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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병원 성공신화 '강보영' 그는 누구
[ 2009년 10월 01일 22시 00분 ]
강보영. 나름 ‘병원밥’을 먹었다는 사람치고 이 이름 석자를 들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그는 병원계에서 유명인사다. 2000병상 초대형 병원의 주인인 그는 의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화려한 학벌의 전문 경영인도 아니다. 시골에서 과수원과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던 범인(凡人)이었다. 그는 우연찮은 계기로 병원산업에 발을 들여 놨다. 무모한 도전 탓에 힘겨운 시절도 보내야 했다. 하지만 3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는 주저없이 ‘병원은 내 운명’이었다고 술회한다.

“당신 죽으려고 환장했어?”

병원과 전혀 무관했던 강보영 이사장이 병원과 연(煙)을 맺은 계기는 바로 ‘치질’이었다.

평소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치질이 심해 새벽에 지역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는 상황까지 갔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담당의사는 극도의 통증을 호소하는 그에게 “당신 죽으려고 환장했어?”라며 면박을 줬다. 그것도 주위의 환자와 보호자들이 들릴 정도로 말이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당시에는 병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환자였기에 군소리 없이 치료를 받고 퇴원했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특히 강보영 이사장은 의료진의 불친절 뿐만 아니라 병원환경 자체가 매우 불량해 ‘이곳이 과연 생명을 다루는 곳인가’라는 자문을 수 없이 했다고 회상했다.

그날 이후 그는 병원 사업에 관심을 갖고 설립을 추진했고 마침 정부에서 농어촌 지역의 의료난 해소를 위해 지원한 정책 자금으로 병원 경영의 첫 발을 내딛게 됐다.

부도를 막은 두둑한 배짱

개원 후 2년이 지나도록 병원 경영수지는 제자리 걸음을 되풀이 했다. 그로 인해 적자 누적과 자금난, 거기에 병원경영에 대한 경험 부족 등의 문제는 끝이 없었다.

자금난으로 전전긍긍하길 수 개월, 급기야 어음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지인들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해 봤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돌아오는 어음을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진단 말인가?” 안타까움과 허탈함이 가슴을 죄어 왔지만 더 이상의 대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 그에게 선택권은 ‘부도’ 밖에 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할까”라는 후회와 함께 집을 돌아와 밤새 고민을 했다. 동이 틀 무렵 그는 무릎을 ‘탁’치고 일어났다.

“병원이 어렵다는 소문에 환자가 찾지 않으니 반대로 병원이 잘된다고 하면 어떨까?”

강 이사장은 그 길로 은행에 달려가 추가대출을 받고 정부의 국민주택자금 융자를 더해 의사 아파트를 신축했다. 당시로서 고가장비인 CT를 지역 최초로 도입한다는 광고도 게재했다.

야간에는 빈 병실과 비상계단까지 등을 밝히고 에어컨을 일찍부터 가동하는 등 갖가지 서비스와 홍보전략을 추진했다.

한 푼이 아쉬운 입장에서 위험부담을 안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홍보전략을 전개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환자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더불어 복지부에서도 의료인력을 구하기 힘든 사정을 알고 공중보건의를 지원해 주는 등 정책적 배려를 해줘 위기를 극적으로 넘길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당시 위기극복의 결정적인 계기는 아주 간단하지만 실행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 때 과감한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안동병원은 없었을 것이다”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

이후에도 안동병원은 노사분규의 혹독한 시련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지만 강보영 이사장 특유의 뚝심과 혜안으로 쾌속성장을 이어 나갔다.

개원 당시 12개 진료과, 134병상이던 병원은 27년이 지난 현재 24개 진료과, 1445병상의 대형병원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여기에 안동병원과 암센터, 노인전문병원인 용상안동병원, 정부가 지정한 경북권역응급의료센터와 응급뇌질환특성화센터, 응급심장질환특성화센터, 응급중증외상 특성화센터 등 국내 최고의 의료서비스 경쟁력을 갖춘 병원으로 성장했다.

안동병원은 단순히 외적 성장에만 그치지 않았다. 강보영 이사장은 규모의 성장과 함께 내적 질 관리에도 철저했다.

직원들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MK의 기적’이라는 책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10대의 택시로 시작해 오늘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으로 성장한 MK택시의 서비스 정신을 직원들에게 심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는 한동안 MK 정신에 미쳤다.

갑작스런 서비스 문화에 직원들 뿐만 아니라 환자들도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며 병실 문안을 돌 때 ‘우리가 아픈 것이 그렇게 고마운 일이냐’며 화를 내는 통에 난감했던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강 이사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병원 현관에 ‘고맙습니다’ 코너를 만들어 자신이 직접 환자에게 음료수를 따르고 하루 종일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는 서비스 도우미가 되면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급기야는 직원들이 직접 현장을 보고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대규모 예산을 들여가며 일본 교토의 MK택시를 견학하도록 해외연수를 시키기도 했다.

안동병원의 교육실해 사항 중 “우리는 하찮은 것부터 지킨다. 우리는 작은 물건이라도 아낀다. 우리는 행동을 실천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는 안동병원을 오늘에 이르게 한 행동지침이다.

안동병원이 친절한 병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끊임없는 교육과 배운 바를 철저히 실천한다는 강보영 이사장의 원칙론 때문은 아니었을까.
박대진기자 djpark@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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