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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건의료 R&D 패러다임 전환해야"
[ 2010년 10월 07일 21시 30분 ]
지난 7월, 의료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파격적 인사소식이 들려왔다. 보건산업진흥원 R&D 진흥본부장에 현직 의과대학 교수가 전격 발탁된 것이다. 과거 진흥원 내 신기술개발단장 등의 직위에 외부 인사가 영입된 사례가 있긴 했지만, 본부장직을 개방형직위로 채용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국내 보건의료산업의 R&D를 총괄하는 자리여서 의료계가 체감하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 주인공,
선경 교수(고려대안암병원 흉부외과/사진)
를 데일리메디가 만나봤다.
[편집자주]
보건산업진흥원 내 한편에 자리한 R&D진흥본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틈 사이로 선경 본부장의 집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오후 2시 정각. 선 본부장은 R&D본부 직원들과의 회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갑론을박, 우리나라 보건의료 R&D의 발전을 위해 한참이나 이어지던 회의는 마침내 끝을 보였다.
“평생을 연구실과 진료실에만 살다 감투를 쓰다 보니 챙겨야 할 일들이 어찌나 많은지 정신없네요. 그저 공무원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허허.” 선 본부장은 예의 그 호방한 웃음을 보이며 기자를 반겼다. 복지부가 지원하는 R&D 연구비 가운데 보건의료산업 분야 2100억원 규모의 예산 결정권을 쥐었다 볼 수 있으니, 그만큼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임상의사로서 첫 진흥원 R&D를 총괄하게된 각오는?
“보건의료의 산업화가 신성장동력으로 거론된 지는 오래됐죠. 그러기 위해선 R&D를 강화해야 한다는 말도 숱하게 반복돼 왔고요. 하지만 현실을 따져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부에서 관심을 갖고 R&D 예산을 늘려왔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기술적 향상만 있었을뿐 산업적 가치로 이어지기 힘들었던 거죠.”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국내 R&D 정책은 시쳇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었다. 세간에는 ‘연구를 위한 연구’란 말까지 나오며 연구자들 사이에서 허무주의가 극심했던 적도 많았다. 선경 교수가 R&D본부장 직을 맡은 것도 이러한 국내 보건의료 R&D 틀을 바꿔보자는 생각에서다.
어떤 식으로 R&D 패러다임이 바뀔까요?
“그동안 보건의료산업의 핵심 소비자인 의사들 니즈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수단에 불과한 기술 향상에만 주목했던 탓이죠. 앞으로는 목적중심의 R&D가 주를 이루게 될 겁니다. 현장에서 나와서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쌍방향적 R&D라고 할까요. 과거 하이테크 의료기기를 힘들게 개발해 놓고서도 정작 쓰일 곳을 찾지 못했던 것과 같은 실수는 두 번 다시 재연되지 않을 겁니다. 두고 보십시요.”
선 본부장의 눈이 번뜩인다. 국내 R&D 부흥을 통한 보건의료산업화를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있다. 사실 그가 R&D 총괄을 맡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도 복지부 보건의료기술정책심의 위원, 복지부 HT포럼 공동대표, 국가과학기술위 운영위원 등을 맡고 있어 우리나라 보건의료 정책 전반에 걸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 본부장 또한 R&D에 목말라 있는 연구자이기도 하다. 흉부외과 전문의로 고려대에서 한국인공장기센터를 이끌며 인공심장 관련 연구에 뛰어들어, 지난 2004년 A4용지 크기에 불과한 세계에서 가장 작은 기계식 인공심장을 개발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여기에 고려대 의무기획처장을 지내며 행정력을 쌓았다는 점은 앞으로 그가 보여줄 R&D 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주위 기대가 크다. 부담스럽지 않은지?
“책임감이 막중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리를 의사가 맡기는 처음이니 더 그렇죠. 다행이라면 그동안 정책 분야 곳곳에서 쌓은 경험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R&D 전반에 걸친 정책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속한 보건의료 분야까지 전반적 흐름이 눈에 보인다고 할까요.”
그 덕분일까. 선 본부장이 취임한 지 겨우 한 달 조금 지났을 뿐인데도 개혁의 신호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개방혁 직위인데다 행정과 거리가 멀다고 느꼈던 대학교수가 뜻밖에 부임하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진흥원 사람들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는 모습에 탄식을 자아내고 있다.
R&D 체질 개선 위한 복안은?
“그동안 R&D 본부가 관리 쪽에만 무게 중심을 두고 일을 처리하다보니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힘들었습니다. 여기부터 변화를 주기 시작했죠. 관리 조직과는 별도로 R&D 기획만을 담당하는 부서를 새로 만들 계획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일찌감치 워크숍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안(案)도 마련해놨고요. 특히 신기술개발단, 기반구축단, 중개연구단 등 R&D 본부 산하 각 사업단에 프로젝트 매니저(PM)를 둬 R&D 평가 관리를 맡겨 사업 진행의 수월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생각입니다.”
앞으로 R&D 예산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에 대비해 조직 구조를 효율적으로 바꾸겠다는 의미다. 특히 R&D 본부가 최근 삼일회계법인에 맡긴 조직진단 결과가 조만간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를 바탕으로 오송 시대를 맞이하는 것과 동시에 R&D 본부도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라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방형 직위인 만큼 한계도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있는 동안 모든 것을 다 이루고자 한다면 그건 분명 욕심이겠죠. 무리를 한다면 어느 정도 흉내를 못낼 것도 없지만 그래선 모래성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제가 할 일은 분명합니다. 국가 R&D 백년대계를 위해 초석을 구축하는 것. 오직 그 부분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선 본부장은 조직 자체의 체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기존의 쌓아올린 경험과 지식이 사람이 바뀌면서 흩어져버리는 것을 숱하게 지켜봤던 선 본부장은 R&D 종합 포털을 구축하는 사업을 정부에 제안했다. 선 본부장은 “R&D와 관련된 모든 정보들이 이 곳에 축적되게 될 것”이라며 “R&D를 맡기는 정부도, 그 사업을 따내야 하는 연구자들도 모두 방대한 자료의 바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드는 중”이라고 말했다.
임기 2년 후를 생각해 보셨나요?
“흉부외과 의사로서 수술장과 멀어지는 길을 택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모험이죠. 그만큼 우리나라 R&D 틀을 제대로 한 번 바꾸겠다는 각오를 하고 온 것입니다. 2년 금방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더 열심히 뛰어야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다른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선 본부장은 이 말을 끝내고선 또 다시 회의를 시작했다. 일련의 개혁 작업이 그에게 잠시간의 쉴 틈조차 주지 않는 탓이다. 그래도 그는 돌아서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2년 뒤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날 땐, 패러다임의 전환을 넘어 또 다른 가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겠노라”고. 우리나라 보건의료 R&D 분야에 새로운 희망이 움트고 있는 순간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김수성기자 sskim@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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