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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루푸스 고통 이겨내는 환자
[ 2009년 08월 27일 21시 44분 ]
어느 평일의 정오 건국대학교병원. 지하 1층에서 은은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원내에 울려 퍼지는 ‘작은별 변주곡’(모짜르트)의 아기자기한 멜로디에 진료실을 오가던 의사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봉사자의 연주에 귀를 기울인다.
이날 연주봉사를 우연히 찾은 ‘즉석’ 청중들이 벤치에 앉아 저마다의 감상에 빠져드는 가운데 한 사람,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한 손으로 턱을 살짝 괴고 빨려들 듯 연주자를 응시하는 그는 바로 자타가 공인하는 연주봉사의 단골청중 정보미(여·33)
[사진]
씨다.
루프스 24년, 클래식에 고통을 치유받다
정씨는 선율이 고조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마주한 채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연주자가 모짜르트의 비화를 설명할 때는 깔깔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연주회 내내 활기찬 모습이라 복장만 봐서는 환자가 아닌 교직원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런 정씨가 5주 전 대장 부위의 혹 제거 수술을 위해 외과에 입원했고 혹을 떼어낸 자리에 자꾸 물이 차올라 수차례 드레인(drainge)의 고통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9살 때 루푸스(systemic lupus erythematosus·만성자가면역질환) 판정을 받아 24년간 하루 수십개의 알약을 삼켜야 했다는 사실은 더욱이 짐작했을 리조차 없다.
“3년 전 폐동맥 고혈압으로 강릉아산병원에 입원해 생사를 오간 적이 있어요. 한 방사선사 선생님이 ‘마음이 한결 나아질 거’라면서 클래식을 권했는데 이제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게 됐죠.”
한때 루푸스에 대한 충격으로 말을 잃고 정신과에서 치료받기도 했던 정씨는 클래식을 통해 지금의 미소를 되찾았다. 예전부터 즐겨 듣던 모짜르트에 이어 방사선사가 추천한 쇼팽과 호주 출신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의 ‘라흐마니노프’를 알게 되면서 그는 본격적인 클래식 애호가가 됐다.
“힘들 때는 음량을 최대로 키우고 가사를 따라 불렀어요. 아파트가 복도식이라 이웃에서 시끄럽다고 항의도 많았죠.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테너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있는 힘껏 불렀더니 이웃 사람들도 되레 포기하던데요?”(웃음)
클래식 이외의 장르에도 흥미를 갖게 되면서 정씨에게는 일종의 ‘음악 공식’도 생겼다.
“몸이 아플 때는 클래식을 주로 듣고 짜증이 날 때는 일본 음악이 좋아요. 기분 전환에는 팝, 무드 조성에는 재즈가 제격이죠.”
커피 한 잔과 음악, 그리고 자유로움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 그리고 음악. 지하 로비의 파라솔 아래 자리 잡은 정씨는 누구보다 여유로워 보였다. 평소에는 간병을 해주시는 어머니와 함께 오곤 한다지만 이날 그는 혼자였다.
“언제나 여기서 점심을 먹어요. 누구와 함께인 것도 괜찮지만 가끔은 혼자 있는 게 자유롭다고 할까….”
정씨는 “모짜르트의 곡을 들으면 13번도 더 본 영화 ‘아마데우스’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는 은발 가발을 쓴 어린 모짜르트가 눈앞의 인조 잔디 위를 달려오기라도 하는 양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지하 로비에서 3층까지 뚫린 유리 천정 때문에 비오는 날 가장 운치가 있다”며 “그런 날은 재즈 선율이 기다려진다”는 정보미씨.
언젠가 가수 이상은씨가 부르는 ‘안달루시아’를 들으며 스페인 안달루시아를 여행하고 싶다는 그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안달루시아 집시들의 축복으로 원기를 회복한 그가 염원한 대로 상담심리사로서 활동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나원정기자 wonjeong@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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