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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협회 회장 선출 소용돌이 휘말리나
[ 2010년 03월 30일 21시 47분 ]
바둑에서 한 수라도 빠른 쪽에서 상대방 말을 잡게 되는데, 자기 돌 주위에 빈 공간이 몇 개냐에 따라 잡히기도 하고 잡기도 한다. 이런 싸움을 ‘수상전’이라 한다. 수상전을 벌이다보면 아직 상대방 돌이 자기 돌을 포위하고 있지 않은 상태여서 살 수 있었지만 실수로 자기 스스로(自) 돌의 활로를 메워(充)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자기 돌의 활로를 메워서 죽게 만드는 수를 '자충수(自充手)'라고 부른다. 바둑에서 저지르는 아주 대표적인 실수의 하나다. 국내 병원들의 대표단체인 대한병원협회가 최근 이 자충수로 인해 내홍이 심각하다. 대형병원과 중소병원, 형님과 아우 간 서릿발을 세우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대한병원협회, 과연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대한병원협회 내홍의 핵(核)은 회장 선출이다. 물론 의료계 양대산맥인 대한의사협회 역시 간선제와, 직선제를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지만 병원협회의 논쟁은 차원이 다르다. 회장 선출방식을 둘러싼 병협 내홍의 시발은 꽤나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9년 설립 이후 병원환경 특성상 대학병원 원장 일색이던 대한병원협회 회장직은 1980년대 들어 중소병원들의 세(勢)가 커지면서 무게중심이 바뀌기 시작했다.

실제 1980년 조운해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원장의 대한병원협회 회장 취임은 병협 내 중소병원 전성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무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중소병원 원장들은 잇따라 대한병원협회 회장에 오르며 주인 노릇을 톡톡히 했다.

물론 인제대의료원 백낙환 이사장과 한림대의료원 노관택 의료원장이 중간에 회장을 역임하기는 했지만 대학병원의 세(勢)를 확인시키기는 역부족이었다. 뿐만 아니라 2000년 이후부터는 대학병원에서 회장선거에 출마하더라도 번번히 중소병원 측에 밀리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이렇다 보니 대학병원들 입장에서는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장기간 중소병원 원장 출신들이 회장에 오르면서 병협의 정책노선이 중소병원에 맞춰진다는 불만까지 제기됐다.

지난 2007년 前 김철수 회장 시절, 대학병원 측은 급기야 중소병원의 병협 장악에 대해 강한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일각에서는 중소병원 단체로 전락한 병협과 노선을 달리하는 별도의 대학병원협의체를 구성하겠다는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중소병원 입장에서는 다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 수 적으로야 중소병원이 절대적이지만 대표성과 내용 측면에서 병협 내 대학병원들의 위치를 결코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

고민을 거듭하던 김철수 당시 회장은 대학병원들의 분(忿)을 누그러 뜨리면서 병원계의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묘책으로 ‘회장 교차출마’를 제안했다. 특정 직역의 장기집권을 견제하기 위해 대학병원과 중소병원 측에서 번갈아 가면서 병협회장을 하자는 취지였다.

이 제안에 대해 대학병원 측은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당시 후보군으로 거론되던 중소병원 측 원장들은 반발했다.

하지만 ‘병원계의 화합’이라는 대의명분 앞에 양측의 이해타산이 의미를 잃으면서 2008년 제34대 회장선거부터 첫 ‘교차출마’ 방식이 시행됐다.

얼룩지는 교차출마

첫 교차출마 수혜자는 현 지훈상 회장이었다. 2006년 김철수 원장과의 선거에서 석패한 지 회장은 절치부심으로 2년이란 세월을 보냈고, 2008년 재도전을 선언했다.

지훈상 회장은 당시 유력한 후보였던 허춘웅 서울시병원회장과 접전이 예상됐지만 선거방식이 교차출마로 바뀌면서 연세의대 후배인 박상근 후보를 가볍게 누르고 마포 입성에 성공했다.

우여곡절 끝에 회장에 오른 그는 취임 직후 선거기간 동안 형성된 대학병원과 중소병원계의 반목을 최소화 하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 다녔고, 중소병원 측도 외형적으로나마 지 회장이 내민 손을 잡으며 원만히 회무를 진행해 나갔다.

하지만 문제는 차기 회장선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올 초에 불거졌다. 갑작스레 ‘대한병원협회 중장기발전위원회’라는 기구가 만들어지더니 생뚱맞게 회장선출 기본원칙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2008년 교차출마 방식을 도입할 당시 기본원칙은 ‘대학병원계와 기타 병원계는 연속적으로 2회를 초과해 회장직을 유지하지 않고 교차출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차기 회장선거를 앞두고 병협은 이 기본원칙 때문에 ‘화합’이 아닌 ‘반목’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기본원칙의 해석을 놓고 병협 이사진들 간에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했고, 설왕설래가 계속되자 협회는 별도 기구를 만들어 중재에 나섰다.

논란의 핵심은 바로 ‘연임 범위와 자격’

지난 2년 간 절치부심하며 회장직 탈환을 기다렸던 중소병원계 후보들로써는 대학병원의 연임 문제에 예민할 수 밖에 없기 때문. 하지만 중장기발전위원회의 논의 방향이 현 지훈상 회장의 연임 쪽으로 흐르면서 중소병원의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실제 이 위원회는 3회에 걸친 회의 끝에 지난 2월 말 회장선출 기본원칙 해석 최종안을 내놨다.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연임’ 문제의 경우 동일 인물에 한해 1회 연임이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의결된 내용 만으로는 이번 선거에서 대학병원 측은 지훈상 회장 외에 다른 인물은 아예 입후보 조차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연임자격 역시 ‘업무성과가 양호한 경우’라고 애매모호하게 명시했으며, 회장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자격도 논란의 소지를 남겼다.

입 굳게 다문 지훈상 회장

중소병원 측은 “지훈상 회장 연임 만들기”라며 위원회의 의결사항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고, 교차출마 논쟁은 더욱 심화됐다.

대한병원협회 감사단(이규항, 박준영) 역시 중장기발전위원회의 의결사항은 원칙에 어긋난다며 ‘원천무효’를 선언했다.

상위 기구인 감사단의 지적에 따라 위원회는 원점에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더욱이 대학병원 측인 박준영 이사장도 위원회의 의결이 잘못됐다는 의견을 개진함에 따라 회장선출 방식을 둘러싼 논란은 혼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회장선출 방식을 둘러싼 내홍이 심화되고 있지만 연임 당사자인 지훈상 회장은 아직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이 상황에서 연임의 가부에 대해 의견을 개진해 봐야 아무런 득이 없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이번 선거에 출마를 결심한 후보들은 “지 회장이 확실한 입장을 표명해야 이번 논란이 일단락 될 수 있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현재 회장선거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서울시병원회 김윤수 회장, 경기도병원회 백성길 회장, 안동병원 강보영 이사장 등 3명.

이들 모두 중소병원 측 인물로, 지훈상 회장이 연임 희망을 선언할 경우 고전이 예상되는 만큼 지 회장을 상당히 견제하는 분위기다.

또한 향후 위원회가 내놓을 결론에 따라 모든 상황이 좌우되는 만큼 위원회의 움직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화합이 아닌 반목으로 이미 얼룩질대로 얼룩진 병협회장 교차출마. 아직 아무런 결론이 없는 미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오는 5월 정기총회에서 어떤 인물이 웃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대진기자 djpark@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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