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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낙제생이 스타의사로 그리고 제주도
[ 2009년 09월 27일 21시 56분 ]
9월의 제주도가 유독 아름다운 이유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백혈병 역사를 새로 쓴 명의(名醫)가 은퇴 후 제주도를 택한 이유도 조금은 비슷하다. 유일한 취미인 바다낚시를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기가 맑아 같은 셔츠를 3일이나 입을 수 있는 점도 그렇다. 문학을 동경하고 눈물이 많았던 노구의 의사에게 제주도는 어울리는 그림일지 모른다. 한가롭고 이국적인 풍경은 시상을 떠올리기에 안성맞춤이다.(그는 시인으로 등단했고, 요셉병동과 하늘목장 등 여러 권의 시집을 펴냈다.) 몸에 달라붙는 슈트를 걸쳤을 때 생기는 남성의 자신감처럼 제주는 그에게 뜨거운 피를 선사했다. 새로운 시작은 설레임을 안기는 법이다.[편집자주]

지난 23일 만난 제주한라병원 김춘추 박사(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의 진료실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작은 책상과 의자, 책장 1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후배의 진료를 도우며 온종일 환자들과 교감한다. 오전과 오후에는 빠짐없이 회진을 돈다. ‘백혈병 독재자’로 불리며 매년 250건 이상의 골수이식을 집도하던 시절에 비해 환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일정은 빼곡했다. 원내 무균실을 새롭게 개조해야 하며, 서울로 연수를 보낸 의료기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기자가 김 박사를 찾던 날, 병원 최초로 골수이식이 확정돼 경사 아닌 경사가 됐다. 덕분에 후한 대접을 받았다. 인터뷰는 병원에서 서부도의 한 횟집으로 이어졌다.(김 박사는 제주산 벵에돔과 다금바리를 주문했다.) 제주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2층 횟집에서 그는 한동안 창 밖을 바라봤다. 일몰이 내려오자 지그시 눈을 감기도 했다. 소주가 순한 술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그는 여전히 왕성한 정력을 과시했다. 김 박사는 이날 그 횟집을 단골집으로 정했다.

- 제주도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주도는 날씨가 참 좋아. 공기가 너무 맑다니까. 글쎄! 같은 셔츠를 3일이나 입었는데 아주 깨끗해.(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홀아비 신세다 보니 혼자 밥하고 빨래도 돌려야 하는데, 내가 어디 살림을 해봤어야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야. 요즘 밤에 잠이 안 오더라고. 그러면 택시기사 불러 낚시를 가곤 해. 택시비가 4만원이나 든다니까. 어쨌든 병원에서 전셋집도 얻어줬고, 앞으로 제주도에서 살기로 했어.

- 그래도 독신생활이 쉽지 않을 텐데요.

곧 죽어도 서울에서 살겠다는 마누라가 제주에서 같이 살기로 했어.(김 박사는 갑자기 인터뷰에 동석한 같은 병원 양일권 박사(전 가톨릭의대 방사선과 조교수)에게 악수를 건넸다.) 여기 양 박사 집사람이 크게 일조했지. 양 박사 집사람하고 몇 번 대화를 나누더니 글쎄 생각을 고쳐먹은 거야. 근데 내가 크게 실수한 게 있어. 월급통장을 몽땅 마누라한테 넘기기로 합의를 해줬지 뭐야. 매우 좋아하더라고.(웃음) 남자가 창피하게 뱉은 말을 되돌릴 수도 없고. 내가 지은 죄가 커.(그는 젊은 시절 집을 팔아 백혈병 임상시험을 진행했고, 그때 희생된 100여 마리의 도사견은 백혈병 진료의 초석이 됐다.) 지금까지도 기를 못 편다니까. 용돈 받으면서 살게 생겼어.

- 서울에는 정말 안 가십니까.

갈 생각이 없다니까 그래. 아! 예외적으로 10월 17일에는 서울에 가야 할 일이 있어. 교보문고에서 시인 사인회가 있거든. 그런 일이 아니면 제주에 계속 있으려고.

- 제주도 생활은 어떤가요.

오전과 오후에 빠짐없이 회진을 돌고, 후배 진료를 도와주고 있어. 막상 와보니까 손볼 곳이 많더라고. 당장 무균실부터 일을 진행했지. 골수이식에 필요한 전신방사선 기계를 담당하는 의료기사를 서울로 연수를 보냈어. 돌아오면 할 일이 더 많아지겠지. 10월 10일에는 제주지역 의사를 대상으로 심포지엄을 열 계획이야. 수준은 라디오방송 정도 하려고 해. 그 다음에는 서울성모병원 이식센터와 MOU(업무협약)를 체결할 예정이야. 의료진 교류도 하고 원활한 진료시스템이 구축할 것으로 믿어. 필요하면 사람도 보낼 생각이야.

- 지역 최초로 이식환자가 생겼다면서요.

연락이 왔더군. 나이가 있는 환자인데, 이식을 제주도에서 받겠다고. 자가이식은 아니고 동종골수이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어. 늦어도 한 달 안에는 이뤄지지 않을까. 얼마 전에는 상태가 심각했던 젊은 환자가 건강을 회복했어. 악성이었는데 상태가 좋아져서 다행스러워. 병원 경영진이 매우 협조적이라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 지역 환우회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어 기분이 좋아.

- 제주도는 아직 백혈병 불모지입니다. 목표가 있다면요.

4개의 무균실을 잘 정비해 좋은 시설을 만들어야지. 희망을 품어보면 병원 혈액내과를 리틀(Little) 성모병원으로 만드는 것이 내 목표야. 병원 측과 3년을 계약했는데, 이르면 2년 안에 실현하고 싶어. 30년 동안 서울에서 하던 것을 또 하려니 지긋지긋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야. 젊을 때야 시련이 오면 극복하는 재미로 살았는데, 이젠 체력도 떨어지고 나이가 들었잖아.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눈이 커졌다.) 나야 친구와 낚시만 있으면 되니까. 그런데 그거 알아? 낚시하느라 돈 엄청 들어갔어.(김 박사는 장비를 구입하는데 약 1억 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 낚시를 참 좋아하시죠.

15년 전부터 제주도에서 낚시를 본격적으로 했던 거 같아. 병원 문제로 머리가 복잡하던 시절이야. 직접 와서 해보니 좋더라고. 그전에는 마라도도 즐겨 찾았지. 내가 마누라 줄려고 강성돔을 4마리를 잡은 적이 있어. 그런데 기껏 잡아다 주니까 홀랑 주위에 다 나눠주더라고. 어찌나 화가 나던지. 마누라가 손이 크긴 해.(웃음)

- 낚시 말고 시 쓰기도 좋아하시죠. 왜 의대를 가셨습니까.

한 이야기 또 하게 만드네.(기자를 타박하며) 말했잖아. 사실 문과대를 못 가는 일종의 반발심리가 작용하긴 했어. 집안에 의사가 여럿 있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날 불러놓고 의대에 진학하라는 거야. 돈도 없으면서 무작정 의대를 가라니 수긍이 가겠어. 의대 보낼 돈을 보여달라는 것이 내 심정이었지. 형편도 어려운데, 열이 확 나더라고. 그래 그렇다면 의대에 진학해주자. 막상 의대에 진학하니 밤샘이 기본이야. 내가 어디 수학을 제대로 배워봤어야지. 수학 잘하는 방법 알려줄까? 무조건 외우는 거야. 그러면 어느 날부터 이해가 된다니까. 화장실에 들어가 화학주기율표를 외울 때까지 안 나온 적도 있어.

- 특별히 가톨릭의대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당시 체력장 점수가 50점 정도였을 거야. 근데 내가 미쳤다고 100미터 달리기를 달려? 뛰어넘기도 마찬가지고. 완전히 죽 쑨 거지. 그래도 가톨릭의대에 진학할 수 있었어. 당시 여수에서 상경한 학생은 나밖에 없어서 촌놈이라고 비웃더라고. 그때도 의대에는 서울과 경기도 출신 친구가 많았어. 알잖아 경기고 출신들! 너희는 하버드대는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응수했지. 내가 봉술을 좀 배웠거든. 입도 좀 거칠잖아.(웃음)

- 스타의사로 활동하셨으니 공부는 잘하셨겠네요.

내가 의대만 7년을 다닌 사람이야. 본과 1학년 때 낙제를 했거든. 부모한테 손 벌리지 않고 가정교사 하면서 밥 먹고 공부했지. 근데 결정적인 사건이 해부학에서 발생한 거야. 시험 전날에 도스도예프스키(러시아 문호)를 읽었는데, 하룻밤을 꼬박 세우고 시험시간을 잊어버렸어. 이상하다 싶었는데 땡시험이 끝나버렸네. 교수를 찾아가 재시험을 부탁했는데 ‘기본자세가 안됐다’라며 타박만 받았어. 넌 볼 때마다 노트도 안 들고 다닌다고 말이야.

- 백혈병 스타의사라는 명칭에 동의하시나요.

당연히 동의하지 않지. 내가 스타의사면 여기 있는 물기고기도 다 스타겠네. 그나저나 내 은퇴식 말이야. 4곳에서 해주겠다고 하더라고. 아마 다 했다면 난 미친놈이었을 거야.(웃음) 안 그래? 은퇴식에 발간한 시집 300권 제작하려고 3000만원이나 들였어.

- 경쟁병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많았겠죠.

내가 백혈병은 몰라도 돈 버는 재주는 없는 것 같아. 백지수표를 받고도 가지 않았으니까. 부자가 될 기회를 3번이나 놓쳤으니 말이야.(웃음) 은퇴 이후에도 2~3곳에서 러브콜이 왔지만, 제주한라병원이 제일 먼저 연락을 했더군.

- 문학을 동경하셨죠. 시는 교수님에게 어떤 의미죠.

의학도와 시인 모두 인간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예전에 내게 ‘의사시인상’을 준다는 연락이 온 적이 있어. 내가 그랬지. 상 이름에 의사를 빼라. 시를 시로 이해해야지 의사를 선전하는 도구로 활용해서 되겠느냐고. 크게 보면 의학도 인간학일 뿐이야.

- 그렇다면, 백혈병은요.

나에게는 시와 같은 존재지. 문과대를 못 간 아쉬움이 조금은 남아 있어.

-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요.

백혈병 중에 TTP라고 있어. 아주 고약한 놈이지. 한 할머니가 있었는데, 내가 어쩔 수 없이 외국학회에 참석해야 해서 후배들한테 지시를 내리고 다녀오니 돌아가신 거야. 그분이 혈소판이 부족했거든. 원인을 살펴보니 내가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한 꼴이 됐더라고. 어찌나 황당하고 화가 나던지.

- 의사로 지낸 인생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내가 택한 인생을 굳이 후회할 이유가 있을까. 의사를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 특별히 기억되는 일화가 있다면요.

내가 젊은 시절, 이천에서 김두한 씨랑 술을 마신 적이 있어. 남자는 남자더라고.

- 전국 수재들이 의대로 몰립니다.

노벨물리학상을 탈 천재가 의대로 온다면 그건 비극이야. 바보는 절대 의사가 될 수 없지만, 천재도 마찬가지야. 마음이 따듯하고 판단이 빠른 인재가 필요한 거지. 의대는 천재가 올 곳이 아니야. 물리학 같은 기초과학을 전공해야지. 문학도 그렇지. 생텍쥐페리가 의사였다면 ‘어린왕자’라는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의사는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 자! 이젠 술잔을 들자고.

제주도는 김춘추 박사에게 절망과 꿈을 동시에 안긴 곳이다. 사실 그는 한동안 이곳을 외면한 적이 있었다. 그 이유를 알려면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인들과 제주 낚시를 즐기고 돌아온 이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친구 3명이 갑자기 죽었다.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낚시 베테랑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김 박사에겐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제2의 인생을 열어갈 곳으로 결국 제주를 택했다. 제주 의료계에 김춘추 바람이 불지 이제 지켜볼 일만 남았다.
음상준기자 esj1147@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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