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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설명의무 만만히 봤다간 '큰 코' 다쳐"
[ 2010년 12월 28일 02시 55분 ]
대법원 판례에 따라 그 후 의료사고 판결은 사망이나 합병증 등 악(惡)결과에 의사 이외의 원인이 없었다는 것만 환자가 입증하면 의사가 나머지 부분, 즉 사고가 아닌 정당한 의료행위였음을 입증해야 하는 형태로 전환됐다. 이런 이유로 과거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의사의 과실을 인정한 판례들이 종종 나오고 있는 추세다.
● “의료소송, 2중 기준에 의한 과실 판단”
현재 우리나라 판례는 의료소송에 있어 2중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의료행위가 의학적으로나 의술적으로 평가해 잘못됐는지 여부에 대한 순기술적 판단과 함께 또 다른 하나는 설명의무 위반의 유무다. 눈에 띄는 부분은 의사가 설명의무를 위반했을 때 그 책임이 갈수록 적극 인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소송 전문 신현호 변호사는 “물론 민사소송에서는 입증 책임 경감 이론을 적극적으로 적용해 과실과 인과관계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면서 “이러한 차이로 같은 사건에 대해 업무상과실죄에는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는 판결이 선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입증 책임에 있어 대법원이 환자측 부담을 완화시켜 주는 입장에 서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경환 변호사는 “의료소송에 있어 인과 관계 입증은 환자로 하여금 ‘역사적 사실로서 증명되면 좋고 과학적으로까지 증명될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대법원은 증명의 정도에 있어서도 과실과 결과 사이에 50%의 심증형성(개연성)만 있어도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대법원은 진료기록 등을 의사가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진료기록을 위·변조하거나 은닉, 훼손 또는 제출을 기피하는 경우에는 과실을 추정해 입증책임을 의사에게 전환하고 있는 흐름이다.
의료사고의 원인이 발생하는 단계를 진찰·검사단계, 진단단계, 처치 및 수술단계, 기본적 환자관리단계 등으로 분류해 어느 단계에서 가장 많은 의료사고가 발생하는가에 대해 법원이 선고한 의료판례 분석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기본적 환자 관리 단계에서 발생하는 비율이 40%에 육박한다는 것.
산부인과나 외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등에서는 대부분 수술이 이뤄지고 있는데 귀책 사유도 수술 및 처치 항목보다는 기본적인 환자 관리 항목이 모든 과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경환 변호사는 “이유는 진찰이나 진단, 처치나 수술 등의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아 입증이 어려우나 간호, 경과관찰, 환자관리 등은 눈에 띄어 상대적으로 쉽게 과실을 입증할 수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 “설명의무 강조하면서 간호사 주체성은 인정하지 않아”
그 가운데 설명의무는 의료분쟁 소송에 있어 가장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운 사항이다. 그만큼 의사들은 물론, 이제는 간호사들의 설명의무도 점차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설명의무란 간호사가 환자에게 간호처치 방법, 부작용, 간호요양방법지도 등을 충분히 설명해 주고, 환자는 이를 제대로 이해한 후에 자율적인 자기 결정으로 자신에 대한 침습행위를 허용한 경우에만 의료행위가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 때 간호사는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줘야 한다는 것인데 하지만 간호행 개념을 규정하는데 있어 모호성이 현장에서는 가장 큰 문제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대법원은 간호업무의 구체적 규정 설정을 하지 않으면서 개개의 행위에 대해 의사의 보조자라고 선을 긋는 태도를 보인다. 간호사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판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미터다.
‘산부인과 의원 신생아실에 입원 중인 신생아가 야간에 우유 흡인에 의한 기도폐쇄성 질식으로 사망한 사건(업무상 과실치사죄)’. 이에 대해 검찰이 간호사만을 기소하고, 의사는 ‘(간호사에게) 신생아실 당직 근무시 주의사항에 대해 수시로 교육하고 있고 잠을 잘 것에 대비하여 당직 다음날은 휴무를 실시하는 등 신생아실 관리에 성실하였다’는 이유로 무혐의 결정을 내린 판결이다.
그러나 이후 신생아의 부모는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위법하다고 하면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의사는 전문적 지식과 기능을 가지고 환자의 전적인 신뢰 하에서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자로서 그 의료행위를 시술하는 기회에 환자에게 위해가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의 조치를 취할 의무를 지고 있고 간호사로 하여금 의료행위에 관여하게 하는 경우에도 그 의료행위는 의사의 책임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간호사는 그 보조자에 불과하므로 의사는 의료행위가 환자에게 위해가 미칠 위험이 있는 이상 간호사가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충분히 지도, 감독하여 사고발생을 미연에 방지할 주의의무가 있고 이를 소홀히 한 채 만연히 간호사를 신뢰하여 간호사에게 당해 의료행위를 일임함으로써 간호사의 과오로 환자에게 위해가 발행하였다면 의사는 그에 대한 과실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의사는 신생아실 근무자들로 하여금 TV나 잡지책 등을 보도록 방치함으로써 본건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판단된다"고 해 결국 의사에게 과실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신현호 변호사는 “향후 의료법을 개정하거나 더 나아가 간호사법을 만들어 의사의 의료행위나 간호행위 개념과 구체적 업무범위에 대해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판례 중에는 자살 위험이 있는 환자의 감시 및 관리업무는 의사의 지시가 없어도 간호사가 이행할 의무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법원의 태도는 간호사가 독자적으로 환자에 대한 치료를 할 수 없는 반면 환자의 보호에 있어서는 독자적인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여 균형을 잃고 있다”고 주장했다.
● “요양지도 설명의무 소홀, 명백한 주의의무 위반”
A군은 군보건소에서 폐결핵 판정 및 결핵약 복용 처방을 받고 담당 진료원으로부터 결핵환자에게 일반적으로 처방되는 에탐부톨(EMB) 등 4가지 약품을 1개월 단위로 복용했다. A군은 읍 소재 안과에 들러 시신경염(의증)의 진단을 받게 됐고 담당진료원은 즉시 에탐부톨의 투여를 중지하고 나머지 약제만으로 결핵약을 조제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A군은 에탐부톨의 복용 중지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여러 안과에서 ‘결핵약 복용에 의한 약물유발성 시신경 병증’ 등의 진단을 받았다. 원고의 시력은 최초 진료 당시에는 양안 각 1.0으로 측정됐던 것이 우안 0.02, 좌안 0.01로 나빠졌다. 원고는 진료원이 투약에 따른 지도설명을 다하지 못해 시력이 손상됐다며 진료행위의 본질적 구성부분에 대한 주의의무위반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법원은 결핵약 투여 과정에 있어서 환자에게 설명해야 하는 설명의무라 할지라도 단순히 인격권인 자기결정권의 침해에 대한 위자료 손해배상책임만을 요하는 조언설명과는 달리 진료행위의 본질적 구성부분에 해당하는 요양지도로서의 설명의무를 위반한 경우로 진료상 요구되는 주의의무 위반이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설명의무는 고지설명, 조언설명, 지도설명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특히 지도설명 의무위반의 경우에는 진료상 주의 의무위반으로 보고 위자료뿐만 아니라 재산상의 손해까지 배상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사례다. 지도설명은 의사의 정보 제공에 대해 환자가 자기결정을 하고 자신이 알아서 행위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사의 정보 제공은 환자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도설명 의무위반은 진료상 주의의무위반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판례다.
● “의료소송 천국… 미제 건수도 매년 누적”
우리나라 의료소송 접수 건수는 전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된 1989년 69건을 시작으로 연평균 증가율이 36%를 넘고 있고, 특히 최근 4년 간은 매년 100건 이상이 늘어나고 있다. 미제 건수도 매년 누적돼 의료소송의 장기화 현상 등 법원에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조정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나 정착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의료소송의 환자 승소율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높다는 것이다. 민사 1심 본안사건에서 전체의 평균 인용률이 71.2%, 합의사건 인용률이 65.1%인데 반해 의료소송 사건의 평균 인용률은 61.6%여서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서 인용률은 판결 내용에 이의를 제기한 사항이 인정되고 받아들여진 비율. 이와 함께 최근 들어 항소 비율이 늘어나는 것을 살필 수 있다. 의료소송에서 환자측 입증책임 완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의료과실과 인과관계를 폭넓게 추정, 의사 입장에서는 구체적인 과실이나 인과관계를 적시하지 않은 채 책임을 지라는 것으로 받아들여 판결에 불복하고 있다는 증거다.
반면 환자의 입장에서는 항소심에서 혹시 과실이나 인과관계를 추정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녹아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신현호 변호사는 “수사가 시작되면 경찰 등은 의사에게 진료기록부나 각종 검사지를 번역해 제출하고 치료경과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기 때문에 환자측에서는 자신이 누구로부터 어떻게 치료받았는지를 손쉽게 알 수 있게 된다”면서 “또 환자측을 상담하는 변호사나 사회단체 상담원들이 진상 파악이 어렵다는 이유로 고소를 권유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이러한 추세는 바람직한 현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신현호 변호사는 “당사자 간 화해나 수사 단계에서의 합의는 의사가 진심으로 자신의 의료상 과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숙경기자 jsk6931@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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