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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자신한테 극단 처방 내리는 의사들
[ 2010년 10월 08일 22시 22분 ]
“자살이라는 당시를 위기로 보고 한 발짝 물러나면 된다. 그리고 혼자 결정하기보다 주위와 고통을 나누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
자살 공화국 대한민국. OECD가 지난 2008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만 3000여 명이 한 해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35명, 40분마다 1명씩 아까운 생명이 사그라지고 있는 것이다. 의사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자살’이란 최후의 처방을 스스로 내리는 의사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올 들어 언론을 통해 공개된 사건만 해도 벌써 4건에 이른다. 지난 2월에는 경남의 한 치과 원장이 경영이 어려워 몇 달 째 전기세와 고용보험이 체납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달 전북의 30대 여의사는 아파트 1층 바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평소 강박 증세를 보였다는 가족들의 진술로 미뤄봤을 때 심각한 정신적 고통으로 끝내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도 자신의 연구실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발생, 비극을 더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 메모지에 우울증, 극복 등과 같은 단어를 남긴 것으로 미뤄, 경찰은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판단 내렸다. 곧이어 3월에도 지방의 한 국립대병원 마취과 교수가 채무 등 개인적인 이유로 고민하다가 일부 우울증 증세를 보이면서 끝내 음독자살로 생을 달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가뜩이나 침체돼 있던 의료계는 이 사건으로 충격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우울증 치료하는 의사들도 우울증에 시달려”
앞서 의사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주요 배경은 바로 우울증 때문이었다. 우울증을 치료해야 하는 의사들이 우울증 속에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 숫자 역시 만만치 않은 것으로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다.
지난 2008년 미국 하버드의대 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공의들의 경우 심신쇠약 증상 발병율은 41~76%로 매우 높았고, 우울증 발병율도 7~56%로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올 4월 미국에서 발표된 또 다른 보고서에서도 의사로서 첫 발을 내딛는 인턴 과정에서 그 전과 비교했을 때 우울증 기준에 해당하는 의사들의 비율이 8배 이상 높아졌다. 연구를 주관한 미국 미시간대학 스리얀 센 교수는 “연구대상자들 중 우울증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인턴이 되기 전엔 3.9%에 불과했으나 인턴 과정에서 평균 25.7%로 늘어났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최근 수행한 경증우울증 및 아임상 우울증 실태 조사에서 심지어 우울증을 치료하는 정신과 전문의조차도 10명 중 7명 가량이 최근 1년간 경증 및 아임상 우울증 경험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의사들의 우울증 문제가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른 셈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정신과적 치료는 일종의 터부로 인식되면서 선뜻 치료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의사들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고대안암병원 이민수 교수 따르면, 우울증 환자 중 15~20% 가량은 자살을 선택한다고 한다. 또 자살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살에 근접한 ‘사고’를 경험하는 사람도 우울증 환자의 75%에 달하는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민수 교수는 “우울증은 적극적인 치료와 상담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진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부정적이라는 점 때문에 실제로 치료율이 높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우울증으로 인해 정신과 치료 경험을 가진 환자가 고작 20%이고,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는 환자는 5%에 불과하다는 현실이 우울증 환자의 자살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의사들의 경우에는 사정이 더하다.
이 교수는 “우울증에 의한 자살은 그 순간만 넘길 수 있으면 견딜 수 있지만, 의사라는 사회적 지위와 체면으로 도움의 손길을 뿌리친다는 게 문제”라며 “혼자서 고민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앞서 우울증을 겪은 것으로 나타난 정신과 의사들 가운데 치료를 받은 경우는 단지 6%에 불과했다. 대신에 이들의 선택은 주로 자가치료법에 머물러 있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경증 및 아임상 우울증 극복을 위해 일차적으로는 스스로 해결하는 자기관리법을 사용한 경우가 정신과 전문의의 경우 83%에 달했지만, 효과에 대한 기대정도는 45%에 그쳤다.
연구를 주관한 성균관의대 정신과학교실 오강섭 교수는 “경증우울증 및 아임상 우울증의 자기관리법에 대한 정보제공 필요성이 높지만, 객관적인 연구가 미흡하다”며 “이번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적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의사 우울증, 심각한 사회 문제 야기할 수도
이처럼 의사들이 우울증을 겪게 되는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전공의 시절엔 주로 수면과 여가 시간 부족 등 고강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 우울증을 부추긴다. 전문의 자격을 따고 개원의 또는 봉직의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는 경제적 여건이 크다. 신분이 비교적 안정적이지 않은 봉직의로서의 스트레스, 자영업자로서 개원의가 겪을 경영상황이 이들을 우울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민수 교수는 “전공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우울증에 걸릴 위험을 최대 10으로 본다면 의사들의 경우 9정도에 달하고 있다고 보면 맞다”면서 “생명을 다룬다는 부담, 과도한 업무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리는 게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러한 의사들 우울증이 단순히 자기만의 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의술을 펼쳐야 하는 직업적 속성 탓이다. 미국 하버드의대 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의사들이 그렇지 않은 의사들보다 의료과실을 야기할 가능성이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영국의학저널에 발표한 당시 논문을 통해 “우울증 증상이 있는 전공의들이 의료과실을 저지를 위험이 6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우울증 등 정신건강에 대한 추가 연구 및 이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위기의 순간에도 희망은 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의사들. 최악의 선택 만큼은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궁극적으로는 의사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 고강도 업무, 1차의료의 붕괴와 그에 따른 경영난을 부추기는 저수가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는 등 제도적으로 고쳐야 할 점이 많지만 현실적으로는 지금 당장 기대하기는 힘들다.
대신 이 교수는 “자살이라는 당시를 위기로 보고 한 발짝 물러나면 된다. 그리고 혼자 결정하기보다 주위와 고통을 나누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면서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하고픈 생각이 드는 것을 질병의 하나로 여기고 적극적인 치료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의사이기 때문에 자가 처방도 가능하겠지만, 가급적이면 주위 동료를 통해 정신과 전문의를 소개받아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며 “이것 역시 용기가 필요한 일이어서 쉽지만은 않겠지만, 괴로움은 시간 제한적이어서 세월에 따라 옅어지는 만큼 삶의 끈을 반드시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김수성기자 sskim@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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