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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외면' 임상강사는 '침묵'
[ 2011년 04월 15일 22시 23분 ]
[기획 6]
예기(禮記) 학기(學記)편에 나오는 가르침의 도리는 이렇다. ‘올바른 길로 이끌되 강제로 끌어당기지 않고,세게 다그치되 짓눌리지 않게 하고,문을 열어주되 끝까지 데리고 가지 않는다. 이끌되 당기지 않으니 부딪힘이 없고,다그치되 짓누르지 않으니 어려움이 없고,열어주되 끝까지 데리고 가지 않으니 스스로 사고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대·삼성·아산, 매년 임상강사 지원 ‘문전성시’
아쉽다.앞뒤로 보아도 무언가 개운치가 않다. 비정규직 신분으로 때로는 부당한 대우를 당하기도 하고, 병원을 전전하기도 하는 임상강사 문제는 한두 해만의 ‘곪음’이 아니다. 대개의 임상강사들은 서러운 ‘보따리 장수’ 시절을 겪지만 일단 교수가 되고 나면 이 문제에 눈을 감거나 침묵한다.
임상강사 신분인 경기도 소재 A대학병원 k씨는 이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이유로 교수 사회의 외면과 임상강사들의 침묵을 꼽는다.
k씨의 ‘수하생’ 생활도 벌써 1년을 훌쩍 넘겼다. ‘선생님’의 말은 임상강사들에게는 곧 법이다. 그의 ‘선생님’은 종종 “이 바닥이 좁다”며 “난 늘 마음속으로 점수를 매기니 잘 보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좁은 바닥에 소문이 날까 싶어 혹여라도 불평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날이 이어졌다.
k씨는 “지방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오긴 했으나 등용문 없이 막막한 상황이다 보니 선생님께 매달렸다”고 울먹거렸다. 그는 ‘선생님’의 영향력이 커 여전히 두렵다고 했다. 갈수록 배출되는 의사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낙오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다 보면 삶은 이렇게 먹먹해진다.
인제대의료원 박상근 의료원장은 “아직도 우리나라, 특히 의료계 내 도제식 교육은 아주 깊숙이 배어있다”고 했다. 어두운 그림자의 농도는 더욱 짙다. 최근들어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로 꼽히는 것은 의료기관 쏠림 현상에서 기인한 ‘무한 기다림’이다.
대개는 2년여를 임상강사로 지내지만 해마다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는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에서는 길게는 5년까지도 이어진다.
이미 오래전부터 굳어져 버린 왜곡된 상황에서 뭔가를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성모병원 전해명 교수는 “일부 대형병원에서는 길게는 7~8년씩 더군다나 적지 않은 나이에도 임상강사를 하고 있는 사례가 종종 발견된다. ”면서 “외과나 흉부외과의 경우 어차피 개원을 해서 하고 싶은 수술을 못하는 현실이라면 경력을 쌓으면서 하고 싶은 수술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고 해석했다.
병원에서 ‘내쫓지’ 않는 이상 몇 년씩이고 머무르는 형태다. 만약 병원이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다면? 그 임상강사는 봉직의나 더러는 제약회사로 방향을 선회하기도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경우다.
서러운 '보따리 장수'…"굳이 찍힐 필요 없다면 침묵"
임상강사 기간이 마치 수련 기간으로 녹아들어 전공의의 ‘연장선’ 정도로 여겨지는 기형적인 운영에 대해서는 대다수 교수들도 공감하는 눈치다.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임상강사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여럿 보였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손승국 교수는 “임상강사 제도가 다소 변질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교수들도 안타까워하고 있다”면서 “간혹 주변에도 임상강사를 레지던트 7년차로 여기고 적합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 경우가 있어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손승국 교수는 “세상이 바뀐만큼 예전의 문화와 방식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교수들 자체도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줘야 한다”며 “과거에 얽매여서는 교수 자신도, 임상강사도 윈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교수들은 임상강사를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하기도 한다. 때론 가차없는 질책도 빠질 수 없다. 그 과정에서 교수들의 힘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그래서일까.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전해명 교수 역시 기대에 비례해 아쉬움이 많다고 했다. 그런 만큼 일부 임상강사들의 서운한 감정에도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이 복잡 다단한 ‘판’에 정부도, 병원협회도 개입을 원치 않고 있어 실마리를 푸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안정적인 주류 사회로 편입된 교수들이 다시 임상강사 문제를 제기해 학교와 학계에 굳이 찍힐 필요가 있겠느냐는 보신주의가 작용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뿐만 아니다. 서울 소재 a대학병원 신경외과 한 교수는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숨 가쁘게 사는 대다수의 임상강사들도 연대를 통해 문제를 풀기보다 ‘줄’을 잘 서 남보다 더 빨리 교수가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임상강사를 거쳐 이미 대학병원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도 “임상강사들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와 부조리한 조건이 암묵적인 합의와 결과에서부터 초래됐다”는 해석을 내놓는 것이다.
그럼에도 후유증을 앓고 있는 임상강사에게 무작정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함인데 왜 침묵하고 있냐”는 비판은 상당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한 개인의 시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의 목소리와 실천 가능한 대안으로 수 년 전부터 거론되고 있는 인턴 폐지가 현실화돼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울대병원 외과 윤여규 교수는 “몇 가지를 보는 시각으로는 아무리 해도 답이 나올 수 없는 구조다. 결국 임상강사 제도라는 단면만 들여다볼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정책 재편의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뼈대는 인턴, 레지던트, 임상강사 기간, 즉 의학교육과 임상 현장으로의 연장선이 좀더 단단하고 ‘쓸모있게’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수 년 전부터 급물살을 타고 있는 인턴 폐지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윤여규 교수는 “병원 제각각의 입장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병원협회나 혹은 복지부가 관여해서도 안 된다”면서 “무엇보다 인턴 기간을 폐지하기 위해 중소병원협회 등의 전향적인 판단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기본 골격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해 관계를 떠나 냉정하게 판단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다.
필요하다면 설득해야 하고 명분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나 이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이를 꼽는다면? 글쎄다.
"잔혹한 시스템 개편, 의학회가 핵심 역할 나서야"
그렇다면 교수들이 생각하는 임상강사 제도의 장점은 무엇일까.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는 “임상강사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스탭이 되기 위해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다. 레지던트 때도 물론 전공을 할 수 있지만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더 깊이있는 공부를 하고 실질적으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이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손승국 교수도 “레지던트 시절 다 배우지 못했던 부분, 즉 전반적으로 수련은 했지만 자신의 전문분야를 익히기 위해서는 임상강사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학문 전체를 훑을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제다.
때문에 한결같이 교수들이 입을 모으는 대목은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지던트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해서 논문이나 잡무를 시키는 일련의 관행들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임상강사 제도 자체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님에도 좋은 취지는 갈수록 퇴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윤여규 교수는 “특히 외과계열의 경우 인턴, 레지던트 수련만으로는 상당히 부족하다”고 한계점을 분명히 했다. 더욱이 윤여규 교수는 “추세가 거의 대다수의 대학에서 논문 실적을 중요시하고 있고 2~3년을 더 임상강사를 하겠다고 하면 그 동안 논문을 쓰는 연습을 함으로써 병원 스텝으로서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장점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하면 현재 임상강사 제도의 장점으로 내세울 요소는 당초 취지보다 상당 부분 희미해졌다. 누구를 탓해야 할까?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의학회의 개입이 필요하다. 토의가 어려운만큼 의학회가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자리부터 마련하자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기도 소재 B대학병원 교수는 “우선 학회는 1차 병원들의 지원을 받아 대표 병원들을 선별하고 대학병원이 임상강사 교육 파견을 요청할 때 마다 학회가 병원을 적절하게 안배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대학병원과 1차 의료기관의 지속적인 유대관계 형성과 함께 교육이라는 대의적인 목적에서 맞아 떨어질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이 교수는 “임상강사를 매개로 함으로써 특정 분과별로 대학병원과 로컬 안팎의 연결이 가능해질 것”이라면서 “또 서로 필요로 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이 정체되지 않고 순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강사 과정도 동시에 재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교수는 “개원이나 봉직의를 원하는 경우와 대학에 남기를 원하는 경우를 구분함으로써 효율적인 시스템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결론적으로 현재와 같이 임상강사를 위한 ‘기막힌’ 대안이 없다면 이들을 위한 교육은 각 학회 분과별로 이뤄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으로 집약된다.
의평원 관계자는 “교수나 전공의, 의과대학생들조차 자신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단체를 결성해 목소리들을 내고 있고 일반대학의 시간강사들도 강사협의회를 구성해 단체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임상강사는 소모임 자체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따라서 자신 스스로의 권익 보호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나 전공의, 의과대학생들조차 자신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단체를 결성해 목소리들을 내고 있고 일반대학의 시간강사들도 강사협의회를 구성해 단체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임상강사는 소모임 자체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따라서 자신 스스로의 권익 보호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정숙경기자 jsk6931@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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