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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염원 이룬 의사 5남매
[ 2010년 01월 03일 21시 27분 ]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은혜산부인과 김애양 원장은 그야말로 닥터 패밀리다. 1남4녀 중 막내인 김 원장과 언니, 오빠들은 70년대를 전후해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다. 오빠와 셋째 언니는 서울의대, 첫째 둘째언니와 김 원장은 이화의대를 졸업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배우자들도 둘째 형부를 제외하곤 모두 의사. 합이 9명, 그 자식들까지 합하면 정말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란다.

진료과목은 다르지만 이들에겐 의사라는 공통분모가 항상 따라다닌다. 어릴 적부터 의사 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는 평생 천직인 ‘의사’. ‘인류문화에 기여하자’는 아버지의 모토가 이들 삶에 촉촉이 배어 나오고 있다.

인류문화에 기여하자. 이들 만큼이나 이 명제와 어울리는 집안이 또 있을까. 2003년 별세한 김애양 원장 아버지는 일생을 셰익스피어 연구에 바친 故 김재남 동국대 명예 교수(1922년)다.

5남매가 모두 의사가 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버지다. 사연인 즉, 김 교수가 한창 셰익스피어와 씨름할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몇 번의 전쟁을 겪은 ‘난리 통’ 속이었다. 징병, 징발, 징집이 난무하던 그 당시 뿌리 깊게 박힌 생각이 자식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그 당시 의사라고 하면 전쟁인데도 끌려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아픈 사람 고쳐주고 보람도 있으면서 사람들이 고마워하는 것을 보고 자식들이 의사가 됐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되신 거죠.”

이것이 바로 ‘의사 실용주의’라는 김 원장은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같이 이념을 초월하고, 미국, 아프리카와 같이 공간을 뛰어넘는 것이 의사이고, 평생 문학을 전공한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바라는 ‘선망’의 대상도 의사였다는 얘기다.

“문학은 배고픈 직업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너희는 나 같이 문학하지 말고 의사가 돼서 아픈 사람들 고쳐주고 그에 합당한 대우 받으며 살라고 하셨어요. 의사가 되길 바라셨던 거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저희 5남매 모두 의사가 됐네요.(웃음)”

김애양 원장 5남매는…

김 원장이 밝힌 5남매 중 첫째, 둘째 언니는 현재 미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 첫째 언니 김애리씨는 뉴욕에 있는 모 대학병원 재활의학 전문의로 남편 임안무씨는 심장내과 전문의로 소임을 다하고 있다. 그들의 큰딸 역시 재활의학과 의사다.

그리고 김 원장에게 기억되는 둘째 언니 김애경씨는 ‘여장부’ 스타일이다. “둘째 언니가 한국에 있으면 뭐라도 한 자리 했을 거예요. 둘째 언니만 배우자가 의사가 아니잖아요. 물론 둘째 형부도 병원 건축가여서 아예 관계없는 분은 아니지만요. 학교 다니면서 낙제도 하고 아버지와 가장 트러블이 많았어요. 그 만큼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요.(웃음)”

언니들이 미국에 간 지 벌써 몇 십 년이 흘렀다. “미국에서 정책적으로 한국 의사들을 데리고 갔는데, 언니들도 인턴 끝나자마자 바로 미국으로 가서 생활했어요. 벌써 수 십 년이 흘렀네요.”

임상병리학과를 전공한 셋째 언니 김애식씨는 현재 문정동에서 임상병리검사센터인 ‘NTL의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남편 김태규씨는 서울의료원 비뇨기과에 재직 중이다.

넷째 오빠 김우호씨는 현재 서울대병원 병리과에 근무하고 있으며, 부인 이병란씨도 서울대병원 해부학교실 교수다. 이렇게 부부 내외가 의사인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김 원장은 “오빠는 학생 때부터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해서 교수가 천직이다”며 “각자 자기가 원하는 과를 선택해 개원하고 교수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 한명 처지는 사람 없이 잘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해골바가지에 땅콩 담아 먹다가 크게 혼나”

김 원장은 언니, 오빠 모두 의과대학에 진학한 후 함께 생활하면서 소소한 에피소드가 많다. 인체 공부를 위해 실제 사람 뼈, 두개골 일명 ‘해골바가지’가 식탁에 놓여 있었던 것도 여느 가정집과 다른 점일 터.

“한번은 사람 뼈인 해골바가지에 땅콩을 담아먹다가 어머니께 크게 혼이 난 일이 있었어요. 의학도들이 집안에 모여 있으니 해골, 뼈는 너무 친숙했던 것이죠.”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며 웃는 김 원장은 그 때를 회고하면서 “시험 때가 되면 기출 문제인 일명 ‘족보’를 구하려고 발품을 팔지 않아도 알 수 있어 좋았다”며 “언니, 오빠가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됐다”고 말했다.

심적인 위안뿐 아니라 실제로 진료를 봐준 경험도 있다. 김 원장 오빠인 서울대병원 병리과 김우호 교수는 지난 2002년 폐에 생긴 임파종양을 조기에 발견했다. 막내인 김 원장은 병원과 근거리에 있는 오빠 집으로 한걸음에 달려가 거의 매일같이 주사를 놔주는 등 ‘건강챙기기’ 선봉자가 됐다.

“사실 의사가 건강을 잘 챙길 것 같으면서도 못 챙기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오빠가 조기에 암을 극복해서 너무 다행이에요. 가족들이 의사여서 병원 진료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죠. 그런 점도 의사 가족으로서 감사한 점이네요.”

“의사 5남매나 엿장수 5남매 다를 것 없다”

김 원장은 그러나 “의사도 하나의 직업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의사 가족이라고 해서 ‘대단하다’ ‘잘났다’ 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그래서 재미있게 표한 한 것이 ‘엿장수 5남매 길러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소개한 김 원장은 “가족 모두 의사라서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대단하다’고 여길지 몰라도 우리 가족에게는 어릴 적부터 지극히 자연스럽게 ‘언니가 하던 대로 따라가니 의사가 됐다’고 할 정도로 당연한 거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의사 신분을 밝히는 것 또한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의사로서 안 좋은 점이 쉽게 눈에 띄어 자랑스러운 적보다는 부끄러울 때가 더러 있었다는 게 김 원장의 전언이다.

“가족 모두 의사여서 오히려 시야가 좁아요. 보고 배운 것이 다 비슷하니까요. 의사들이 자아가 강해 사실 결집하는 것보다 흩어지는 경향이 더 짙은 것 같아요.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때마침 셋째 언니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의사 집안이어서 좋은 점이 뭐냐고 묻는 막내 동생 질문에 “셋째 언니는 오히려 개성이 다 다른데 모두 의사가 된 것은 몰 인간적이라고 하네요.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면서요. 하하”

김 원장은 ‘베푸는 삶’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 “죽을 때 통장 잔고 한 푼 없고, 사랑 하나도 안남기고 베풀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희망사항이겠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일인데요. 그래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김 원장 5남매는 오늘도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인류문화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의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따르며 묵묵히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 아름다운 이유다.
노은지기자 nej331@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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