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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 집중치료실. 27세 남자 환자가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힘겹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교통사고 뒤 2차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장기손상 및 복부출혈을 발견하지 못해 하루 동안 별다른 처치를 받지 못한 채 이곳으로 왔다.
오전 9시 30분 병원 외상외과 전문의 이국종 교수가 중증외상환자 회진에 나섰다. 이송이 늦어져 예후가 좋지 못한 환자를 보는 이국종 교수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어떻게든 우리한테 이송만 되면 살릴 수 있다. 환자가 발생해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현실, 중증외상에 대한 개념도 없는 사회, 이게 대한민국이다.”
“일반 응급환자와 중증응급환자 이송체계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알고있나?” 이국종 교수가 기자에게 묻는다.
“응급환자는 일반적 의료전달체계를 따라 움직여도 충분한 처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중증외상환자는 무조건 중증외상센터로 먼저 이송돼야 한다.”
90년대 초까지 권역응급센터 구축에만 힘쓰던 일본이 중증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을 구축하자 교통사고 사망환자가 절반으로 줄었다는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일반 응급환자 이송체계가 bottom-up 방식이라면 중증외상환자 이송체계는 top-down 방식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골절과 장기손상을 동반한 환자의 경우 흉복부 수술을 통해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장기 출혈 등을 먼저 막은 뒤 협진을 통해 골절 치료를 진행해도 된다는 얘기다.
즉, 중증외상 환자는 3차병원에 먼저 도착해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필요에 따라 순차적으로 외상을 치료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국종 교수는 "치료체계만 잘 구축된다면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는 어떻게든 살릴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물론 장애가 남는다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무엇이 환자를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지 교통정리를 하는 사람, 이것이 트라우마 서전, 외상외과 전문의다.”
이국종 교수는 외상외과 전문의를 항구에 비유했다. 외상 전문의가 일차적으로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처치를 마친 후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 타과 협진을 이끌어내 보존적 치료를 행하기 때문이다.
"외상도 질병"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중증외상 특성화 센터 35개 병원을 지정하고 중증 응급환자에 대한 전문 치료체계 구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전국 6대 권역외상센터 설립 타당성 조사에도 착수했다.
중증외상센터 체계가 잘 갖춰진 미국의 경우 60년대부터 치료체계를 구축한 것에 비하면 30년 이상 뒤쳐진 대응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교통량, 산업재해 등이 늘어나면서 특히 40대 이하에서 사고가 가장 큰 사망 원인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2000년 기준 사회적 손실액 17조 5110억원)
이는 선진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으로 미국 등이 일찌감치 외상환자를 위한 치료체계 구축에 힘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중증외상환자 대부분이 산업현장 등에서 일하는 사회적 하위계층(working-class)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어 1차 사고 후 2,3차 사고로 병원을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
2010년 현재 OECD 국가 중 중증외상환자 거점 센터가 없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외상환자 이송에 대한 가이드라인조차 마련돼 있지 못하며 환자들은 병원을 찾아 거리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이국종 교수는 “이제는 외상도 질병처럼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죽어가는 외상환자를 방치하는 한국이 진정 선진국인지 묻고 싶다”며 현실을 꼬집었다.
중증 외상환자는 특성상 상당히 긴 치료기간이 필요하며 수술 후 보존적 치료를 위해 고가의 장비들이 투입돼야 한다.
그러나 긴 치료 기간으로 병상의 회전률이 떨어지고 장비 지원 등으로 병상을 유지하기 위한 운영비가 높아 그동안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이런 부분은 병원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사회적 안전망 확충의 차원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중증외상도 질병처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중증 외상환자는 매년 12만5000명이 발생해 1만1000명이 사망하고 있는데 적정치료 시 살릴 수 있는 중증 외상환자 역시 매년 3500여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외상전달체계 및 전문센터 구축 등 시스템적인 측면과 인력만 갖춰진다면 생존가능 사망률을 선진국 수준인 10%이하로 줄일 수 있다는 게 이국종 교수의 설명이다.
이국종 교수는 “정부의 지원, 인력의 양성 모두 중요하지만 중증외상환자를 살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적 관심”이라며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외상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종이로 소나기 막는 기분이 든다”면서 “전 국가적 지원과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