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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의사보다 더 무서운 '환자 단체'
[ 2010년 01월 07일 21시 49분 ]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란 ‘가까이할 수도 멀리할 수도 없음’을 이르는 말로 제약사와 환우회의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제약사와 환우회는 너무 멀리할 경우 서로에게 안좋을 수 있으며 너무 가까울 경우도 이런저런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호 적당한 거리 유지는 필수불가결하다고 볼 수 있다. 환우회는 제약사로부터 후원과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제약사는 환우회를 통해 자사의 제품을 설명하거나 환자에게 직접적 도움을 줄 수 있다. 주로 특수질환 환자들이 모여서 질병의 심각성과 치료법에 대해 토론하기도 하고 환자들의 권익을 위해서 활동한다.

환우회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는 정부의 정책을 좌지우지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정부가 다국적제약사와 약가협상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을 경우 지원군이 되기도 하는 것. 환우회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주된 구성원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프레스를 가하기도 한다. 또한 정부에 압력을 가해 약가인하를 단행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환우회는 제약사에 어떤 의미로는 의사보다 더욱 무서운 존재로 부각되기도 한다.

몸이 아프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이미 치료받은 사람들은 어떤 경험담이나 조언을 들려주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환우회는 환자들과 가족들이 질병과 의약품에 대한 최신정보를 획득하고 함께 아픔을 나누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의사들을 비롯해 제약사들까지도 환우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관계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최근에는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의사들이 진료를 보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주도적으로 환우회를 결성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의사들을 중심으로 제약사를 통해 환자들이 직접적인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일부 환자단체는 이러한 제약사들의 물질적인 도움을 거부하는 약관을 내규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제약사들로부터 물질적인 지원을 받을 경우 공적인 문제제기나 환자들의 권익을 대변해 제약사에 권리를 요구하는데 주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환우회 대표는 “환우회는 환자단체이고 이러한 환우회의 정체성을 건드리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이라며 “환자는 누가 이용하느냐에 따라 날선 무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몇몇 환우회 단체들은 제약사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으며 공익을 가장한 캠페인을 벌이며 제약사들의 광고에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국내 거대 환우회나 유명 환우회의 경우 대부분 회원들의 자발적인 회비로 환우회를 운영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복지부를 비롯해 건강보험공단 등이 환우회에 활발한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부 예산을 비롯해 자체 기금을 마련해 환우회에 차량및 운영회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제약사들은 최근 들어 의사들보다 어떤 면에서는 환자단체인 환우회를 더 두려워한다. 이는 환우회가 약가 결정에 크나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기적의 약’이란 수식어를 동반하며 백혈병 환자들에게 새 삶을 선물해준 표적항암제 ‘글리벡’을 들 수 있다. 글리벡은 100mg에 2만3044원으로 백혈병 환자 1인에게 투입되는 한 달 약값이 276만원이 넘는 대표적인 고가(高價)약으로 불리고 있다.

환자 및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글리벡의 약가가 지나치게 비싸게 책정돼 있다’며 정부에 약가조정신청을 제기했다. 건강보험공단은 이들 단체의 청원을 받아들여 생산사인 노바티스와 협상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글리벡 약가는 결국 복지부 약제급여조정위원회에 회부됐다.

약가의 적정성 여부를 둘러싼 환자 및 시민단체와 제약회사의 팽팽한 신경전은 더 이상 이야기 거리가 되지 않지만 이번 사안 만큼은 양측 모두 최종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제는 당초 글리벡 약가 문제를 제기한 주체가 바로 시민단체라는 점이다. 이들은 “글리벡 약가가 필요 이상으로 높게 책정돼 있어 환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약가인하를 주장했다.

물론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 9월 1일 고시해 9월 15일부터 14% 인하된 약가를 적용하기로 했던 백혈병치료제인 글리벡에 대해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가 서울행정법원에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수용, 당분간 기존 약가 적용이 불가피하게 된 상황이다.

하지만 환자 및 시민단체들이 정부와 제약사 간 약가협상에 압력을 가해 정부가 약가인하를 단행하고 이에 제약사가 불복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수용될 정도의 힘을 발휘했다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이와 함께 지난 7월 백혈병 환우회, 신장암 환우회 등 9개 환자단체가 최근 로슈와 노보노디스크에 의해 이뤄졌던 제약사의 필수의약품 공급 거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환자단체 측은 “비윤리적 약가협상으로 문제를 일으킨 로슈와 노보노디스크는 환자의 생명을 고가의 약가를 받는 수단으로 활용했다”며 “다국적 제약사들이 약가협상 과정을 전례로 들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약가인상 조정 신청을 줄줄이 할 것이고 약가협상의 주 무기로 의약품 공급중단 카드를 내밀 것이 우려 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이 제약사들의 매출을 좌지우지 하는 약가 결정에 환우회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거대 환우회의 경우 회원들의 회비 뿐만 아니라 정부를 포함한 여러 단체에서 지원이 되고 있다”며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제약계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우회의 이러한 활동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환우회의 여러가지 활동은 환자들에게 더 좋은 의약품과 최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환우회의 활동을 두고 일부 의사들은 “과도한 매도는 도움이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청주의 한 의사는 “그들이 진정 환자를 위한다면 저소득층 환자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약가 혜택을 확대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혁신적인 신약을 비싸다고 비난만 할 게 아니고 진정한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환자 및 시민단체들은 제약회사가 환자를 볼모로 돈만 아는 기업이라고 비난하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수십만 명의 환자와 가족들은 약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라며 “환자를 살리는 혁신적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회사의 중요성과 가치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더 많은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조성을 위해 그들을 격려하는 것이 미래의 환자를 위한 길”이라고 조언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환우회가 어느 순간 집단적 이익을 위한 이익단체화 했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일부 거대 환우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환우회들이 아직까지 정보교류 및 캠페인을 통한 질환 정보 확대를 목표로 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일부 거대 환우회들도 환자들의 권익을 위한다는 명분은 여전히 존재한다”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환우회 관계자들은 “신약의 가치를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다”며 “제약사는 너무 높은 약가를 받길 원하기 때문에 그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제약사가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하면 환자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겠느냐”면서 “다만 여러가지 비교 잣대를 적용해 가급적 저렴한 가격으로 의약품 혜택을 누리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승재 기자 leesj@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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