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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 도입 前 장관, 의료계에 일침
[ 2010년 07월 21일 03시 15분 ]
2000년 7월 1일. 의료계에 천지개벽이 시작됐다. 의약분업. 의료계의 ‘설마?’는 냉혹한 현실로 나타났다. 1953년 약사법이 공포된 이후 반세기에 걸쳐 숱한 쟁점만을 뿌리며 찬반 양론이 극명하게 갈렸던 의약분업은 조금씩, 조금씩 전진한 끝에 결국 이날 완전히 자리를 꿰차버렸다. 도입 10년째, 의약분업은 여전히 논란의 소용돌이 중심에 서 있다. 그동안 의약분업으로 인해 국민의 불편이 고착화 된 것은 물론이고, 약제비 증가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의약분업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목소리가 거세다. 그러나 ‘의약분업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의료계에는 아직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 때 당시로 되돌아간다 하더라도, 과연 의약분업을 막아낼 수 있었을까.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의약분업 시행 임무를 받고 복지부 장관에 오른 차흥봉 前 장관은 'NO!'라고 잘라 말했다.

난산(難産)의 결과물

1999년 5월부터 2000년 8월까지 의약분업 도입부터 시행에 이르기까지 복지부를 이끌었던 차흥봉 前 장관은 의약분업을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의약분업 시행이란 특명을 받고 장관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여러차례 의약분업 좌초 위기를 넘어 온 탓이다.

“의약분업의 목적은 국민들이 안전하게 의약품을 사용하는 데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이의를 달 수 없는 부분이죠. 하지만 이처럼 공익을 위한 목적도 결과물로 이어지는 데까지는 수 십 년의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차 前 장관은 “의약분업정책은 제도 실시 그 자체로서 일단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라며 험난했던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그는 의약분업을 시행 하고 첫 달 동안, 불편을 호소하는 국민들의 여론이 비등했던 데서도 알 수 있듯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했던 점을 제도 시행의 어려움으로 꼽았다.

여기에 99년 의료계와 약계가 의약분업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약품에 대한 전문적 지배권을 두고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점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차흥봉 前 장관은 “의사들이 의약분업에 반발해 거리로 나서는 순간에 다다랐을 때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특히 의약분업 시행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과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가진 여야 영수회담은 자칫 의약분업 시행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긴박한 순간이 연출됐다고 했다.

그는 “당시 이 총재가 6개월의 연기를 제안했는데, 이 제안이 받아들여졌으면 의약분업 실시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과거에도 조금씩 연기되면서 반세기 동안 실시하지 못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의약분업은 힘들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10년 前 회귀, 어불성설!”

그래서일까. 그는 지금도 의약분업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하다. 의약분업에 대한 신념도 아직 굳건하다.

단순히 의약품 처방전 발행건수만 놓고 봐도 의약분업 전 90년대 처방전 발행 건수가 연간 4만여 건에 그쳤던 비해 2009년 4억6000여만 건으로 1만 배 이상 증가했으니 그만큼 의약품의 안전한 사용 환경이 구축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성분명 처방, 대체조제, 의약품 분류 방법 등도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단다.

당연히 의약분업 10년을 맞아 재평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의료계를 중심으로 거세지는 것도 마뜩찮다는 표정이다.

99년 5·10 합의를 의료계가 깨뜨린 것에 대해서도 아직 이해하기 힘든데, 의약분업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란다.

다만, 그는 최근 의료계를 중심으로 하지만 이미 공직을 떠난 몸인 만큼 재평가를 기다리고 있는 의약분업에 대해 왈가왈부하지는 못하더라도, 분명히 해둘 것 하나는 있다고 말했다.

차 전 장관은 “의약분업의 기본 골자는 국민의 건강권 향상에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재평가를 하는 과정에서도 5·10 합의의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약분업에 반발하는 의사들을 위해서도 “수가구조를 현실화시켜주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차 전 장관은 “의사들이 반발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저수가 구조에서 비롯됐다고 본다”면서 “최소한 원가 이상의 수익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하면 의약분업과 관련한 반발도 수그러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약분업’은 문화혁명

정부가 의약분업을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은 대척점에 섰던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가 1999년 5월 10일 서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른 바 5·10 합의다. 이후 의약분업은 일사천리로 도입이 진행됐다. 중간에 의료계 전체가 거리로 나서며 극렬히 저항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차흥봉 前 장관은 “이날은 역사적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의약분업도 이 5·10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요”라고 회고했다.

그만큼 5·10합의가 의약분업에 있어 차지하는 비중이 무겁다는 소리다.

우선 차 前 장관은 “의약분업정책에 대해 이해당사자 대표인 의협과 약사회가 합의했다는 사실이 정책을 집행하는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면서 “장관으로서 이후 의료계의 파업을 지켜보면서 의약분업에 대한 소신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5·10합의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합의 이전까지 논의됐던 의약분업 모델이 부분적 의약분업이나 단계적 의약분업이었던 것에 반해, 이번에는 강제적 성격의 전면적 의약분업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 전 장관은 ‘문화적 혁명’이라고 까지 표현했다.

차 前 장관은 “여러 가지 형태의 의약분업 모델 중에서 거의 최종적인 모델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역사적 무게를 온 몸으로 끌어안고 산을 오르는 심정이었다”면서 다시 한 번 의약분업의 핵심이 5·10 합의에 있었음을 강조했다.

의료계의 교훈

반대로 의료계는 5·10 합의로 인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합의문 서명 이후 내홍 끝에 의료계는 수차례에 걸쳐 궐기대회를 가졌지만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차 前 장관이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당시 이 합의는 의약분업을 앞두고 최종적인 정책결정 과정이었다”면서 “의협이 합의안에 서명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의약분업은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더군다나 의료계가 파업 당시 의료계가 대안으로 선택분업을 거론한데 대해 “이는 의약분업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말인데, 처음부터 그렇기 이야기하고 합의에 서명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의약분업 재평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는 지금, 의료계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한 번의 그릇된 판단으로 이뤄진 서명으로 의료계가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했던 것처럼, 또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김수성기자 sskim@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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