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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가톨릭' 공식 이대로 무너지나?
[ 2009년 05월 07일 21시 55분 ]
가톨릭 의료의 '전매특허'인 백혈병 치료가 흔들리고 있다. 공교롭게도 가톨릭중앙의료원이 야심 차게 추진한 서울성모병원 개원과 함께 이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병상 부족을 호소하는 BMT(조혈모세포) 센터 의료진과 이를 수용하기 어려운 경영진 견해 차이가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가톨릭 백혈병 역사는 지난 1983년 김동집, 김춘추 교수팀이 국내 최초로 급성백혈병 환자의 동종조혈모세포이식에 성공하면서 25년간 압도적인 경쟁력을 유지해 왔다. 사실상 백혈병 4차 병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마지막 희망을 잡으려는 환자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임상뿐 아니라 학술 분야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했다. 지난 10년 동안 SCI 논문을 100여편 이상 발표하는 등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했다. 최초라는 영광 속에서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임의비급여 관련 재판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사실상 수익성이 제로인 만큼 경영진의 고민은 깊어지는 상황이다. 경영적인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가톨릭하면 백혈병'이라는 공식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점은 의료계에 던지는 의미가 크다. 결국 환자가 최선의 진료를 받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백혈병은 암 중에서도 시급을 요하고, 환자 상태를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많다. 사실 이번 논란은 새병원 이전부터 예고된 상황이었다. 서울성모병원 백혈병 논란의 속내를 추적했다.
[편집자주]
얼마 전 기자와 만난 A 교수는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인터뷰 내내 얼굴을 붉히더니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참혹하다"라는 극단적인 발언도 숨기지 않았다.
"한국 백혈병 치료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은 바로 의료진의 노력이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우려스럽다 못해 참혹하기까지 하다. 환자가 병실을 구하지 못해 15~20명이 응급실에 드러누웠다. 이들 환자는 기약이 없다. 병실이 있는 것을 뻔히 아는데 병원 방침상 줄 수 없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다."
A 교수는 "의료정책 문제로 발생한 수가 창출을 병실 축소로 대신할 수 없으며, 응급 환자가 병실을 배정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라며 "주말이면 100병상 가량이 남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원무과에서 병실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일에도 40병상은 남는데, 병상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나. 특실이나 1인실이라도 달라고 하는데 이 역시 거절당했다"며 "고위층 방침상 병상을 줄 수 없다고 한다. 이는 재앙이다. 가톨릭의 명성에 금이 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의 발단은 대폭 축소된 병실이고, 그중에서도 무균실 치료가 필요없는 백혈병 환자의 일반병실 확보 여부다.
기존까지 BMT 치료의 중심은 여의도 성모병원이었다. 180개가 넘는 병상을 확보해 드림팀을 꾸려왔다. 그런데 새병원을 개원하면서 암 치료를 한 곳으로 모아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이 논의됐고, 그 일환으로 BMT는 암병원 산하의 센터로 편입이 결정됐다.
새병원에서 확보한 병상은 무균실 108개로 절반에 가까운 병상이 줄어들게 됐다. 이에 의료진은 즉각 우려를 나타냈다. 기존 병상을 확보할지도 미지수인 데다 독자적인 진료시스템이 침해받을 것이라는 우려다.
급기야 의료진은 지난해 12월 '새병원 조직(안)에 대한 가톨릭조혈모세포이식센터의 입장'이라는 글을 작성해 경영진에 전달했다.
내용은 이렇다. "의료원과 새병원의 기구조직개편안 중 암센터 내의 하부조직으로 조혈모세포이식센터가 귀속되는 점을 동의할 수 없으며, 성장을 거듭했던 독자적 진료시스템이 위축될까 우려된다."
반대 이유도 조목조목 들었다. 조혈모세포이식센터가 암센터 하부 조직으로 편입돼 진료 행태를 바꾸라는 무리한 요구는 수용할 수 없고, 환자 특성상 한결같이 같은 의사가 진료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혈액과 종양을 분리해 독립적으로 운영한지 10년이 넘었고 압도적인 임상학술 성과를 낸 조직을 흔들 수 없다는 점도 덧붙였다.
조혈모세포이식센터(당시 성모병원) 의료진은 "의견 수렴 없는 결정(새병원 이전)과 통보는 심히 우려된다. 우리 교수들은 새병원과 의료원의 발전적 미래를 지향하려면 결코 수용하기 어려운 것임을 명확히 밝힌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이어 "가톨릭조혈모세포이식센터가 암센터 안에 포함되는 조직구조 아래서 혈액암 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동의할 수 없다"며 "현재와 마찬가지로 (여의도)성모병원에 잔류해 여느 때와 같은 자세로 환자 치료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의료진 이동을 거부했던 것이다.
환자의 죽음 그리고 뺨 맞은 교수
지금까지 상황을 놓고 보면 병상 확보를 둘러싼 조직 간의 이해관계로 해석된다. 그런데 기자는 귀를 의심케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A 교수는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논란이 거듭되는 상황에서 한 환자가 죽음을 맞았다. 병상을 빠르게 확보했더라면 과연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자괴감마저 든다"라며 조심스럽게 환자의 죽음을 알렸다.
극도로 예민한 상황이어서 기자는 재차 물었고, A 교수는 다만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하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려 한 말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또 다른 사례도 전해들었다. 20대 중반의 한 여성 환자가 명성을 듣고 병원을 찾아왔는데 병실이 없어 치명적인 상황까지 갔었다는 것이다. 급기야 화가 난 보호자가 한 교수의 뺨을 때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A 교수는 "보호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중환자가 병실을 오래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우선 입원시킨 후 상태를 호전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가톨릭 의료기관이 언제부터 돈에 그렇게 민감했느냐"며 직격탄을 날렸다.
소속 의료진인 B 교수는 "자세한 이야기는 향후에 더 해주겠다. 이 같은 상황에 안타까움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료진 C 교수는 비교적 침착한 모습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서울성모병원으로의 이전이 병실 축소 등 문제가 많아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결국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환자 의뢰를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런데 병실을 기약할 수 없어 어렵다는 답변만 했다"고 전했다.
C 교수는 "새병원을 크게 짓고 경영진의 수익성을 고민하는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치료를 못 받는 환자의 건강상태가 우려된다. 병실을 정말 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병상이 부족하다 보니 외래 치료를 통해 임시방편으로 환자를 수용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한계 상황이라고 의료진은 강조했다.
이 같은 BMT 교수진의 발언에 대해 의료원 남궁성은 의무원장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음을 전해왔다.
남궁성은 의무원장은 "현재 병원의 모든 결정은 서울성모병원 보직자에게 일임한 상태지만, 이 같은 문제는 알고 있다"며 "여의도 시설이 새병원으로 이전하면서 병상이 줄어들었다.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상황은 인식하지만, 현재로서는 즉각적인 해결책을 찾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국내 최고 경쟁력을 자랑하는 백혈병 의료진이 병상을 구하지 못하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경영진이 수익성을 외면한 채 무작정 병상을 늘릴기에는 부담이 많을 것이라는 동정론도 힘을 얻는다.
의료원 측은 임의비급여 재판이라는 시한폭탄도 떠안고 있다. 하루밤 수십에서 수백만원에 달하는 특실마저 병원이 거부하는 이유를 곰곰히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왜곡된 의료정책이 낳은 괴물 같은 현상이 지금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음상준기자 esj1147@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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