언(living will) 등 명시적 의사표시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추정적 의사를 객관화 시켜 대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존엄사를 하나의 법으로 만들기보다 김 할머니 경우처럼 여러 사례를 만들어 가는 게 우선돼야 한다. 나도 82세 된 아버님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나라 정서에서 부모님께 “말기에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고 물어보나. 그러나 평소에 “늙으니 죽어야지” 식으로 한 말은 인정하면 안 된다.
- 이번 판결을 이끌면서 어려운 점은 뭔가
▲ 많은 사람들이 존엄사에 대해 적극적 안락사 개념으로 오해하고 있다. 존엄사는 모르핀을 왕창 넣어 빨리 죽음에 이르게 하자는 게 아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도 그동안 어느 정도 치료는 받아왔다. 다만 인공호흡기를 안 썼을 뿐이다. 존엄사라는 건 치료 자체를 아예 포기하는 게 아니라, 코 줄로 산소도 주고 썩션으로 가래도 빼주는 등 기본을 하되 사람이 인식과 반응도 없이 살아있는 세포덩어리 순간까지는 가지말자는 뜻이다. 만약 본인이 이 상태가 되어 병상에 누워있는데, 누가 와서 내 가슴과 성기를 보고 닦는데도 나는 그가 누구인지 볼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면 어떻겠는가. 이번 사건은 죽을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말이 아니다. 치료방법에 대한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해 달라는 거다.
- 이번 재판의 의의가 있다면
▲ 나는 소신껏 했다. 우리나라 의사들 또한 이제 소신 치료가 가능해졌다고 본다. 앞으로 의사도 환자의 인격권을 보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보라매병원 사건이 우리나라 의료윤리를 한 10년쯤 당긴 게 아니었나 싶다. 이때를 계기로 생명을 고민하게 됐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번 존엄사 판결이 우리 사회에 죽음을 고민하게 했다고 본다.
이주연기자 gold@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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