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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지간 정(情) 넘어 우정 나누는 교수
[ 2010년 08월 02일 21시 50분 ]
군대 간 3년 기다려준 나의 스승

방동식 교수가 이성낙 교수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때는 의대를 졸업하고 군 입대를 앞둔 1976년이었다. 당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내과계열을 많이 지원, 방 교수도 내과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세브란스병원 피부과에 독일서 공부한 이성낙 교수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넓은 세상에서 온 교수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생겨 면담을 요청했다.

방동식 교수는 “당시 이성낙 교수님이 저를 보고 아주 당돌한 놈이라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면서 “인턴교육도 받지 않은 제가 교수님과의 면담을 요청한 후 만났을 때 왜 피부과를 지원하려고 하냐고 물었고 당시 나의 대답은 내과계열은 이미 많은 연구들이 진행됐지만 아직 피부과는 미개척 학문인 것 같아 도전하고 싶다”고 대답했단다.

또 방 교수는 이성낙 교수에게 “전공의를 받을 때는 선착순으로 뽑을 것이 아니라 검증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당돌한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곤 방동식 교수는 군 입대를 했고, 제대하기 3개월 여를 앞두고 방 교수가 직접 전화를 해 “자네 자리는 내가 비워두고 있으니 제대하자마자 곧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말해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

당시는 미국 의사를 동경하고 미국으로 많이 건너가던 시절이라 유학도 생각했었다는 방 교수는 “선생님께서 3년 전 면담을 기억하시고 직접 전화를 주신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서 이런 선생님이라면 나를 올바른 의사의 길로 이끌어 주시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학생들, 논문은 반드시 영어로 써라”

그 후 이성낙 선생은 학생들에게 논문을 쓸 때는 반드시 영어로 쓰라고 주문했다. 최근 10년 새 영어 논문이 늘기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당시는 충격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방 교수는 “1980년대 초반에는 요즘처럼 영어 논문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부담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성낙 교수가 당시 모든 논문을 영어로 쓰라고 한 것은 국제적인 수준으로 준비하고 연구하라는 뜻이었다.

이런 이성낙 교수의 기대에 부응한 방 교수는 당시 국제학회에서 아시아 최초로 최우수 포스터 상을 수상했다. 그 후 지금까지 세브란스병원 베체트병 클리닉에서 나온 자료는 대부분이 영문자료다. 9권의 책과 150여 편의 논문이 나왔으며 200회에 가까운 학술 발표를 했다.

이성낙 교수는 베체트병 종주국인 터키를 찾아 한국의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터키의 베체트병 연구자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길도 열어줬다. 그 후 이성낙 교수는 베체트병을 연구하는 후배 교수들에게 세계적인 수준에서 학회를 개최하고 논문을 발표할 것을 끊임없이 독려하고 있다.

“역사를 알아야 학문을 할 수 있다”

1985년 연세대학교에서 100년사 편찬 준비를 하고 있을 당시 피부과 역사를 정리할 사람이 필요했다. 당시 이성낙 교수는 방동식 교수에게 “역사를 알아야 학문을 할 수 있다”면서 피부과학교실의 역사를 정리하라고 시켰다. 이미 정리된 역사가 아닌 자료를 찾아 요약하고 검증을 거쳐 피부과학교실의 첫 역사책을 만들었다.

방 교수는 “내가 잘못알고 있는 정보로 인해 연세의대 피부과학교실의 역사가 바뀔 수도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부담이 엄청났다.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 증빙자료의 점검을 거듭하고 초본을 완성, 당시 꽤 잘 정리했다는 칭찬을 받은 것 같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발상의 전환 일깨워준 은사님

이성낙 교수는 예술에도 조예가 깊으며 특히 세계의 탈(Mask)에 대해 관심이 높아 진료실 한쪽 벽면을 탈로 채웠다.

방 교수가 전공의 시절 이 교수는 벽에 걸린 한 탈을 가리키며 그 탈에 대한 피부상태를 기술하라는 테스트를 즐겼다고 한다.

“예를 들어 탈의 피부가 움푹 파이거나 황달, 흑달, 기미, 곰보자국, 여드름 등 탈에 나타난 해학적 모습들을 피부질환에 연계해 공부시켰다”면서 당시 추억을 되새겼다.

학회나 베체트병 연구를 위해 세계를 누비는 이성낙 교수와 방동식 교수는 각 나라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관람하며 예술작품과 질병을 연관지어 토론하는 발상의 전환을 즐겼다. 방 교수는 “요즘도 스승님을 만나면 전시회에 들러 예술작품도 감상하고 차도 마시는 여유를 갖는다”고 전했다.

“항상 예의바르고 반듯하게 행동하라고 가르침”

“이성낙 교수님은 옳고 그름이 분명하신 분이었다. 환자를 대할 때도 중간에 말을 끊는 법이 없으신 분이다.” 방동식 교수는 “흐트러짐이 없었던 이성낙 교수의 생활방식이 언제부터인가 내 생활방식이 된 것을 느꼈다”면서 “항상 깔끔한 성격, 환자나 제자를 대할 때도 언제나 존대로 예우해줬던 스승님의 가르침을 아직 세기고 있다”고 말했다.

남을 도울 수 있는 의사가 된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는 방 교수는 “환자를 도와준다는 것은 질병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며, 의사라는 전문인이라면 거기에 실력으로 부응해야할 것”이라면 “최고의 전문성, 최선의 진료라는 평소의 진료 철학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성낙 前총장
이성낙 前 가천의대 총장은 1938년 서울 출생으로 독일뮌헨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마르부르크대학교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 마르부르크대학에서 교수자격을 취득했지만 바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피부과학교실 부교수로 임명됐으며 이후 연세대의료원기획조정실장을 역임, 1990년 아주대학교 피부과학교실의 교수 겸초대 학장을 지내고의무부총장을 역임했다. 2004년에는 가천의대 초대 총장으로 추대됐으며 베체트병의세계적인 권위자이다. 이성낙 총장은 인당의학교육대상과 대통령 표창,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다.베체트병(Behcet's disease)이란?터키의 피부과 의사인 훌루시 베체트(Hulusi Behcet)에 의해 처음 보고 됐다. 실크로드를 따라 있는 국가들에서 주로 발병하며, 20~30대에호발하고 주로 구강 궤양에서 시작해 외음부 궤양, 피부염증, 실명 등의 안(眼)증상을 주증상으로 하며,병이 진행될 경우 중추신경계, 심혈관계, 위장관계 및 근골격계 등 전신장기를 침범하는 만성 염증성 질환이다.
김도경기자 kimdo@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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