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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들 한숨소리 깊어지고 고단해져
[ 2010년 07월 28일 03시 05분 ]
[초점]고수익을 보장받던 평생직업 전문직이라는 수식어는 이제 한의사들에겐 옛말이 됐다. 한의사들의 한숨소리가 깊어졌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의계는 지금 줄도산 위기에 처해있다. 폐업률은 이미 증가했고, 진료비와 외래환자가 감소된 지 오래다. 한의사들은 한결같이 “힘들다” “어렵다”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해외진출을 꾀하고, 특화 분야 창출에 머리를 맞대고 돌파구를 찾고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사정은 여의치 않다. 한의계의 미래는 그야말로 암담하다. 한의사들이 고단해지고 있다.

“정말 힘들어” 몸살 앓고 있는 한의원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L 한의원은 2007년부터 보약 판매 횟수가 급격히 떨어져 울상이다. 환갑이 넘은 원장은 진료비가 예년처럼 나오지 않자 직원 월급, 임대료 등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벌려놓은 일도 많고 한의원 운영이 어려워지자 폐업을 결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푼 꿈을 안고 한의원을 개원한 지 채 몇 년이 되기도 전에 초기 투자시설비로 받은 대출 때문에 경영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40대 김모 씨. 원금은 차치하고 이자를 내는 것도 버겁기만 하다. 결국 한의원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 상황에 처해있다.

경기불황으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서민들은 한의원 가기가 꺼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한의원을 찾는 환자가 실제로 감소하면서 폐업 한의원도 늘어나고 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예고됐던 일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한의원 폐업현황’에 따르면 폐업 한의원은 2000년~2006년 364곳, 430곳, 503곳, 577곳, 580곳, 670곳, 734곳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외래환자 또한 감소추세다. 대한한방병원협회 ‘한방병원 2003년과 2007년 진료실적’에 따르면 28개 주요 한방병원 외래 환자는 199만3911명에서 182만185명으로 4년 새 17만명이 줄었다.

당연히 진료비도 떨어졌다. 한의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07년 1044억원이던 한방병원 건강보험 진료비는 2008년 1024억으로 1.9% 마이너스 실적을 보였다.

한의계 여건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강남구 소재 K 한의원 원장은 “한의계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라며 “2000년대 전후해서 전성기를 구가했는데 여러 이유가 원인이 돼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 2009년 5월 경기 불황으로 법원에 개인 회생을 신청한 5억원 이상 채무자들 중 의사, 한의사가 상당수 포함됐다. 서울중앙지법은 한의원 개업이나 확장을 위해 대출을 받았다가 경기침체로 인해 상환 능력을 상실한 경우가 많다는 분석을 내놨다.

K 한의원 원장은 “국세청 신고자료를 보면 한방의료기관이 수익이 제일 낮은 것으로 조사됐을 만큼 모든 의료기관에서 가장 낮은 수익을 보이고 있다”며 “비보험이 많아서 믿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이제는 카드, 현금영수증으로 수입이 노출이 돼서 믿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보약판매 저조·한방 불신·한의사 공급과잉 등 복합요인

그렇다면 한의원을 찾는 환자가 줄고, 연이은 폐업 사태까지 한의계가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는 것은 ‘보약’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이다. 한의원은 비급여 환자로 운영되고 있는 수익구조이다 보니 비급여인 보약을 사람들이 멀리하면 자연히 경영 악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광화문에 있는 L 한의원은 2006년~2008년 보약성수기인 10월~12월 판매실적을 보면 2006년 88건, 98건, 114건, 2007년 53건, 58건, 65건, 2008년 30건, 33건, 37건으로 매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L 한의원 원장 이모 씨는 “2007년부터 보약판매가 눈에 띄게 줄었는데 지난해 중금속 함유나 간 손상 우려로 안전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급격히 고객층이 얇아졌다”며 “불황으로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환자들이 더 이상 보약을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의원에서 가장 큰 수입원인 보약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무너지면서 급격한 경영 악화를 겪는 한의원이 여러 곳이 있다.

한의사협회 송호철 홍보이사는 “보약에 대한 불신이 크고, 양방 의료계의 경우 2만개에 달하는 보험품목에 비해 한의계는 60여 종만 보험으로 인정해 주다보니 한약이 소외되고 있다”며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더욱이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하고 대체적 효능을 가진 홍삼 등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활성화 되면서 보약은 벼랑 끝으로 내몰려졌다.

여기에 한의사들은 “중국산 한약재에 대한 환자들의 불신으로 한방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 한의계 전반적인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중국산 한약재를 밀반입해 유통시킨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이 간간히 발생하면서 국민들의 한방에 대한 신뢰도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한의사협회 김정곤 회장은 “국민들 신뢰가 낮은 것이 사실”이라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 식약청, 복지부 등과 함께 ‘한약재이력추적제도’, ‘자가포장제도’ 도입을 통해 불량 한약재 자체를 원천 봉쇄할 대안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의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원인 중 하나로 한의사들은 공급 과잉 문제를 지적한다. 한의계가 호황을 누리던 2000년대 한의대가 늘어나면서 매년 900명 정도의 한의사가 새로 배출됐다. 그러나 한방의료기관이 매년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 400여 명정도로 나머지는 중소 한의원에서 일을 해야 하는 구조다.

더욱이 금융권 대출 규모가 5년전만해도 신규 한의사들에게 3억원이상 신용대출이 가능했으나 최근에는 1억~2억원으로 대폭 축소, 개업마저도 힘든 상황이다. 경영난에 빠지면서 은행이자, 카드결제 연체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의사들의 일자리 찾기는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 가 됐다.

"위기가 곧 기회"…예방·웰빙 선호는 한방 부흥 전기

이처럼 한의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한의사들은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돌파구 마련에 분주하다.

해외진출을 꾀하는 한의사들이 늘고 있으며, 다이어트, 한방성형 등 특화된 진료를 통해 수익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한의사들도 쉽게 눈에 띈다. 또한 조제하기 어려운 보약의 제형변화를 찾는 움직임도 찾을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의사협회 김정곤 회장[사진]은 “한의원의 불황 탈출을 위해 표준화, 객관화를 통한 한방 과학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중장기적인 전략부터 제도적인 지원을 통해 한의원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실질적 의견도 피력했다.

김정곤 회장은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마음으로 세계 시장 진출을 꾀하기 위해서는 표준화, 객관화 작업을 통한 한방 과학화를 선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예방의학과 웰빙을 선호하는 움직임이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으면서 한방의 미래는 오히려 밝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 회장은 “정부에서 한의원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줘야 한다”며 “특히, 한방건강보험을 확대하고 본인부담 기준금액을 낮추는 등 한방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세계전통의학 시장이 국가 성장동력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IT시장 만큼 그 규모가 상당하다”며 “우리나라가 우수한 인력, 전통의학 임상연구 수준 등 제반여건을 볼 때 결코 뒤지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불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노은지기자 nej331@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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