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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안암 흉부외과 홍일점 특별한 성장기
[ 2010년 04월 05일 21시 42분 ]
그 어떤 대학병원의 스타 교수를 만나는 게 이보다 더 어려울까. 고대 안암병원 흉부외과를 지키는 홍일점 이은주 전공의와의 인터뷰를 성사시키는 일은 흡사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과정이라고 해도 좋았다. 알고 있던 개인 연락처는 무용지물.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 급기야 흉부외과 내부 행사에까지 얼굴을 내비친 끝에 극적으로 이뤄진 인터뷰. 달력에 빨간 색이 선명한 어느 봄날 정오에 만난 그는 “인터뷰를 할 정도로 딱히 내세울 게 없다”며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수고로운 만큼 달콤했던 이은주 전공의와의 특별한 만남을 전한다.
[편집자주]
자그마한 체구에 앳된 얼굴이 인상적인 이은주씨는 올해로 3년차를 맞은 고대 안암병원 흉부외과 전공의다. 고대의료원 산하 3개 병원을 통털어 유일한 흉부외과 전공의로 통했던 은주씨는 얼마 전 처음으로 직속후배 1명을 맞이하고는 연신 싱글벙글한 모습이었다. 교수와 전공의가 익숙한 수술복 차림으로 병원 로비 커피전문점에 나란히 들어서서 음료를 주문하는 풍경은 ‘가족’을 떠올릴 만큼 단란했다.
“사람이 적어서 그런가. 다른 병원은 근무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여긴 유난히 가족적인 분위기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다른 병원에서 오신 교수님들도 다들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니까. 교수님들이랑 밥도 같이 먹고, 대부분의 일과를 함께 보내죠.”
경제학도에서 늦깎이 의대생이 되기까지
이은주씨는 원래대로라면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막 사회를 알아갈 시점인 스물여섯 살에 늦깎이 의대생이 됐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경영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에 반년만에 대학원 공부를 포기하고 취업 준비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몇몇 기업체에 원서를 내면서도 짬짬이 수능을 준비했다. 지금과 같은 의사의 꿈을 갖고 다시 입시 전쟁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고.
“의대에 꼭 가고 싶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여자로서 안정적인 진로를 찾을 수 있는 전공이면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이었죠. 취업준비와 수능준비를 같이 하는 상황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모 대기업 3차 면접일과 수능일이 겹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신입사원과 신입생이라는 간극에 선 은주씨는 고민 끝에 수능시험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기업은 면접에서 떨어지면 그걸로 끝이지만, 수능은 일단 치르고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는 막연한 판단에서였다. 거기서 그는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은 높은 점수를 받아 산부인과 전문의인 언니의 조언을 참고로 의대에 진학했다.
갓 20대에 진입한 동기들에 비해 적지 않은 나이에 ‘새내기’라는 호칭을 단 은주씨는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몇 차례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인턴 기간 중 매료된 흉부외과에 자꾸 마음이 쏠리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인턴 들어갈 때만해도 출퇴근할 수 있는 과를 선택해서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집에서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생각이 바뀐 건 응급실을 돌면서부터예요.”
생사의 갈림길에 서서 의사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는 환자들을 목도한 그는 “최소한 환자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결심을 세우게 된다.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과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점차 흉부외과로 범위가 좁혀졌다. 남자도 선택하기 꺼려하는 흉부외과 의사가 되겠다는 데 혼기가 꽉 찬 딸을 둔 집안의 반대가 따른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수차례 고민을 거듭한 뒤 이은주씨가 택한 첫 번째 전공은 진단검사의학과. 당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지만 거기서 그는 채 3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결국 처음 마음을 빼앗긴 흉부외과로 유턴하기까지 다시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은주씨는 “하나의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을 탄 것 같다”이라며 소회를 밝혔다.
“하필이면 면접일이랑 수능일이 겹쳤을 때도 그렇고, 전공을 선택할 때도 그렇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인생의 갈림길에 서서 하나의 흐름을 탄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그럭저럭 참고 살자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건데. 정말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해보자, 그 때는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흉부외과 선택,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
고되기로 소문난 흉부외과 수련과정에서 절반의 문턱을 넘어선 이은주 전공의. 이제 막 후배 한 명을 맞이했으니 그간 겪은 고생은 말로 다 못할 지경이지 않을까. 그는 “힘들기는 하지만 견딜 수 없는 정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 능력에 한계가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만큼만 제가 합니다. 저 혼자 일을 다 하는 게 아니잖아요. 교수님들도 많이 봐주시고, 전문간호사도 있고. 저 들어올 때가 3~4년간 흉부외과 전공의 기근이 가장 심했던 시기라고 하는데, 그만큼 사랑도 많이 받은 것 같아요.(웃음)”
매일 아침 6시 30분에 눈을 뜨지만 취침 시간은 제각각이다. 야간 응급수술이 있는 날은 1시간 이내로 자거나 밤을 홀딱 지새우기 일쑤. 많게는 6시간,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서너 시간에 불과하다. 체력의 한계를 느낄 때면 수술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새우잠을 청하기도 한다고. 전공의 1년차 가을께에는 “아, 이러다가 죽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도의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환자를 살리는 데만 정신을 집중해 무사히 극복했다는 설명이다.
일주일에 단 하루 주어지는 꿈같은 휴식은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는 데 쓴다. 연애는 커녕 친한 친구의 결혼식 갈 시간도 빠듯하다. 은주씨는 “연애도 해보고 싶지만, 절실하진 않다”면서 “간간이 선도 보는데 흉부외과 일과를 얘기해주면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거쳐 멀리 돌아온 만큼 흉부외과를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해본 적이 없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간절히 하고 싶은 것을 하다 보면 길이 생긴다는 것이 이은주 전공의의 지론. 그는 “일단은 전문의 보드부터 따고,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면 되지 않겠냐”며 활짝 웃어보였다.
“후배 인턴들이 진로 고민할 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면 적어도 후회는 들지 않을 거라고. 이거 아니면 다른 건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하는 게 맞는다고 봐요. 분명한 건, 흉부외과는 재미없어서 그만두는 사람은 없다는 거죠.”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은빈기자 cucici@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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