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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 논란 휩쌓인 '연구중심병원'
[ 2010년 07월 09일 22시 02분 ]
[초점]‘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연구중심병원을 통해 우리나라 의료관련 산업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정부 구상은 결국 ‘잘하는 곳이 더 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승자 독식주의로 귀결됐다.

“1등만이 살아남는다”

보건복지부는 8일 연구중심병원의 기본 뼈대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에서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복지부 설명을 듣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병원장들의 관심은 단연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지원을 해 줄 것인가’에 쏠렸다.

복지부는 우선 ‘선택과 집중’을 화두로 제시했다.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 김강립 국장은 “단언컨대 여기 있는 모든 병원들이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연구중심병원의 밑그림을 공개했다.

이어 연구중심병원TFT에서 활동 중인 박구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TSTEP) 정책기획본부장은 연구중심병원의 성공조건으로 ▲경영체계 ▲진료와 연구역량 ▲관련 인프라 ▲사회적 책무 등 4가지 단서조항을 달았다.

사실상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요건을 이 자리에서 밝힌 셈이다. 이 가운데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진료와 연구역량, 관련 인프라 두 가지다.

복지부는 진료와 연구역량 평가에서 연구중심병원에서 나온 결과물이 실제로 수익모델로 이어질 지 여부를 중요하게 봤다.

진료난이도와 병원규모, 전문화(특성화) 수준, 연구실적(SCI급), 특허는 물론이고, 전임상·임상건수, 중개·융합 연구 실적 등을 따져 “R&D를 통한 병원수익 창출 비즈니스 모델을 보겠다”는 것이다.

이어 관련 인프라도 중요한 항목으로 떠올랐다. 복지부는 기초·임상·중개 수행 인력과 자원인력 보유, 연구자 양성프로그램 등과 함께 연구공간과 장비 등 하드웨어적인 부분을 중요시하겠다고 설명했다.

“누구를 위한 선택과 집중인가”

복지부의 설명대로라면, 소위 빅5병원들에게 유리한 항목들로 선정 조건이 채워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올 초 발표한 2009년도 임상시험현황 분석에서, 서울대학교병원이 144건(36.0%)으로 1위를 차지했으며, 이어 서울아산병원(138건, 34.5%), 삼성서울병원(132건, 33.0%), 세브란스병원(127건, 31.8%), 서울성모병원(85건, 21.3%) 등 이른바 빅5병원이 두각을 나타냈었다.

더욱이 관련 인프라면에서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대형병원들을 나머지 병원들이 따라가기 벅찬 게 현실이다.

병상수 규모로만 따져봤을 때 서울아산병원이 2708병상, 세브란스병원 2062병상, 서울대병원(어린이병원 포함) 1961병상, 삼성서울병원 1951병상, 서울성모병원 1200병상 순으로, 환자수나 이를 담당하는 의료인력 면에서 다른 병원들과의 비교 자체를 불허하기 때문이다.

연구중심병원이 출발도 하기 전에 진료와 연구역량 평가에서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는 “빅5병원만을 위한 지원”이란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여형태 병원장은 이날 현장에서 “지방 사립대병원 병원장으로서 연구를 하고자 원하는 교수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못해 가슴이 아프다”고 운을 뗀 뒤 “지금 정책 방향은 마치 재벌위주의 정책같다”고 말했다.

진료중심에서 벗어나자더니…

복지부는 연구중심병원의 사업배경을 두고 "병원의 운영구조가 진료중심으로 돼 있어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R&D를 통한 산업적 가치창출로 이어지도록 개선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더 이상 국내에서 치킨게임과 같은 양적경쟁으로는 한계효용에 다다랐으니, 연구를 중심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자는 의미다.

그러나 복지부의 선택과 집중 논리는 오히려 소수의 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병원들에게는 정반대의 의미로 읽히고 있다.

가뜩이나 연구비 쏠림 현상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일부 소수의 병원을 대상으로 연구중심병원이 돌아가게 되면, 나머지 병원들은 말 그대로 연구는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한 사립대병원장은 익명을 전제로 “연구중심병원으로 의료의 새 판을 짜겠다면서 나머지 병원들은 정부가 문제라고 지적한 현재 그대로의 모습을 이어가라는 것”이라며 “설명회 내내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또 다른 서울의 한 병원장은 “정부의 안대로라면 병원으로서는 사활을 걸고 병원 시설에 대한 투자에서부터 인력 구조 등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하는데 만약 탈락할 경우 어떻게 되겠냐”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대다수 병원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안은 없나

강원대학교병원 김중곤 병원장은 연구중심병원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병원이 모든 역량을 다 갖추는 대신 산학연과의 연계성을 높여가는 쪽으로 진행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놨다.

병원을 중심허브로 두고 주제별로 메디클러스터를 형성하는 형태를 연구중심병원의 모습으로 제시한 것이다.

인프라가 열악할 수밖에 없는 지방대 병원들이 힘을 합칠 경우 발생 가능한 시너지까지 함께 고려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사립대병원장은 "차라리 연구중심병원을 국가 주도로 진행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는 일단 우리나라의 연구비 수준으로 세계와 경쟁하기 어렵다는 전제하에 “연구중심병원이 이런 식으로 갈 것 같으면, 차라리 국가가 세운 ‘연구중심병원’에 연구비를 몰아주는 방식이 국가 차원에서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복지부는 이날 설명회를 마무리하면서 "복지부 예산은 많지 않다. 그래서 고난이 크다"면서 "가능하면 더 많은 의견을 듣고,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수성기자 sskim@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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