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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서 복귀까지 숨 가빴던 병리의사들
[ 2010년 07월 02일 22시 34분 ]
6월 한 달 의료계를 긴장시켰던 병리과 사태가 일단락됐다. 정부의 수가인하에 맞서 전국 규모의 회의를 열기만 수차례, 병리과 의사들은 마침내 정상화를 선언하고 업무 현장으로 복귀했다. 의약분업 사태 이후 10년만에 전공의들의 파업국면에 직면하기도 했던 병리과 사태가 의료계에 남긴 족적을 데일리메디가 따라가 봤다.[편집자 주]

지난 6월 1일, 대한병리학회로 한 통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이날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병리과의 상대가치점수 조정을 통해 7월 1일부터 평균 15.6%에 달하는 수가인하를 결정한 것.

건정심은 지난 2008년 병리조직검사 수가 재분류(5개→13개) 및 적출범위 산정 기준 개선 당시 일정기간(1년) 동안 청구현황을 모니터링해 자연증가 수준 이상으로 재정소요가 증가한 경우 수가를 재조정하기로 한 것에 대한 후속조치라고 밝혔다.

그동안 비인기과로 병원으로부터도 다른 임상과에 비해 홀대를 받아왔던 병리과는 이번 수가인하를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수만 없었다. 수가인하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전국의 병리과 의사들은 생존권에 큰 위협을 느끼게 됐다면서 전국 곳곳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무엇이 문제인가=병리과의 수가재분류 이후 1년 사이 35% 가량 청구액이 증가했다. 건강보험 안정화를 고민해야 하는 복지부 입장에서 이번 건정심의 결정이 ‘수가인하’가 아닌 ‘수가인상분에 대한 조정’이라고 설명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에 대해 병리학회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정책이라고 따졌다. 서정욱 이사장은 “재분류 이후 35% 가량 청구액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기존에 잘못된 병리검사의 분류를 바로 잡으면서 생긴 변화”라며 “예전에 하지 않던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불필요한 병리검사가 존재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인 만큼 정부에서도 이번 문제만큼은 재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병리 개원의들이 느끼는 체감인하 폭은 더욱 컸다. 병리학회에 따르면 전체 병리조직검체 중 40% 가량을 수탁검사기관, 즉 병리과 개원가에서 맡고 있는 가운데 이들이 주로 하는 생검(1~3개)에 대한 인하조정안이 다른 항목보다 컸던 것이다.

서울에서 병리과를 운영하고 있는 A원장은 “보건복지부가 아닌 보건사회부 때 선배의사들이 너무 낮게 병리과 수가를 책정한 것이 문제였고, 최근 그것이 개선되기 시작했는데 다시 수가를 인하한다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수가인하에서 파업까지=6월 4일 수가인하 결정이 난 지 나흘 만에 병리학회는 대한세포병리학회와 대한임상병리사회와 함께 비상총회를 결정했다.

병리학회는 이날 총회에서 “병리조직검사 기본 수가를 총액 기준으로 15.6%를 일시에 삭감하고 7월부터 이를 적용하겠다는 건정심의 일방적인 결정에 놀라움과 분노를 느낀다”며 “이는 병리학자들에게는 도전이고 치욕”이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서정욱 이사장은 “병리진단이 부실화를 겪으며 국민 건강의 발목을 잡는 사태가 오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며 “병리과 진단의 질 향상과 전문의 수급 정책에 대한 획기적인 보완책을 마련할 것을 정부와 의료계에 촉구한다”고 말했다. 수가인하 철회가 병리과 지상최대의 과제로 떠오르는 대목인 셈이다.

이 같은 현실은 우선 전공의들에게 큰 파장을 미쳤다. 병리과 전문의들과 달리 이제 막 병리과 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한 전공의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심했다. 앞으로 먹고 살아야하는, 생존권에 달린 일이라 판단한 것이다.

우선 부산과 경남지역 전공의들이 병원 문을 박차고 나왔다. 이 지역 병리과 전공의들은 학회의 비상총회가 못미더웠는지, 총회가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월요일인 지난 6월 7일부터 파업에 나섰다. 일부는 아예 수련을 포기하겠다는 결심이라도 한 듯 사직서를 병원쪽에 제출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부산·경남 지역에서 시작된 파업은 다음 날인 6월 8일, 전국 병리과 전공의의 비상총회로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전공의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전국적인 파업을 결의했다. 의약분업 사태 이후 10년 만에 단일과 전공의들이 파업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병리학회 역시 같은 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강창석 교수(가톨릭의대)를 위원장으로 학회 비대위는 정부의 수가인하에 맞서 반대논리를 만들기로 하는 한편, 병리과 전공의들의 파업사태 진정시키는 데 골몰했다.

◆자중지란 위기에 처했던 병리과=전공의들의 파업에 따른 비상시국 국면을 맞은 병리학회는 서둘러 비대위를 꾸리고 체계적으로 이 문제에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비대위는 출범부터 삐걱댔다. 전공의들의 파업을 계기로, 정부를 향해 강경 투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비대위 차원에서 이 문제에 난색을 표한 것이다.

특히 비대위의 목적이 수가인하안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의 협상을 위한 요구안도, 대응방침도 정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병리과 의사들은 학회 홈페이지를 비롯해 매 회의 마다 비대위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고, 결국 비대위는 구성된 뒤 단 세 차례만의 회의 끝에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파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한 지방의 한 병리과 전공의는 “학회가 지금 현 상황을 타개해나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는 것 같다”며 “이대로는 병리과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병리학회는 지난 1일부터 전국의 모든 병리과 의사들이 정상업무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부터 사흘간 열렸던 워크숍에서 학회는 대정부 투쟁 대신 대화와 협력을 통해 0.55%로 고정된 병리과의 상대가치점수 비율을 높여가는 등 실리를 얻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

서정욱 이사장은 “학회는 우선 “병리과는 최종 진단을 내리고 맞춤 의료의 근거를 제공하는 등 의료 시스·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병리과 활성화 정책 수립을 촉구하는 한편, 저평가된 병리 진단 수가 개선을 위해 앞으로 학회가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학회는 개원가에서 주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됐던 생검(1~3개) 분야에 있어 대형병원의 양보를 이끌어 내는 등 소기의 성과를 이번 워크숍에서 이뤄냈다. 또한, 장기적으로 차등수가제 등을 도입하고, 병리과 의사들의 업무부담을 줄이자는 차원에서 보험청구시 병리과 의사 실명제 등을 제도적으로 마련키로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병리과의 갈 길은 멀다. 이번 워크숍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대가치개발지원단 이충섭 단장 등 정부쪽 인사가 방문해 병리과의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말 그대로 립서비스에 그칠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학회가 이번 워크숍을 통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이대로 상대가치점수가 고정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병리 전공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말리겠다’는 대답이 72%에 달했으며, 향후에 그만둘지 모르겠다는 의사도 18%나 됐다. 대화와 협상을 선택한 병리학회가 0.55%로 묶인 병리과의 수가비율 한도를 얼마만큼 조정해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인 셈이다.

서정욱 이사장은 “수가 문제 등 병리과의 현실에 대한 연구용역이 3개월정도면 끝날 것으로 본다”며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병리과가 보다 발전하고 의료의 중추로서 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수성기자 sskim@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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