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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 읍소 "저희 이름은 숨겨 주세요!"
[ 2010년 09월 13일 21시 50분 ]
한 제약사가 내달 있을 추계학술대회 지원을 위해 후원금을 들고 찾아왔다. 조건을 달았다. 제약사의 이름을 숨겨달라는 거였다. 예전같으면 '떳떳하게' 후원금을 내고 홍보했을 텐데 공정경쟁규약이 마음에 걸려 후원금을 내고도 뒷걸음질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또 다른 제약사는 이번 추계학술대회 세션에 참가하기 위해 6000만원의 후원금을 내겠다고 했지만 제약협회로부터 무려 25%나 삭감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2010년 추계학술대회 시즌이 본격 개막됐다. 대한의학회에 따르면 10월부터 대한심장학회, 대한신경외과학회에 이어 대한피부과학회, 대한영상의학회, 대한재활의학회, 대한내과학회 등의 추계학술대회가 예고돼 있다.

하지만 예년과는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고 지난 4월 1일 이후 시행된 공정경쟁규약의 여파는 이번 추계학술대회에도 고스란히 이어질 모양이다.

그 동안 이 규약은 제약사의 의학회에 발전을 돕는 순수기부 등도 일종의 규제권으로 분류함으로써 의학계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돼 왔다.

13일 대한심장학회 학술이사 김효수 교수(서울의대)는 "지난 4월부터 적용되고 있는 공정경쟁규약은 워낙 비현실적인 규약이었다. 개정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제도"라고 성토했다.

김효수 교수는 "이번 추계학술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스폰서가 학술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데 골치 아픈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더라. 공정경쟁규약으로 인해 많은 학회들이 발목을 잡히고 있다"고 성토했다.

특히 기부자가 낸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 지 모를 수도 있다는 데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김효수 교수는 "어떤 제약사가 만약 심장학회에 기탁한 후원금이 엉뚱하게 집행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규약이 완전히 개정되기 전이니 일단 6개월의 한시적인 규정이라도 철저히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이없는 배달사고가 일어나 다른 곳에서 가로챌 수 있는 것이 공정경쟁규약"이라면서 "각 제약사마다 원하는 구체적인 학회가 있을 수 있지 않나. 이같은 우려를 잠식시키려면 학회를 지명하고 자격이 되는 학회 등에 단서를 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행히 공정경쟁규약이 사실상 전면 백지화쪽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학계 대다수가 낙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김효수 교수는 "그 동안 한국의 의학이 왜 일취월장 했는지 판단해보면 된다. 의학자들이 연구와 학술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토대가 됐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일련의 정책들이 이렇게 갈팡질팡하면 국내 의학계의 수준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한비만학회 학술이사 이원영 교수(강북삼성병원)는 "주로 국내 연자로만 축소했으며 해외 연자는 3인으로 일본, 대만에서 초청했다"면서 "재정 부문에서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학술프로그램도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카데믹한 목표를 가지고 진행되는 학술대회는 전폭적인 지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신경과학회 역시 아시아태평양 대회를 여느냐 마느냐 고민 중인 것으로 아는데 전반적으로 학회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전했다.

대한내분비학회 총무이사 정윤석 교수(아주대병원)는 "개정 작업을 통해 공정경쟁규약이 좀 더 완화되겠지만 학술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규제 위주의 정책은 의학 발전의 영원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가운데 국내 A제약사 마케팅팀 관계자는 "조심스러운 분위기이며 신중한 분위기"라면서 "몸을 사리게 된 것은 사실이며 이번 추계학회에도 이어지고 있지만 절차와 원칙에 준용하는 선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숙경기자 jsk6931@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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