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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대신 태극기 두른 의사 독립운동가
[ 2009년 08월 13일 21시 58분 ]
'광복'의 의미가 기억에 희미해지는 요즘, 특별히 기억해야 할 190명이 있다. 보건의료인 출신으로 냉혹한 일제에 온 몸으로 맞선 광복의 주역들이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근대교육을 받은 의학도들은 엘리트 계층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험난한 길을 택했다. 군자금 마련과 첩보활동 등 직접적인 행동뿐 아니라 의학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었다. 지식인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노블리스 오블리지'를 실천한 셈이다.

후배들이 온전히 기억한 이들 190명 외에도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 학생들이 조국 광복에 힘을 보탰을 것이다. 독립운동가 190명은 이미 언론을 통해 수차례 기억된 인물들이다. 다만 광복절을 맞아 그들이 조국 광복에 숨은 주역임을 되짚어 봤다.

한국의사 100년 기념재단이 '대한의사협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독립운동 포상자와 미포상자를 포함한 총 독립유공자는 156명이다. 이중 김필순과 이태준, 이자해, 신건식, 유진동, 이미륵(이의경), 서재필, 고수선·강평국·최정숙 등 제주 여성3걸 등은 특기할 만한 인물이다.

황해도 장연 출신의 김필순은 일찍이 민족지도자 안창호와 인연을 맺고 제중원의학원에서 수학했다. 이후 신민회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1911년 망명길에 오른 만주와 내몽고를 근거지로 삼았다.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주력했던 그가 문을 연 병원은 독립운동 기지이자 연락거점이었다. 치하헐에서 활동하던 그는 일본인 의사가 준 우유를 마시고 갑자기 복통으로 고생하다 1919년 사망했다.

유년시절 경북 상주에서 자란 이태준은 1911년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김필순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이태준은 망명길에 오른 김필순을 배웅한 이후 바로 망명길에 올랐으며, 울란바토르에 동의의원을 개업했다. 그는 몽골 국왕의 어의로 활동하기도 했다. 김규식이 파리강화회의 참석에 필요한 여비 2000원을 제공했으며, 한인사회당 비밀당원으로 레닌자금 40만불 운송에 기여했다. 그러나 외국 군대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국내에서 의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보이는 이자해는 1919년 중간진공립병원 의사로 근무하던 때 예배당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시위대를 이끌었다. 이자해는 1937년 유신병원을 운영하던 중 김구의 부름을 받고 내몽골 수원성 포두로 갔다. 그는 중국군 제18기병연대 야전병원장을 맡으며 광복군이 교두보를 만들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내몽골 지역에 살다가 1960년 사망했다.

상해지역 독립운동가 신규식의 동생인 신건식은 중국 절강성 성립 항주 의약전문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중국군 군의관으로 활동했던 그는 임시정부가 중경으로 이동한 뒤에는 정부 요인으로 활동했다. 임시의정원 제31회 회의에서 충청도 대의원(국회의원)으로 선임된 바 있다.

일찍 상해로 유학을 가 상해 동제대학 의과를 졸업한 유진동은 한인학우회를 결성하고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그의 가장 두르러진 활약상은 1940년 광복군 창설 직후에 맡은 군의처장 직책이었다. 중경 실절에 김구의 모친 곽낙원을 돌봤고, 1942~3년 동안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다. 1945년 김구과 함께 김포공항으로 귀국한 그는 다음해 중국으로 돌아갔고, 이후 북한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의경과 이미륵이 다른 사람으로 알려졌으나, 행적을 보면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그는 1917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했고,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독일로 망명한 이미륵은 1928년 뮌헨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역사와 문화, 정치에 관한 여러 저서를 남겼다. 1949년까지 뮌헨대학에서 강의했던 이미륵은 1950년 북한에서 위암으로 사망했다.

재미 독립운동가 서재필은 워싱턴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1919년 서재필은 개업하던 병원을 닫고 독립운동에 나선다. 같은 해 상해 임시정부 외교고문으로 추대됐으며, 한국의 독립운동을 미국의 저명인사에게 널리 알렸다. 8월에는 월간 한국평론을 발행해 선전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에 사용해 무일푼의 처지가 됐다. 광복 이후 과도정부의 특별의정관에 선임됐으며, 1951년 86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고수선·강평국·최정숙은 제주 출신의 의학도였다. 3·1운동 당시 학생을 인솔해 파고다공원 독립선인식에 동참한 고수선은 도쿄 오사카의학전문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1922년 검거돼 고문으로 손가락 불구가 됐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귀국해 경성의전에 입학해 1925년 졸업했다.

강평국은 1926년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앞서 1925년에 동아일보에 여성해방에 관한 글을 기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근우회 도쿄지회 결성식에서 박화성과 함께 공동의장을 맡기도했다. 그는 1933년 일제에 검거돼 고생하던 늑막염으로 죽음을 맞았다.

최정숙은 3·1운동 등에 가담하다 검거돼 8개월의 옥살이를 했고, 1925년 서울 견지동 시천교당에서 긴구 여성 50여명이 모여 여성해방운동회를 창립할 때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전주 사립해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1939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해 1944년 제주에 정화의원을 개원했다. 이들은 서울과 도쿄에서 수학한 엘리트 의사이자 독립운동에 나선 신여성이었다.

의학도들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고, 1919년 3·1운동에는 의학전문학교 학생들의 역할이 컸다. 1940년대 들어서는 경성제대 의학부 학생이 돋보였다.

신여성 간호사 34명, 광복에 몸을 던지다

일제시대 의사와 함께 간호사는 대표적인 지식인이었다. 특히 신여성을 대표하는 직업 중 하나였다. 현재 국가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은 간호사는 총 7명이지만, 총 34명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독립운동유공자 1만1157명 중 여성이 160명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간호사의 독립운동 유형은 크게 △독립만세운동 참여자 △군자금 모금에 나선 사람 △적십자활동을 한 사람 △노동·여성·농촌계몽운동 전개한 사람 △첩보활동이나 비밀연락에 가담한 사람 △독립군 규합에 나선 사람 등 6개 분야로 나뉜다.

이중 박자혜를 비롯해 노순경, 박원경, 이아주, 임수명, 이정숙, 이성완 등이 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옥고를 치른 박자혜는 1910년 궁녀 신분을 벗고 조선총독부 소속 간호부과와 조산부과를 재학했다. 졸업 후 조선총독부의원 간호사로 취업해 일하던 중 3·1운동에 참여하고자 간우회를 조직했다. 그는 단재 신채호의 반려자였다.

1919년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던 노순경은 서울 훈정동 대묘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독립운동가 노백린 장군의 차녀이면서 독립운동 혐의로 6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아주는 1919년 서울 남대문 역전에서 유점선 외 수십명과 학생단을 조직해 만세운동을 펼쳤다. 인촌 김성수의 아내였던 그는 2005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됐다.

비밀연락 활동가 임수명은 당시 통의부군사위원장 겸 사령관인 신팔균과 결혼한 이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1924년 남편 사망 이후 서울에 귀국 후 자결한다. 그의 나의 향년 30세였다.

이정숙은 군자금 모금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세브란스병운 간호사로 근무하던 중 여성인을 규합해 투옥지사들을 옥바라지했다. 그는 대한민국청년외교단과 함께 임시정부 국내연통부의 역할을 대행했고, 당시로서 거금인 6000원을 임시정부에 송금한다. 1919년 일제로부터 재판을 받아 2년간 옥고를 치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성완은 항일단체 조직을 통해 광복에 기여했다. 1919년 원산에서 여고동기들에게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고, 이후 대한애국부인회 결사대장으로 활동했다. 정부는 1990년 그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대한간호협회의 전신인 조선간호부협회를 창립한 한신광 등도 대표적인 인물로 기억된다.
음상준기자 esj1147@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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