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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만을 위한 약(藥) 30만정 쓰레기통으로
[ 2011년 05월 09일 22시 10분 ]
제약사들이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매년 R&D비용을 크게 늘리며 신약이나 개량신약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과연 R&D비용이 제약사들의 의지대로 미래성장동력을 갖추는데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을까. 업계에 따르면 국내제약업체들의 제네릭 시장 진입을 위한 과열경쟁에 R&D비용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네릭의 높은 약가를 받기 위해 특허만료까지 한참 남은 시장에도 미리 허가를 받으면서 허가용으로 만든 의약품 수천만정이 창고 신세만 지다가 버려지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제약사들의 제네릭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이다. 다국적제약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기술·자본력 사정상 신약, 개량신약과 경쟁력을 갖춘 제품 개발이 쉽지 않을뿐더러 굵직한 제네릭 시장도 많지 않은 탓이다. 예를 들어 동아제약의 스티렌은 현재 54개의 제네릭이 허가와 약가를 받고 출격을 대기중이다. 아스트라제네카의 크레스토는 67개의 제네릭이 약가까지 받은 상태다. 최근에는 고혈압약 올메텍과 올메텍플러스의 제네릭 100여개 품목이 동시에 허가를 신청하기도 했다.
[편집자주]
약가신청을 먼저 할수록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제네릭 허가를 받겠다는 제약사들의 전략이다. 하지만 한정된 시장에 무분별한 진입으로 벌써부터 과열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허가용으로 만든 제네릭 의약품들이 대부분 버려진다는 점에서 제네릭 과열경쟁이 사회적 비용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문제가 표면위로 드러나고 있다.
현행 제네릭 의약품의 허가시스템은 오리지널 의약품의 재심사기간이 만료되면 허가를 신청할 수 있는 구조다. 통상 신약은 6년, 개량신약에 4년간 부여되는 재심사기간에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제품을 실제 환자들이 복용하면서 새롭게 나타나는 부작용 등을 점검하며 이 기간에는 제네릭의 허가 신청이 불가능하다.
제네릭 제품을 준비하는 업체들은 오리지널의 재심사기간 중에 제네릭 허가의 필수 요건인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을 미리 완료했다가 재심사기간이 만료되면 바로 시판 허가를 신청한다. 식약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으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약가를 신청하고 약가등재까지 마치면 제네릭 출시 준비는 모두 끝나게 되는 셈이다.
약가까지 받았더라도 대부분의 제네릭은 오리지널 특허가 만료되지 않아 당장 출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 2008년 도입된 새로운 의약품 허가시스템 때문에 팔지도 못할 의약품이 무더기로 생산되고 있다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08년부터 시행 중인 ‘품목별 사전 GMP’라는 새로운 허가제도는 의약품을 허가받기 전에 품목별로 해당 제품의 생산 능력을 제대로 갖췄는지를 점검하는 제도다.
이 제도의 핵심은 `허가받을 의약품을 시중에 유통할 때 실제로 생산할 분량만큼을 미리 3번 생산해 관련 공정 절차 전체에 대해 적합판정을 받아야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보통 제조단위당 최소 10만정을 생산하게 된다. 따라서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 30만정을 미리 생산해봐야 한다는 의미다.
하루에 세 번 복용하는 약이라면 10만명분의 약을 허가 과정에서 만들어야 하는 셈이다. 품목별 사전 GMP는 제조공정의 선진화 및 양질의 의약품 공급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제도 도입 명분이 충분하다. 하지만 소위 `줄세우기 약가제도`로 불리는 제네릭 약가산정 시스템과 맞물리면서 의약품 대량 폐기라는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
신약보다는 제네릭 분야를 주력사업으로 삼는 국내제약사들은 높은 약가를 받기 위해 제네릭 허가 및 약가 등재 시기를 경쟁적으로 앞당길 수밖에 없다. 같은 제네릭이라도 약을 먼저 허가받고 생산하면 더 많은 수익을 남길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특허만료를 몇년씩이나 남겨둔 제품들이 이미 수십개의 제네릭이 허가받아 등재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제네릭사들은 향후 5, 6년내 특허가 만료되는 의약품은 대부분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다.
앞서 언급한 스티렌 제네릭의 현황을 살펴보면 54개 품목이 각각 최소 허가용으로 30만정을 생산한 상태다. 하지만 스티렌의 특허만료시기는 2016년이기 때문에 이들 제품은 모두 창고에 보관되다가 유통기한 만료로 버려질 수밖에 없는 신세다. 스티렌 제네릭은 157원짜리가 26개, 141원 16개, 126원 5개, 113원 5개, 101원과 90원짜리가 각각 1개 등재됐다. 각각 30만정을 생산했다고 계산하면 총 23억원어치가 창고에 있는 셈이다.
크레스토 제네릭은 5mg 9개(451원 6개, 405원 1개, 364원 1개, 327원 1개), 10mg 38개(676원 35개, 607원 1개, 518원 2개), 20mg 20개(890원 17개, 801원 1개, 720원 1개, 648원 1개) 등 총 67개 품목이 약가를 받은 상태다. 각각의 제품이 허가용으로 최소 30만정 생산됐다고 가정하면 총 2010만정, 129억원어치의 제네릭이 창고에 대기중이라는 얘기다. 크레스토의 특허만료는 2014년이다.
오는 2016년 특허가 만료되는 SK케미칼의 조인스정은 39개의 제네릭이 220원, 3개 품목은 172원을 받았다. 총 1260만정, 27억원어치가 생산된 셈이다.
2013년에 특허가 만료되는 프리토와 프리토플러스는 각각 21개, 27개 품목이 등재돼 있으며 이들 제품이 최소 30만정 생산됐다고 가정하면 각각 32억원, 50억원어치가 생산됐다.
100여개 품목이 허가와 약가를 받을 예정인 올메텍과 올메텍플러스의 제네릭도 최소 100억원어치 이상이 재고로 남을 예정이다. 특허만료가 많이 남은 시장에 아직도 제네릭 허가가 쇄도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매년 수백억원의 의약품이 사용되지도 않고 버려진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제약사들의 제네릭 시장 과열경쟁으로 매년 수백억원이 R&D비용이라는 명목하에 버려지고 있다는 얘기다.
제약사들도 이 같은 비효율적인 R&D비용 투자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자사 제품의 빠른 시장 진입에 따른 매출 증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태다.
국내사 개발담당 임원은 “경쟁력을 갖춘 신약이나 개량신약 개발이 쉽지 않고 남아있는 는 대형 제네릭 시장도 많지 않은 여건상 당장 손실이 있더라도 시장 진입을 꾀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약가신청 순서에 따라 계단식으로 약가가 결정되는 약가 시스템에서 오리지널 제품의 특허가 만료되지 않았다고 제네릭의 약가를 나중에 신청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약가를 받게 된다”며 “결국 제네릭이 발매되더라도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허가와 약가 등재시기를 서두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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