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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보다 따듯한 인재가 의료계 희망"
[ 2009년 03월 26일 03시 24분 ]
국민 1인당 보건의료 예산이 1달러 수준에 불과한 국가는 여전히 많다. 전 국민 건강보험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일부 동남아국가는 대도시를 제외한 대다수 지역이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부실한 의료시스템은 만성질환 증가로 이어져 국민을 병들게 한다. 아픈 국민이 많을수록 노동 효율성은 떨어지고 국가 경제를 좀먹는다. 세계보건기구(WHO) 등 글로벌 의료기구들이 저개발국가 의료시스템에 관심을 두는 것도 그런 이유다.
대표적인 만성질환으로 유병률이 급속히 늘어난 당뇨병은 체계적인 관리가 필수적인 질병. 전 세계 당뇨병 인구의 60%가 거주하는 곳은 바로 아시아이다. 거대 인구와 열악한 의료시스템이 만들어낸 슬픈 자화상이다. 이 같은 심각성을 인식, 세계당뇨연맹은 대륙별로 지부를 두고 인류의 당뇨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오는 2013년 전세계 당뇨인의 60%를 책임지는 자리를 국내 의료진이 맡게 된 것. 그 주인공은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조남한 교수. 조 교수는 최근 대만서 열린 '세계당뇨연맹 서태평양지부 정기총회'에서 차기 회장에 당선됐다. 세계당뇨연맹은 WHO와 UN이 공인하는 국제 의료기구다.
조남한 교수는 오는 10월부터 2012년 9월까지 회장 당선자로, 2013년 10월부터 2015년 9월까지 회장으로 활동한다. 지난 24일 집무실에서 만난 조 교수는 국내 의료진의 활발한 해외활동을 수차례 강조했다. 곧이어 의과대학의 인성교육 강화를 제안했다. 의대에 다니는 인재들이 공부기계로 전락하고 학생다운 패기를 잃어가고 있음을 걱정했다.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지만, 말에는 진지함이 뭇어났다. 미국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의사로 성장한 그는 미국식 쿨(cool)화법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한 나라의 보건의료 예산이 국민 1인당 1달러에 불과하다면 믿겠습니까? 불행하게도 이 같은 상황에 놓인 나라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동안 선진국으로부터 받아왔던 도움을 국내 의료계가 베풀어야 할 시기입니다.”
조남한 교수가 기자에게 건네 첫 말이었다. 조 교수는 “아시아는 거대한 인구와 광범위한 지역, 다양한 문화가 한 대 어우러져 당뇨병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며 “일부 동남아 국가는 당뇨병 유병률이 10%에 달한다. 의료 예산이 없어 기초적인 예방주사를 맞기도 어려운 인류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연 한국이 잘 먹고 잘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비약적으로 성장한 의료기술 또한 미국 등 선진국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 이제 그 열매를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오랜 기간 캄보디아 등에서 의료봉사를 해온 조 교수는 국내 의료계의 역할을 자주 언급했다. 인도적 지원뿐 아니라 해외 의료단체에 의사들의 진출이 많아져야 한다고도 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나, 여전히 해외원조에 이바지하는 부문은 미약하다. 의료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국내 많은 병원이 해외로 의료봉사를 떠나고 있으나, 보다 체계적인 역할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의사들의 사회적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걱정이 많다. 어려운 의료계 환경이 한몫했지만, 이럴 때 더 많은 봉사를 나간다면 국민이 의료계를 존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 서비스뿐 아니라 문화적 교류, 저개발국가의 의료시스템 개혁에 국내 의료진의 역할이 크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경제규모에 걸맞은 의료원조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회장 임기를 수행하기 전까지 다양한 계획을 수립하고 준비할 것입니다. 연맹 특성상 당뇨로 한정됐지만, 의사들 참여가 많다면 다양한 질병을 케어할 수 있어요."
"강의 시간에 공부 잘하라는 말 안한다"
조 교수는 인터뷰 중 문득 기자에게 의과대학의 인성교육을 강조했다. 인성교육이 결여된 학과위주의 획일화된 교육시스템은 학생을 단순한 공부기계로 만들 수 있다는 수위 높은 발언도 숨기지 않았다. 그가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이유로 보였다.
고(故) 이종욱 WHO 사무총장처럼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의료계 인사가 배출되려면 의과대학시절부터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비전을 심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큰 듯했다.
“오늘 주제와 다를 수 있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따듯한 인재를 키우자는 것입니다. 해외활동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의사는 어느 직업보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해요. 배가 고파도 의술에 대한 열정이 커야 진짜 의사로 인정받는 겁니다.”
조 교수가 생각하는 인재 기준은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아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따듯한 마음을 가진 의대생이 진짜 의사로 거듭날 확률이 높다. 그는 “강의 시간에 절대 공부 잘하라는 말을 피한다”고 했다.
그런 관점에서 고급 두뇌집단으로 거듭나는 의과대학의 현실이 반갑지만은 않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정말 똑똑한 학생들 많습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학점에 목숨 걸고 꿈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 걱정이 더 앞섭니다. 이런 학생들이 공대에 진학하거나 과학을 전공한다면 국가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간혹 듭니다.”
의사 사회가 존경받으려면 인성이 따듯한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급선무다. 때문에 성적 위주의 선발방식보다는 면접을 통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제가 미국에서 의대 공부하고 교수로도 활동했습니다. 의대에는 매년 인재가 몰리고 다들 성적도 엇비슷하죠. 면접을 3일간 보기도 했는데 같이 식사도 하고 어울리면서 학생의 자질을 관찰합니다. 오히려 성적이 조금 모자라도 입학을 허락하는 경우가 많아요. 미국이 세계적인 의료기술을 자랑하고 해외활동에도 적극적인 이유는 바로 이런 의대생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조 교수는 의사로 활동하다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한 싱가포르 소아과 전문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의료선진국의 경쟁력은 우수 인프라와 함께 시야가 넓은 의사가 많다는 점이다. 그 또한 봉사의 삶을 살고 싶다는 의중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싱가포르에 연이 있는 소아과 의사가 있는데, 참 대단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가 평소 환자를 대변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 이상을 실현한다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당하게 당선됐습니다. 그렇게 3년을 충실히 활동하고 현재는 다시 의사로서 진료에 매진하고 있어요. 아름다운 모습이었죠.”
조남한 교수는 이 같은 광경을 국내에서도 목격하고 싶다고 했다. 이 같은 문화가 정착되면 부르주아 인식이 강한 의사 사회가 진정한 전문가로 대접받는 날이 더 빨라질 것이란 희망을 밝혔다. 그렇게 조 교수는 1시간에 걸친 이야기보따리를 내려놓았다.
그와의 인터뷰를 유토피아적인 생각으로 치부하는 목소리도 있을 것이다. 현 의료계 현실을 모르는 고고한 교수님의 이상으로 평가 절하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의 생각에 한 표를 던지고 싶은 것은 기자만의 욕심일까.
음상준기자 esj1147@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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