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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밝힌 연명치료 중단 허용기준
[ 2009년 05월 22일 03시 20분 ]
대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대법원이 밝힌 존엄사 허용 조건은 무엇일까. 본지가 입수한 판결문
[사진]
을 토대로 대법원이 밝힌 연명치료 중단 허용기준을 자세히 밝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대법원장 이용훈)는 21일 환자 김모(76·여)씨측이 세브란스병원 운영자인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낸 ‘무의미한연명치료장치제거등’ 청구소송에서 피고 세브란스병원의 상고이유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기준에 관한 상고이유’, ‘원고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하지 않았다는 상고이유’, ‘원고의 진료중단을 구하는 의사가 추정되지 않았다는 상고이유’ 등 3가지에 대해 “위법이 없다”고 판단하고 이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환자는 강제진료를 받아야 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유로이 의료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며 “수술과 같이 신체 침해를 수반하는 진료행위 시에는 환자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자기결정권을 위해 환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전제했다.
만약 환자가 진료행위의 중단을 요구할 경우, 대법원은 “의료인은 원칙적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다른 적절한 진료방법을 강구해야 하나,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생명권은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이므로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행위를 중단할 것인지 여부는 극히 제한적으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특히,
회복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한 환자에 대한 진료중단의 허용 요건
을 따로 명시했다.
대법원은 △의학적으로 환자가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환자의 신체 상태에 비추어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즉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고 했다.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는지 여부는 의료진의 판단에 맡겼다. 대법원은 “주치의의 소견 뿐 아니라 사실조회, 진료기록 감정 등에 나타난 다른 전문의사의 의학적 소견을 종합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 이유에 대해 대법원은 “이때 이뤄지는 진료행위(즉 연명치료)는 질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호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오로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이뤄지는 치료에 불과하고, 결국 신체 다른 기능까지 상실돼 기계적인 장치에 의해서도 연명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또한 “이는 의학적인 의미에서 치료의 목적을 상실한 신체 침해 행위가 계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며 "죽음의 과정이 시작되는 것을 막는 게 아니라 이미 시작된 죽음의 과정에서의 종기를 인위적으로 연장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 환자 김모씨의 상태에 대해 피고 세브란스병원이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하지 않았다”고 상고한데 대해 대법원은 “진료기록 감정의와 신체감정의들 모두 원고의 회생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는 바 원고는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한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을 경우를 대비해 미리 의료인에게 자신의 연명치료 거부 내지 중단에 관한 의사를 밝힌 경우, 즉
사전의료지시 요건
에 대해서도 명시했다.
대법원은 “환자가 사전의료지시를 한 후 그 의사가 바뀌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전의료지시에 의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이 법적 효력을 인정한 사전의료지시는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환자가 △의료인으로부터 직접 충분한 의학적 정보를 제공받은 후 △자신의 고유한 가치관에 따라 진지하게 진료행위에 관한 의사를 결정해야 한다. 이때 사전의료지시서는 △환자가 직접 의료인을 상대방으로 하여 작성한 서면이나 △의료인이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이 의사결정 내용을 기재한 진료기록 등이 인정된다.
대법원은 무엇보다 의료인을 직접 상대방으로 하여 작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환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작성된 문서라 하더라도 의료인이 참여한 가운데 작성된 것이 아니라면 이는 사전의료지시와 같은 구속력을 인정할 수 없고, 다만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의 사나로 취급할 수 있을 뿐이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 판결에서 가장 쟁점이 된 환자가 사전의료지시를 하지 않고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한 경우에 대해서 대법원은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에 비추어 환자의 의사를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사회상규에 부합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이를 참고하고, 환자가 평소 일상생활을 통해 가족, 친구 등에 대하여 한 의사표현, 타인에 대한 치료를 보고 환자가 보인 반응, 환자의 종교, 평소의 생활 태도의 치료 과정, 질병의 정도, 현재의 환자 상태 등을 종합해 그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사건 원고인 환자 김모씨의 경우, 평소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15년전 교통사고로 팔에 상처가 남게 된 후부터는 이를 남에게 보이기 싫어해 여름에도 긴 팔 옷과 치마를 입고 다닐 정도로 항상 정갈한 모습을 유지하고자 했던 사실이 인정됐다.
또 텔레비전을 통해 병석에 누워 간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나는 저렇게까지 남에게 누를 끼치며 살고 싶지 않고 깨끗이 이생을 떠나고 싶다”고 말한 것과 3년 전 남편의 임종 당시 “내가 병원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겨 소생하기 힘들 때 호흡기는 끼우지 말라. 기계에 의하여 연명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 사실 등을 바탕으로 대법원은 원고의 의사를 추정했다.
한편, 대법원은 이 같은 이유로 피고 세브란스병원측 상고를 기각하고 “연명치료 중단의 의사가 추정되는지 여부에 대한 대법관 2명의 반대의견과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기준에 대한 대법관 2명의 반대의견이 있었다”는 것과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2명의 보충의견과 연명치료 중단의 절차에 대한 대법관 2명의 별개의견”을 덧붙였다.
이주연기자 gold@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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