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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경북대병원 전공의들과 갑을관계
[ 2011년 01월 24일 22시 20분 ]
“제가 살아보니깐 인생 갑과 을이더라고요. 마음에 안 들면 싹둑싹둑 잘라낼 수 있는 사람이 ‘갑’, 나가라면 나가야 되고 죽으라면 죽어야 하는 사람이 ‘을’! 여기 있는 ‘을’들, 다 회사에서 벌어간 만큼 자기 밥값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람들 잘라서 뭐 얼마나 더 잘 살려고 그러세요? 지금도 잘 살면서….”

한창 인기리에 방영 중인 MBC 드라마 ‘역전의 여왕’에서 주인공 김남주가 구조조정 위기에 놓인 남편을 대신해 회사를 향해 울분을 쏟으며 뱉었던 한 대사다.

절박한 심정에서 남편의 생사 여탈권을 쥔 회사 상사에게 퍼부었던 이 대사는 수 많은 ‘을’ 입장의 시청자들에게 ‘개념어록’으로 꼽히며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

새삼 이 장면이 다시 떠오른 것은 최근 경북대병원에서 일어난 영아 사망 사건을 지켜보면서다.

‘갑’인 회사 대신 정부와 해당 지자체, 그리고 병원과 ‘을’에 전공의를 대입해보면 꼭 들어맞는다.

당시 현장에서 진료를 봤던 전공의들의 면허를 정지하는 쪽으로 징계를 하자는 의견이 종합응급의료위원회에서 제기됐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전공의들의 처량한 ‘을’의 신세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피교육자 신분으로 수련병원 안에서 언제나 ‘을’의 위치에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전공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세간에서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랑 다른게 뭐냐”는 소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전공의가 응급환자 진료를 거부했다는 것도 사실무근에 가깝다.

현재 사실관계 파악에 나서고 있는 대전협은 “병원 측이 파업이후 환자의 위급성에 따라 제한적으로 접수 및 입원수속을 하도록 지시를 내렸다”면서 “또 당시 전공의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응급환자가 아니라는 진단 이후 환자와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도 있다”고 밝혔다.

한 의사커뮤니티에 경북대 전공의라고 밝힌 의사도 “당시 파업 중이어서 입원 문제로 환아와 보호자가 고생할 것을 염려해서 해당 전공의가 다른 병원 가는 것을 권유했고, 굳이 본원에서 치료하겠다면 수술 후 응급실에서 입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언급한 데 비춰 봐도 정황상 전공의들이 면허정지에 처할 정도로 중대한 법률적 위반을 한 것으로 보이질 않는다.

결국 허술했던 응급의료시스템을 방치해뒀던 정부와 해당 지자체, 당시 파업 중임을 알면서도 대안을 마련치 못했던 병원과 노조 같은 ‘갑’은 놔둔 채, 만만한 ‘을’일 뿐인 애꿎은 전공의들만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처사다.

언제쯤이면 ‘을’인 전공의들이 권한과 책임에서 ‘책임’에만 쏠려버린 무게추를 바로 잡고 의사로서 당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는 대목이다.

다행히 해당 전공의들의 동료와 스승들이 직접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움직임을 취할 태세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이 문제를 정식으로 조사 중이란 소식에서 일말의 기대감을 남겨본다.

그래야 김남주가 드라마 속에서 “희망해서 퇴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퇴직은 절망해서 하는 겁니다”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절망에 빠진 전공의들이 더이상 나타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김수성기자 sskim@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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