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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세계 보건대통령 '이종욱 박사' 묘비
[ 2010년 08월 05일 21시 30분 ]
늦은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5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은 작업 인부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뚝딱뚝딱’ 쇠망치 소리와 ‘드르륵 드르륵’ 요란한 기계음을 쫓던 기자의 시선은 벽면에 반쯤 펼쳐진 ‘백신의 황제’라는 플래카드에 멈춰졌다.

그랬다. 인부들은 故 이종욱 박사의 흉상 제막식을 준비 중이었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이종욱 박사 서거 4주기를 맞아 추모 전시회와 함께 그의 흉상을 제작키로 했던 것.

지난 2006년 5월 22일. 그의 급서(急逝)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잃은 우리 국민은 물론, 인류애에 감명받은 지구촌 가족들에게 큰 슬픔을 안겼다.

UN본부에 조기가 걸리고 각국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울과 제네바에서 동시에 추모식이 열리는 것은 고인이 남긴 커다란 발자취에 대한 조그만 보답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박사의 삶은 봉사와 희생과 사랑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서울의대 시절엔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고 대학졸업 후에는 봉사활동 중 만난 일본인 부인과 함께 멀리 남태평양의 피지와 사모아 섬으로 날아가 환자 치료에 정성을 쏟았다.

그래서 세계 의료계는 그를 ‘21세기의 슈바이처’로 부른다. 특히 에이즈와 조류독감 퇴치에 앞장서는 등 세계보건 증진에 기여한 공로는 실로 ‘세계 보건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얻고도 남음이다.

이런 업적을 차치하고라도 최근 국내 의료계에서는 이종욱 박사의 이름이 왕왕 회자된다.

대한민국 의료 위상을 드높일 제2, 제3의 이종욱 박사가 나와야 마땅하지만 작금의 국내 의료계 상황에서는 요원한 얘기라는 푸념이 대부분이다.

진료를 위한 삶이 아닌 삶을 위한 진료가 이뤄지고 있는 척박한 현실에서 무작정 봉사와 희생을 택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해질녘 오늘 하루 방문 환자수를 헤아리며 한 숨을 내뱉어야 하는 다수의 의사들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신성시 될 수 있겠는가. 답은 아니오 일 것이다.

이종욱 박사의 묘비에 새겨진 ‘질병 없는 아름답고 건강한 세상’. 과연 세상 풍파에 휘둘리고 있는 후학들이 그의 바람을 따라 줄 수 있을까?

소박한 옷차림에 인간적이고 천진한 웃음 대신 그의 미완성 흉상은 무표정으로 답하고 있었다.
박대진기자 djpark@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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