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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괴로움' 책 읽는 '즐거움'
[ 2011년 07월 11일 02시 46분 ]
[기고]
요즘 기자를 시작한 이후 15년만에 처음으로 사내 다른 선후배들에게 부러움을 받는다. 부러움이 과해 질시를 받기도 한다. 기자가 내부 구성원에게 부러움을 받는 것은 특종을 했거나 아니면 외국연수를 가는 경우 밖에 없다. 하나는 명성을, 하나는 이국에서의 휴식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특종은 가끔 돈과 연결되기도 한다. 사내특종상은 상금이 100만원밖에 안되지만 사외 특종상은 상금이 1000만원이 넘는 것도 있다.
나는 특종을 한 것도 아니고 외국연수를 가는 것도 아니다. 다만 팀을 바꿨을 뿐이다. 두달전까지만 해도 나는 언론사의 ‘백마고지’로 불리는 사회부 법조팀에서 있었다. 백마고지란 매일매일 전쟁터같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병원으로 말하면 흉부외과, 소화기내과 등과 비교될 수 있을까?
법조팀이 취재하는 곳은 검찰·법원 등이다. 이번 정부 들어 법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서부터 최근 부산저축은행 수사까지 바람 잘 날이 없는 곳이다. 한명숙 전 총리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에 대한 수사도 있었다. 타사가 먼저 보도해 낙종이라도 했다면(우리는 이걸 물먹었다고 말한다) 회사에서 엄청 깨진다. 남들보다 한줄 먼저 얻어들으려면 밤낮 없이 열심히 다녀야 한다. 술은 정말 매일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언제라도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을 수 있는 곳이다(보통 예상치보다 더 많이 먹는 일이 많다). 한마디로 일은 일대로 고되고 술은 술대로 먹지만 칭찬받을 일이 별로 없는 부서다. 그래서 햄버거힐(전쟁때 사람이 많이 죽는 고지를 칭하는 말), 늪이라고도 부른다.
문제는 한번 끌려가면 계속 끌려간다는 점이다. 다들 기피부서니까 사람은 충원이 안되고 또 일이 많다보니 믿을만한 사람을 시켜야 하니까 경험자를 선호하게 된다. 그래서 사회부장이 바뀌고 법조팀이 바뀌면 법조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사회부장이나 담당 부국장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법조 경험자은 자신들을 다시 법조로 끌고 가려는 사람들을 조선시대 탈주 노비를 붙잡으러 다녔던 ‘추노꾼’으로 부른다. 나도 4번이나 끌려갔다 왔고 기자생활의 3분의 1은 백마고지에서 보냈다. 말진부터 팀장까지 두루두루 거쳤다.
추노꾼이 어느 정도 극성이냐 하면 한 후배는 법조로 오라고 계속 되는 러브콜을 거절했는데 어느날 밤 회사의 최고위급 인사가 집으로 직접 술을 사서 찾아왔다. 추노꾼이 집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기자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하겠나. 그래서 끌려왔다가 3년 이상 있는 선수들도 많이 봤다. 어떤 신문사에는 법조에만 10년 정도 있는 기자들도 제법 있다.
이런 법조에서 탈출한 것만 해도 감읍해야 할 상황에 내가 새 둥지를 튼 곳은 책지성팀이다. 출판을 담당하는 기자가 된 것이다. 법조에서 책지성팀으로 팀을 옮기자 나의 처지에 배가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 우선 전직 법조팀 선수들이 그랬고, 책팀으로 가고 싶어하던 선후배들에게도 지청구를 많이 들었다.
생각해보라. 책을 읽으면서 월급을 받는 직업이 세상에 그렇게 흔하겠는가? 도대체 어떻게?라는 질문을 많이 받기도 했다. 맨처음에는 일일이 겸손하게 사정을 설명하며 응대했다가 너무 귀찮아서 회사에 2천만원을 줬다는 농담을 했다. 그랬더니 물어보는 게 뜸해졌다.
하지만 출판팀도 일은 일이었다. 근사한 커피숍에서 일주일에 한두권의 책을 읽고 멋진 서평만 쓰면 되는 상상을 하고 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맨 첫주 가서 보니까 책들이 와도 보통 오는 게 아니었다. 매주 200권의 정도의 책이 왔다.(우측 사진) 어린이날과 스승의 날을 앞둔 5월초에는 300권도 더 넘게 온 것 같다. 거짓말을 좀 보태면 화장실만 다녀오면 책상 옆에 수북이 새로운 서적들이 도착해 있었다. 매일 책만 보다가 저녁 10시에 회사에 나서는 나름의 격무였다. 어떤 때는 차라리 술을 마시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200~300권의 책가운데 그주에 소개할 책 20권을 추리는 게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이다. 10분의 1의 확률인데 매주 희비가 엇갈린다. 너무도 좋은 책인데 이런 책이 그주에 몰릴 때가 있다. 커버 기사로도 충분한데 1단 기사로도 실리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뿐 아니라 책도 팔자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4월초 맨처음 책 팀에 왔을 때 가장 많이 쏟아졌던 책은 경제책이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도대체 어떤 영향을 한국은 물론 세계경제에 미칠가에 대한 내용의 책들이 쏟아졌다. 대부분 미국과 중국에서 나온 책들이었다. 미국 중심 학자들은 미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경제패권을 잡을 것이라는 내용이 많았고 반대로 중국은 미국의 견제에서도 중국이 세계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반대 주장이 많았다. 미국의 공격적인 환율정책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내는 중국학자들도 많았다. 미국이 승리한다는 의견이 8대2 정도로 많다.
다음으로는 환경서적이었다. 3월11일 일본 동북아지진으로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사태 때문인지 환경 관련 서적들이 봇물을 이뤘다. 원전 문제같은 본질적인 책은 물론이고 지진같은 천재지변에서 생존하는 법을 설명한 책들도 많았다. 책들도 패션처럼 확실히 유행을 타는 모양이다.
그렇게 책지성팀에 적응한지도 두달이 넘었다. 아마 이 두달 동안 내가 기자생활을 하며 읽은 책만큼의 책을 읽은 것 같다(나는 어린이책도 담당하기 때문에 그림책 만화책을 읽어 권수로 말한다면 아마 우리 회사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는 사림일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좋았던 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을 꼽을 것이다.
나는 대학 때 문학을 전공했지만 문학의 고루함에 4년 내내 답답함을 느꼈던 사람이다. 오히려 실용 글쓰기에 더 관심이 많았고 영화시나리오나 희곡 등을 시 소설보다 더 많이 읽었다. 결국 실용글쓰기의 대명사인 기자가 됐다. 한마디로 비문학 혹은 반문학을 기웃거렸던 문학계의 아웃사이더였다.
망구엘은 남미의 아르헨티나 출신 소설가였다. 하지만 그는 소설만큼이나 책읽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나의 독서일기>라는 독서기의 명작을 쓴 사람이다. 남미 출신이지만 앵글로 색슨 국가 출신자처럼 날카롭게 생겼다. 실제로 그는 영국에서 활동했고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작가이자 독서가인 그는 원래 어릴 때 꿈이 도서관 사서였다고 한다. 워낙 책읽기를 좋아해 도서관에서 묻혀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다보니 사서가 되지 않고 소설가가 됐다. 그렇게 소설을 쓰면서 이 책 저 책을 모으다 보니 신발장과 부엌에도 책이 들어서게 됐고 결국 어릴 때 꿈을 실현하자고 결심하고 남부 프랑스 남부에 자신의 도서관을 세운다.
그는 도서관을 만들고 나서 자기 도서관에 앉아 도서관에 대한 동서고금의 생각을 펼쳐보인다. 그는 자기 도서관이 모든 언어를 포괄하려는 바벨탑과 그리고 세계 각국의 모든 책을 모으려는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의 신화를 따르고 있노라고까지 호언장담한다. 하지만 도서관은 책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검열이 심하고 심지어 편파적이라며 도서관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기도 한다.
어찌됐건 그는 고대 로마인들이 술의 신인 박카스에게 제사를 지내는 터에 도서관을 만든 그는 밤마다 자기 도서관의 책들을 따라 취한듯 여행을 떠난다. 곰팡이 냄새가 나는 책표지와 호두나무 냄새의 책꽂이를 쓰다듬으며 그는 서가를 따라 떠도는 책 속 유령의 옷자락을 따라 매일 밤 여행을 떠난다고 말한다. 그게 자기 도서관의 매력이란다. 여행이 아니라 그는 아예 밤에는 도서관에서 스스로 길을 잃어 버리는 것 같다.
동양 최고의 술꾼이자 시인인 이태백의 시 속에 등장하는 취중 허풍에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았던 나였지만 망구엘의 책에 취한 독백은 전율을 느끼게 했다. 소설가가 말하는 도서관예찬론은 어떤 문학작품보다 낭만적이고 어떤 신문기사보다 사실적이었다. 독서의 힘, 문학의 힘이 느껴졌다.
망구엘에게 감동을 받은 나는 그의 전작인 <독서일기>와 <그림일기>를 바로 사서 읽고 있다. 하지만 역시 나는 도서관에서 길을 잃는 망구엘과 달리 술을 먹고 알콜 속에서 정신을 놓는 게 아직은 더 익숙한 모양이었다. 시간이 펑펑나는 주말에 펼쳐든 두 책은 <밤의 도서관> 만큼 쏙쏙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일로 읽던 책과 즐거움으로 읽는 책 가운데 나에게는 일로 읽는 책이 아직은 더 이해가 잘된다. 나는 <밤의 도서관>보다 <낮의 회사 책상>에서의 책읽기가 아직은 익숙한 책읽기의 아마추어인 모양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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