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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가 뒤통수 맞았다고 생각하는 이유
[ 2010년 05월 11일 22시 00분 ]
지난 2008년 2월 25일 보수정권이 집권하자 의료계는 "잃어버린 10년이 종식됐다"라는 기대감으로 충만했다. 진보적 성향의 정부와는 애초부터 '한배를 타기 어려웠다'라는 자체 평가를 내리기 바빴다. 보수정권이 적어도 의료계에 부담을 주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시대 흐름에 힘입어 야인으로 지내던 경만호 현 의협 회장은 대통령, 여당 실세들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회원 표심잡기에 성공했다. 경 회장은 취임 전인 2008년 일부 기자를 초청한 자리에서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정부, 여당과 소통할 자신이 있다. 힘 있는 의료계를 만들겠다"고 단언했다.
반면 의료계가 김대중, 노무현 전 정부의 보건정책 성적표에 야박한 점수를 준 것은 의약분업이 결정적이었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파업을 불사하며 정부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웠다. "주는 것 없이 뺏기만 한다"라는 불만도 극에 달했다. 겉으로는 보장성을 강조하면서 '수가 현실화'를 외면하는 정부를 이율배반적이라고 봤다. 373개 의보조합의 완전 통합일원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출범 또한 재정부담을 결국 의료계에 떠넘기는 수순밟기로 규정했다. 의료계로부터 고혈을 짜내면서, 한편으론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포퓰리즘 정부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여당에 대한 시각도 우호적이지 않았다. 특히 지난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현 민주당)이 추진한 간호사법 논란으로 진보정당과 더 거리를 뒀다.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위촉된 박경철 전 의협 대변인이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이 같은 논란이 벌어지자 국회와 타 직능단체 관계자들은 "의료계 입장에서 좋은 일인데, 왜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이러한 의료계의 불신감이 최근 보수정권에서 재현되고 있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그동안 의료정책에 무관심했던 교수들이 최근 학회를 통해 정부, 국회와의 스킨십을 늘리고 있다. 현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짝사랑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쌍벌제로 금이 갔다. 정부가 줄줄이 예고한 정책에 대해서도 찬성보다는 반대가 훨씬 많다. 우직하게 신뢰를 보냈던 의료계가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료를 산업으로 인식한 정부
찰떡궁합을 예상했던 현 정부와 의료계의 파혈음은 여러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현재 설득력을 얻는 추론 중 하나는 의료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정부는 의료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신성장 산업으로 인식한다. 산업적 가치에 더 점수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인건비 비중이 절대적인 의료기관 특성상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정부가 내놓은 보건정책을 살펴보면, 산업적 가치를 많이 투영했다. 가장 먼저 꺼낸 카드는 글로벌헬스케어(의료관광)였다.
정부는 의료관광을 추진하면서 오는 2012년까지 10만명의 해외환자를 유치하고 9000억원의 경제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홍보했다. 의료관광을 전담하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90억원 이상의 예산을 주며 힘을 실어줬다.
올해 하반기에 도입 여부를 밝힐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법인)도 연장선에 있다. 영리병원은 기획재정부 주도로 추진 중인 데, 윤증현 장관은 수차례 도입 의지를 밝혔다. 최근에는 보건복지부와의 갈등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며 "영리병원 도입을 미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책 전문가들은 "현재 지방선거 일정으로 정부가 활동을 자제하고 있지만, 하반기 본격적인 추진이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정부가 지난해 상반기 발표한 '서비스업 선진화 방안'도 같은 맥락이다. 기재부는 일반인의 의료기관 개설 등을 포함한 서비스 선진화 방안을 언급했다. 민간과 자본에 의료사장 진출을 허용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원격의료, 건강관리서비스업 진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표면적으로 원격의료를 통한 도서벽지 지역민의 의료 불평등 해소를 강조하지만, 산업화에 대한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복지부는 앞으로 건강관리서비스업체를 육성해 전체 의료시장의 20%까지 육성할 계획이다. 지식경제부도 지난 11일 발표한 '유헬스(u-health) 신산업 창출전략'을 통해 원격의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분야에선 "민간투자가 핵심"이라고 했다.
정부는 의료시장 파이를 키우는 데 초점에 맞추고 있다. 해외환자를 많이 유치해 외화를 벌고 산업적으로 작동하느냐가 주된 관심사다. 여기서 정부와 의료계의 시각차가 극명하게 갈린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려면 민간의 참여는 불가피하다. 의료인이 주도권을 쥐느냐는 부차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 진보정권에서의 갈등이 직능단체 간 파워게임 양상이었다면, 최근에는 보건의료인 대 비보건의료인의 구도로 간다는 것이다.
경희대 김양균 교수는 "의료시장의 산업화, 경쟁구도는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며 "이런 가치에서 의료기관이 망하는 개념은 당연하다"고 진단했다.
의료계-진보야당 손잡을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역설적으로 의료계와 진보적 성향의 야당이 정책 연대를 모색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일부 야당 의원실에서는 지방선거 이후 논의될 원격의료에 대해 의료계와의 연대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원격의료와 관련해 의료계가 강하게 반대한다는 점을 안다. 우리 입장도 같다"며 "언제든지 이 부분에 대해서 의료계의 입장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만, 특별한 반응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성향이 크게 다른 민주노동당에서도 일부 정책에 대해서 "의료계와 입장이 비슷하다. 이러한 사안은 같이 갈 수 있다"고 했다.
하반기 의료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건강관리서비스업법이 이달 안으로 변웅전 위원장실을 통해 발의되면 의료계와 야당의 관계가 새롭게 모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 의료시장 패러다임을 이해하거나 차라리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먼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진단한다.
동서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신은규 교수는 "의료시장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단 이런 상황에서 의료계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정부가 현 수준의 규제를 유지하면서 의료계에 일방적으로 정책 수용을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연세대 이규식 교수는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료계가 불합리하다고 느낄 사안이 많다. 이러한 점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음상준기자 esj1147@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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