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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이 없다" 산부인과 교수의 비탄감
[ 2009년 08월 06일 03시 30분 ]
"정말 요즘 같아서는 재미있는 일이 없다.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조금 편해져야 할 텐데 어떻게 된 게 여유가 더 없어지는 것 같다."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산부인과 K 교수. 우리나라에서 고위험 산모를 가장 많이 보는 의사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의 마음이 무겁고 편치 않다. 어깨가 예전보다 쳐진 듯 보였다. 입가의 웃음 역시 많이 줄어들었다. 웃어도 쓴웃음에 가까웠다.

이유가 있었다. 환자가 많아서, 늦은 밤 또는 새벽녘 분만장으로 뛰어 나와 아기를 받고 연구실에서 숱하게 잠을 해결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육체적 피로는 당연하다"고, 산부인과 의사의 책무이자 숙명이라고 느끼는 50대 중반 이 교수 상심의 근원은 무엇일까.

떠나는 젊은 의사들이 원인이었다. 힘들고 거기에 비전없다며 짐을 싸는 그들을 보면서 자신의 무기력감과 함께 서운함이 마음 속 깊은 폐부를 찌르고 있다.

설득하고 때론 회유하고 비전을 심어 줬지만 등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미련없이 그만 두는 젊은 의사들과의 세대차를 인정하면서도 섭섭하고 아쉬움이 드는건 인간인 K 교수 역시 당연지사.

K 교수 병원의 산부인과는 현재 1년차 전공의 정원 중 80%가 그만 뒀다. 불길한 징조는 년 초 시작됐다. 합격한 2명이 첫 날부터 나오지 않았다. 어렵게 수소문해서 연락이 됐지만 돌아온 것은 오히려 자신을 찾지 말아달라는 호소였다.

화불단행(禍不單行) 이라고 했던가. 몇 개월도 채 되지 않아 잇달아 새내기 전공의들이 K 교수를 찾아 왔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며 포기를 선언했다. 가차없이 “그만둔다”고 말하는 젊은 의사들한테는 배신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해서 국내 최고의 병원 산부인과는 1년차 전공의 중 80%가 중도에 빠져버리는 사태에 직면했다.

"산부인과 전공한다고 하면 부모를 비롯 주변에서 말리는 추세에다가 본인도 막상 해보니 너무 힘들고 하는 요인들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아쉬움이 큰 K 교수는 "산부인과에 대한 비전은 물론 동기 부여도 없고 거기다가 쉴새없이 밀려드는 고위험 산모들을 보는 전공의 생활이 너무 힘들고 하는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다 보니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젊은 의사들의 심정을 이해하려고 해도 한편으로는 도전 정신이 부족하고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 없는 세태는 마뜩치 못하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인성이 갖춰진 사람을 뽑을 수 있을까 하는 겁니다. 지금 같아서는 전공의 선발 때 한 1주일정도 지원자들 하고 함께 생활한 후 뽑았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

답답한 심경을 피력한 K 교수는 "혹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의사라는 직업이 누리고 즐기기에는 너무 험난한 길"이라며 편한 것을 추구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 아쉬움을 표했다.

K 교수는 제일 중요한 것은 젊은 사람들이 활력있고 열정적으로 일 할 수 있는 동기부여인데 현실에서 산부인과는 사실상 그런 부분이 없다고 시인했다.

척박한 수가 구조는 말할 것도 없고 근래 논란이 되고 있는 NST(태아 비자극 검사) 사태를 보면서 젊은 의사들이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K 교수는 "뿌리가 썩어서야 꽃이 필 수 있겠냐"며 "근원적 대책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한편, 하반기 전공의 추가 모집에서 산부인과는 외과 다음으로 많은 61명을 선발한다.
이은빈기자 cucici@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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