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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의 역습(逆襲)
[ 2010년 12월 31일 03시 03분 ]
● 신의 선물 항생제
1941년 인간에게 최초로 투여된 페니실린이 단 하루 만에 패혈증으로 죽어가던 영국인 앨버트 알렉산더를 살렸다.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 음식을 찾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은 분명, 항생제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항생제 개발과 더불어 급속도로 발전한 현대의학 덕분에 장티푸스, 임질, 매독, 급성폐렴, 인후염, 골절감염, 요도감염 등 수많은 질병의 치료가 가능해졌다. 세균성 질환에 속절없이 당했던 인류가 드디어 공격에 맞설 무기를 손에 쥐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1969년 미국 공중위생국장 윌리엄 스튜어트는 “인류 전염병의 끝이 보인다”고 호언장담하기에 이른다.

● 신의 저주가 되어 돌아오나?
세계보건기구(WTO)는 “1973년 이후 에이즈를 비롯한 40여 종의 전염병 병원체가 추가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각종 전염병과 싸울 수 있는 신의 선물이자 든든한 무기였던 항생제가 갑자기 세균들의 무기가 되어 인류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항생제를 복용해 몸 속 세균을 없앴던 인류를, 세균이 항생제를 이겨낼 수 있는 힘(내성)을 길러 공격하기 시작했다. 전염병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해 줄 신의 선물로 추앙받던 항생제는 더 이상 세균을 몸 속에서 쫓아내지 못했다.

지난 2000년 미국은 전염병과의 전쟁을 다시 선포했다. 2002년 11월~2003년 7월 유행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으로 774명이 사망했다. 2009년엔 신종 인플루엔자 A(H1N1)가 유행해 100개국에서 8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리고 2010년, 내성력과 전염력이 한층 강해진 다제내성균이 나타났다.

사실 다제내성균은 인간에게 혼란스러운 존재다. ‘신의 축복’으로 여겨졌던 항생제가 도리어 세균의 힘을 키워준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항생제 개발에 비해,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키우는 속도는 너무 빨랐다. 페니실린이 개발된 지 1년 뒤, 포도상구균에 감염된 세계 질환자의 30%가 페니실린에 내성을 갖게 됐다. 1950년엔 그 비율이 무려 70%로 늘어났다. 항생제가 만들어진 순간부터 내성획득이란 진화 방법을 선택한 균과 인류의 생존싸움이 시작됐던 것이다.

MRSA(Methicillin-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메티실린내성 황색포도알균) 감염으로 미국에서만 한 해에 1만 9000여 명이 사망한다. 이는 에이즈 감염으로 인한 사망보다 많은 숫자이며, 감염자가 사망하는 확률은 20%에 달한다. 지난 9월 이후 일본 정부는 MRAB(Multi-drug Resistance Acinetobacter Baumannii, 아시네토박터균) 감염으로 15명이 사망했다고 공식 인정했다.

또 지난 11월 도쿄대병원에서 다제내성녹농균이 검출된 혈액악성종양 환자 10명 가운데 5명이 사망했다. 2010년 병원감염관리 학회지 제15권 제1호에 따르면, 정부가 2008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전국 의료기관 57곳을 대상으로 중환자실 감시체계 KONIS(Korean Nosocomial Infection Surveillance System)를 운영한 결과, 항생제 카바페넴에 내성이 있는 MRAB에 감염된 사례가 182건인 것으로 드러났다. MRAB의 내성률은 2005년 18%에서 지난해 51%로 2.8배 증가했고, MRSA는 2005년 65%에서 지난해 75%로, VRE(vancomycin-resistant enterococci infection, 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도 같은 기간 29%에서 37%로 늘었다.



급기야 국내에서도 최근 NDM-1 CRE감염환자가 발견됐다. 보건복지부는 “수도권 한 종합병원에 입원해있던 50대 폐질환 남성 환자와 70대 당뇨합병증 여성환자의 감염을 확인했다. 같은 병원의 다른 환자 2명도 감염이 의심된다”고 발표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심상치 않게 판단한 질병관리본보는 지난 10월 NDM-1 유전자를 함유한 CRE(Carbapenem Resistant E coli, 카바페넴내성 장내균)를 법정 전염병으로 긴급 고시했다.

또 관련법 개정을 통해 12월 30일부터 CRAB(Carbapenem Resistant Acinetobacter baumanii, 다제내성 아시네토박터균)을 포함해 MRSA, VRE, 다제내성 녹농균, NDM-1 유전자를 함유하지 않은 CRE 등 5종의 슈퍼박테리아를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해 감시·관리할 계획이다. 또 보건당국은 감염대책위원회 설치 의무병원을 현재 150곳에서 1100여 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 항생제 오남용이 가장 큰 원인
신의 선물 항생제가 도리어 인간을 위협하는 신의 저주가 되어버린 이유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여러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그 중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원인은 바로 ‘항생제 오·남용’이다. 인간이 항생제를 과다 복용해 세균이 내성을 기르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항생제 내성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표적 원인이 바이러스성 질병인 급성상기도감염에도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이다. 과도한 항생제 처방으로 국민들의 항생제 내성률을 높인 의사들의 책임이 무겁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발표에 따르면 2010년 2분기 급성상기도감염 환자들에게 항생제가 처방되는 비율은 주요 상급종합병원 32.9%, 종합병원 47.6%, 병원 48.2%, 의원 54.4%이다. 이는 세계 보건기구 권장치 22.7%의 두 배가 넘는다.



2010년 2분기 항생제 처방률이 2.7%(내과 항생제 처방률 전국 평균은 47.7%)인 동작구 K내과 원장은 “환자가 열이 나면 그 원인이 바이러스인지 세균인지 불분명하다. 그래서 합병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세균 때문에 발병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같은 분기 항생제 처방률 90%가 넘는 강남구 G내과 원장은 “진료 경험상 염증이 심하면 항생제가 필요했다. 환자들은 빨리 낫기를 바라는데 세균배양 검사는 2~3일이 걸리는데다가 건강보험적용 대상 항목도 아니라 활용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항생제 처방 시 복용 방법과 부작용에 대해 설명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부작용 심한 항생제를 처방할 경우나 알레르기 반응이 의심되는 경우에만 한다. 많은 환자를 상대하니 모두에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한숨 쉬었다.

항생제 처방률이 45배가 넘게 차이나는 두 의원 모두 ‘자신의 경험’을 처방근거로 들었다. 한국에서 항생제 처방은 특별한 처방지침 없이 의사의 주관적인 판단에 달려 있었다.

이러는 사이 세계보건기구(WHO)가 200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MRSA 병원검출비율은 65%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미국 55%, 영국 40%, 스페인 28%, 호주 8%, 스웨덴 0.6% 등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2009년 국내 병원의 MRSA 검출률은 75%로 점점 증가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김홍빈 교수(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 총무이사)는 “다제내성균 감염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다제내성균은 개인의 감염 여부보다 감염 위험에 얼마나 노출된 환경인가가 중요한 척도”라고 강조한다. 그 동안 항생제 처방을 남용해 온 의사 가족들도 항생제의 역습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 내성획득률 높은 한국 균(菌) 특성도 일정부분 영향
속효성 강한 치료를 바라는 한국인의 선호도가 항생제 오남용을 유도, 항생제 내성율을 높여 다제내성균 감염 위험을 높였다는 주장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국인과 한국에서 발견되는 특정 세균들의 유전적 특성도 한국인의 항생제 내성률을 높이는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연세대 감염내과 정석훈 교수는 몇몇 학술지에서 한국에서 발견되는 균들이 유독 내성획득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정 교수는 그 예로 “일본은 카바페넴을 우리보다 오래전부터 많은 양을 사용해 왔는데도 카바페넴 내성률이 낮다. 이는 한국에 ESDL 효소를 생성하는 세균이 유독 많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한국에 존재하는 균들이 내성이 잘 발현되는 유전적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에서 다제내성균 감염관리 계획을 세울 때, 이런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항생제 내성률을 분석하고 다제내성균 감염관리와 치료과정에 한국 특유의 환경적·유전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연구가 속히 진행돼 한국의 특성을 고려한 다제내성균 감염 치료법과 감염예방·관리방법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항생제에 내성을 획득하는 균들과 인간의 끝없는 생존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 새롭게 개발된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내성균의 탄생을 불러오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제약사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지난 25년 동안 새로운 계열의 항생제는 리네졸리드 한 종류만 개발됐을 뿐이다.

인류는 다제내성균과 싸우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새로운 항생제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것보다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감염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항생제 내성률이 낮아지도록 노력하는 것은 국민 개개인의 몫도, 병원만 열심히 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감염관리 정책을 마련하는 정부와 항생제를 처방하고 감염치료를 해야 하는 의료진, 감염위험에 노출돼 국민 모두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 의료진 사소한 노력이 환자 목숨 살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300병상이면 감염관리대책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단 법망을 피해 병상을 299개로 유지하는 병원도 있다”고 지적한다. 과연 의료라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인가 싶을 정도다. 병원과 의료진은 보다 적극적으로 다제내성균 감염관리에 신경써야 한다. 다제내성균 감염률이 낮아지는 것은 병원 자체에도 바람직한 일이다.

다제내성균 감염 관리에 대한 병원 경영진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현장에서 환자들을 만나는 의료진의 사소한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2009년 한림대의대 진단검사의학교실 김재석 교수팀이 대한임상미생물학회지를 통해 발표한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한 대학병원의 전공의가 착용했던 가운 28개와 넥타이 14개에서 다제내성균 검사를 한 결과, 가운 7개와 넥타이 1개에서 MRSA가 검출됐다. 또 MRCNS(methicillin-resistant Staphyllococcus aureus, 메치실린내성 포도상구균)은 가운의 96.4%와 넥타이 100%에서 검출됐다. 건강해지기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의료진에 의해 환자가 다제내성균에 감염되는 것은 병원의 존재 당위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료진이 손을 자주 씻고, 주변 환경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등의 사소한 부지런함이다.

경희의료원 외과 이길연 교수는 “의사들 가운 외에도 수술 방 환경, 체모 제거에 대한 주의 등 앞으로 예방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의견을 더했다. 참고로 영국 보건당국은 2008년, 병원에서 착용하는 넥타이, 흰 가운, 긴 소매 등을 통해 병원균이 옮겨질 수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의사들에게 넥타이와 긴소매 옷의 착용을 제한한 바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동안 두 세 종류의 항생제를 선호해 내성 발생률을 높여온 의료진의 책임이 무겁다. 약을 처방하는 것은 의사 고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정석훈 교수는 “이제 곧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는 ‘후(後) 항생제 시대’가 올 것이다. 항생제 없이 질병을 치료할 방안이 개발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의사들은 그 방안을 찾을 때 까지 꼭 필요한 경우에 적절한 양의 항생제를 처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민들 항생제 의식 변해야
2009년 식품의약품안정청은 “성인남녀 1015명을 대상으로 항생제 사용 및 내성에 관한 초점집단 면접조사(FGI)를 실시한 결과, 항생제 내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해 수준과 관심은 2007년 64.8%에서 지난해 75.9%로 크게 향상됐다. 그러나 항생제가 몸에 쌓여 내성이 생기면 약효가 작용하지 않는다고 오해하는 등 국민들의 상식 수준은 여전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항생제 복용 시간을 준수하고, 경증 질환엔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나을 때까지 기다리는 등 국민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똑똑해져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하는 병원의 항생제 처방률을 지켜보고, 경증질환엔 빨리 낫는 것이 상책이 아니라 자가 능력으로 치유되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좋다는 의식의 변화가 요구된다.

정석훈 교수는 “영아까지 데리고 다녀오는 문병문화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병문안 문화는 면역력이 약해져 있는 환자에게도, 감염위험이 가장 높은 공간인 병원을 방문한 문안객에게도 유익하지 않다. 게다가 반가운 마음에 만나는 사람마다 악수라도 한다면 감염위험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정 교수는 “문병문화를 바꿀 수 없다면 최소한 병원 다녀올 때마다 손이라도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정부, 예산 투자해 구체적인 감염관리지침 만들어야
무엇보다 정부의 구체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질병관리본부 내엔 다제내성균 관리를 전담하는 부서도 없다. 여러 팀이 모여 급하게 정책을 만든 뒤, 모든 책임을 병원에 떠넘기는 식의 방식은 감염관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다제내성균 관련 업무를 하는 질병관리본부 부서는 두 군데이다.

그러나 이 두 부서는 다제내성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전염병관리과는 급성전염병을, 약제내성과는 내성에 관련된 연구를 하는 부서이다. 삼성서울병원 윤성원 감염관리 간호사는 “책임 운운에 앞서 정부는 예산과 노력을 들여 일단 치료·관리 지침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제내성균 감염관리가 효과적으로 진행되기 위해 전문적인 체계와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의 다제내성균 감염관리는 경제적인 지원과 투자 없이 병원을 통제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례로 현 상황에선 감염자가 사용하는 1인실 비용은 모두 병원 부담이다.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병원이 감염환자의 파악과 격리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게 될 수 밖에 없다.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김홍빈 교수는 “정부는 입원비 중 관리비 항목에 감염관리 비용이 포함됐다고 주장하지만, 소독제 구입비, 감염관리 간호사 임금, 홍보 활동비 등 항목별로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은 감염관리를 위해 입원하는 환자 일 인당 얼마씩 비용을 지원해준다”고 지적했다.

이런 의료계의 목소리를 전해들은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정부 지원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노력하고 있다. 300병상 이상 병원만 병원감염대책위원회를 설치해야 하는 법규를 일정규모 이상의 병원급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관리지침을 개발해 실제 의료인들에게 홍보·교육할 예정이고, 감염관리에 대한 비용 보전방향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조민경기자 jjo@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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