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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심정 산부인과 의사의 깊은 한탄
[ 2009년 10월 01일 21시 50분 ]
산부인과 의사들이 죽을 맛이다. 다른 과도 앓는 소리를 한다지만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저출산국인 우리나라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는 것은 시쳇말로 ‘못해먹겠다’ 수준이다. “예전이 좋았지” 1970년대 아이를 낳기 위해 산부인과로 모여든 산모들로 북적대며 바쁜 젊은 시절을 보낸 중견 의사들의 심정이다. “요새 산부인과 의사로 지내는 게 어떠냐”는 질문조차 그들에겐 상처인 듯싶다. 돌아오는 건 한숨뿐, 이제는 담담히 체념상태다. 분만을 하지 않는 의사가 점점 늘고 있으며, 심지어 산부인과 의사를 포기한 의사도 있단다. 어느 50대 이모 의사는 아예 의사를 그만뒀다. “이제 더 이상 속상해 할 일이 아니잖느냐”며 담담히 말한다. 산부인과에 불어 닥친 총체적 위기. ‘주의보’를 넘어 이젠 ‘경보’ 태세다.
산부인과 도산 위기가 개원가를 넘어 대학병원까지 엄습했다. 철옹성 같은 대학병원마저도 ‘산부인과 바이러스’에 걸린 것이다.
지난 4월 말 중앙대 용산병원 분만실이 폐쇄된다는 ‘설’(혹은 얘기가)이 일부 언론을 타고 제기됐다. 실제로 병원은 그 다음달에 산부인과 전공의 1명을 흑석동 중대병원에 파견 보냈고, 교수, 펠로우, 레지던트 각 1명, 총 3명만이 용산병원 산부인과를 지키고 있었다.(7월 상황)
병원에서 분만실 폐쇄 여부에 관해서는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거듭 밝혔다. 보도자료를 통해 해명했으며, 민병국 중대용산병원장도 데일리메디와 만난 자리에서 “분만실 폐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분명한 것은 분만실 공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방안에 대해서 내부 목소리가 있었다는 점이다. 병원 모 교수는 “분만실 폐쇄에 대해서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병원에서 어떠한 지침도 내려온 것이 없다”면서도 “분만실을 낮병동(낮 동안 입원할 수 있는 병동)으로 운영하자는 얘기가 있었던 것은 맞다”고 말했다.
의료계에 적잖은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다. 산부인과 위기가 더 이상 개원가만의 문제는 아니며, 총체적 위기의 ‘신호탄’임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개원의들이 체감하는 ‘위기’ 의식은 더 하다. 분만을 하지 않는 산부인과 의사는 날로 늘고 있으며 심지어 의사를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것.
인천 남구에서 지난 2007년까지 산분인과 전문의로서의 끈을 놓지 않았던 50대 후반 이모 의사. 산부인과 의사로 25년간 일 해오면서 이렇게 힘든 적은 없었다. 그는 병원 문을 닫은 그때의 시기를 애써 담담히 풀어놓았다.
“10년 전 쓴 일기를 우연히 보게 됐다. 한달 평균 분만건수가 90건을 넘었는데 산모가 점점 줄어 2년 전 주사기, 청진기, 의료기기 등을 그 상태 그대로 놓고 병원 문을 닫아야만 했다.” 혼자 문 닫힌 병원에서 앉아 있다가 눈물이 났다. 동료 의사의 전화통화에 엉엉 울어버렸단다. 그런 과정을 겪은 그는 이젠 자포자기 심정인 듯하다.
그래도 한때 그는 또래보다 ‘잘 나가는’ 모범생이었다. “우리 때는 산부인과, 소아과 레지던트 경쟁률이 높아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갔다”고 회고하면서 “예전 일이지만 병원도 5층 건물에 산모가 줄지어 기다리곤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제 의사가 아닌 일반직 ‘회사원’ 신분이다. 2년 전부터 의사가 9명이나 되는 병원 검사실에서 행정일을 돌보고 있다. “낯선 업무에 적응하면서 의사가 요구하는 행정 일들을 하고 있다”는 그의 어투는 씁쓸했다. 그에 따르면 산부인과 의사를 그만 둔 이들은 셀 수 없이 많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저 출산율 세계 1위 국가다. 통계청 ‘인구동태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출산율은 2005년 1.08명으로 최저 기록을 세운 이후 2006년 쌍춘년(雙春年) 효과로 1.12명, 이듬해 황금돼지해에 힘입어 1.25명으로 반짝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2008년 출산율은 1.19명으로 다시 하강 곡선을 그렸다. 1960~1970년대 외치던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구호를 떠올리면 놀라울 따름이다.
저출산율은 고스란히 분만기관 추이에서도 확연히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08 제왕절개분만 평가 추구관리 보고서’에 따르면 분만이 발생한 요양기관은 2003년 1371기관에서 2007년 1027기관으로 연평균 86기관이 감소했다.
통계로 본 대한민국, 세계 최저 출산율
의과기관 중 의원급에서 가장 높은 감소폭을 보였는데, 2003년 992기관에서 2007년 710기관으로 282기관이 감소했다(감소율 28.4%). 종합병원은 175기관에서 133개 기관으로, 병원은 136개 기관에서 123개 기관으로 각각 24%, 9.6% 감소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분만기관이 가장 많은 지역은 경기이며, 서울이 다음 순위다. 경기는 2003년 312기관(22.8%)에서 2007년 230기관(22.4%)으로 82기관이 감소했고, 서울은 264기관(19.3%)에서 183기관(17.8%)으로 81기관이 분만을 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분만기관이 가장 없는 지역은 제주로 19기관(1.4%)이며, 울산이 23기관(1.7)이다. 광주, 대구, 전남이 50기관 미만이다.
올 초 보건복지가족부가 집계한 산부인과 병의원 없는 시군구 현황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 중 27곳에는 산부인과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2008년 기준).
그럼, 지금까지 총 분만건수는 얼마나 될까. 지난 2003년~2005년은 47만1486건, 45만9985건, 42만5181건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그러다 쌍춘년 효과, 황금돼지해 여파로 2006년 43만7096건, 2007년 47만9965건으로 반짝 상승곡선을 그렸다.
대한의사협회가 최근 발표한 전국회원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군진을 제외한 전문의 회원은 5만6385명이다. 이 중 산부인과 전문의는 내과에 이어 2번째로 많은 5026명이다. 이들의 성토는 계속되고 있다.
산부인과 어려움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의사들마다 각자 생각하는 해결 방안도 다르다. 그러나 콕 집어 말은 안 해도 대체로 의료수가 낮고, 의료사고 높고, 일은 고되고, 환자에게 항의도 많다는 점은 공통으로 생각하는 바일 것이다.
올해 초 전철수 전 대한의사협회 보험부회장은 ‘의료정책포럼’에서 ‘서울시 의원급 의료기관 개폐원 현황 분석’을 통해 “서울시 전체 의료기관 중 산부인과 개원률이 0.42%로 전체 꼴찌를 차지했고 폐원률도 4위를 차지해 심각성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지만 분만을 안 하는 의사가 점점 늘고 있으며, 서울시만의 자료이긴 하지만 낮은 수가와 출산율로 현실적인 어려움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병의원 경영실태와 과제’를 주제로 한 정책포럼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조망됐다. 개원의 73.5%는 수가제도 개선을, 9.8%는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6.9%는 의사수급정책을, 5.6%는 진료비 청구 및 심사제도의 개선을 요구했다는 분석이다.
산부인과의사회 고광덕 회장은 “최근 분만을 포기하는 의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라며 “산부인과 진료서비스를 정상으로 할 수 있도록 분만수가 및 진료수가에 대해 재검토와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지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퍼주기 식’ 출산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출산 관련된 비용은 ‘무조건 무료’라는 그릇된 인식이 산모사이에 만연돼 있어 애먹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서울 광진구의 이모 산부인과의사는 “보건의료정책을 살펴보면, 출산을 하지 않는 이유를 마치 ‘분만비가 비싸서’인 것처럼 잘못된 인식을 산모들에게 심어주고 있다”며 “분만비를 병원에서 받으면 ‘다른 병원에서는 무료인데’라며 화를 내거나 인터넷에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있는데 참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소위 말하는 의료분쟁도 산부인과가 단연 높다. 뿐만 아니라 산부인과를 ‘죄여오는’ 정책들과, ‘시도때도 없는’ 분만으로 ‘24시간 대기조’ 생활을 즐겨야 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에게는 의료 수가만 높인다고 고사 위기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수가만 높여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의료분쟁도 제일 많다. 산모가 항의글을 인터넷에 올리면 공단에서 실사 나오고, 과태료가 5배다. 누가 하려고 하겠느냐” “산모가 새벽 4시에 왔다고 해도 진통 끝에 오후에 아이를 낳는다면 야간 분만이 아니어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그 만큼의 대가도 못 받는다” 구구절절한 사연들로 ‘한’ 맺힌 성토를 늘어놓는 60대 노(老)의사. 그도 이젠 분만을 하지 않는다.
노은지 기자 nej331@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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